우리는 평범하다. 평범하게 하루를 살고 어디 하나 재미있는 구석 없는 시간의 반복에서 새로움을 찾는다. 그렇기에 평범이 비범으로 바뀌는 이야기는 늘 일종의 설렘을 준다. ‘무명’에서 ‘유명’이 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고 회사원의 뒤에 숨은 크리에이터 ‘부캐’에 환호한다. 어느 때보다 모두가 유명에 목숨을 거는 지금,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황당한 방법으로 최고의 무인이 된 고등학생이 있다. 이시우 작가의 소설 《무명의 별》은 ‘보통’ 사람처럼 무공이라는 말만 들어도 낯간지러워하는 고등학생 권별을 주인공으로 한다. 수학을 가르치던 과외 선생님이 사실 내공 가득한 무인이라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무공에 대해 진지하게 설하는 과외 선생 장호비에게 “그러니깐 그게 뭐가 좋은데요?”라고 대꾸하던 권별이 비의문의 차기 문주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파란만장하다.
“그런 바보 같은 말이랑 이상한 자세 하기 싫다고요.”라고 단호히 거절하는 별을 무공의 세계로 이끄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과외 선생님의 몫이었다. 그래도 수학보다는 무공이 재미있으니까, 라는 마음으로 별의 발걸음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어느새 다른 세계의 입구에 도달한다. 시작은 어쩔 수 없었으나, 이후에는 자의로. 모든 영웅이 떠나는 여정은 갑작스럽다.
아니, 그는 완성형 천재였으니 무술의 세계에 발을 들인 것이 운명이라 하겠다.
이름 없는 별, 무명성
“비의문의 1대 제자. 나 장호비는 오늘부터 권서호와 강연두의 딸 권별을 제자로 맞아들입니다. 이는 보는 이가 없어도 하늘이 보았고 들은 이가 없어도 땅이 들은 사실입니다.”
이 말을 처음 듣는다면, 유튜브 알고리즘 같은 것에 걸려 우연히 듣는 것이 아니라, 수학을 가르치던 평범한 과외 선생님이 어느 날 엄숙히 따라 하라며 이런 글을 읊어 준다면. 당장 그 과외를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게다가 이것을 말하기 위해서는 요상한 자세를 취해야만 한다. 손발이 닳아 없어지는 듯한 한자어의 남용과 하늘과 땅의 능력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내용으로 점철된 문장은 보통의 사람에게 익숙하지 않다. 딱 봐도 ‘무협 소설’에나 등장할 것 같은 기다란 맹세의 선언은 다람쥐 쳇바퀴보다 가벼운 우리의 일상이 받아들이기에 낯설다.
중학생이던 권별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헐. 완전 대박 이상해.’ 별에게 과외 선생 장호비는 짐짓 진지한 태도를 보인다. 우연히 수업 시간에 부는 이상한 휘파람에 불만을 표하고 동전에 쓰인 한자를 읽었더니 다짜고짜 무공을 배우겠냐고 권하는 상황은 평범한 과외와 거리가 멀다. 살면서 별과 무공이 관계있었다고 할 만한 건 어린 시절 배웠던 태권도의 기억뿐이었다. 하지만 과외비를 받지 않는다니, 별은 이상한 몸짓과 맹세의 의식 같은 것을 과감히 생략하고 얼렁뚱땅 호비에게 무공을 배우기 시작한다. 주 2회 무공 강습은 그렇게 갑자기 찾아왔다.
별이 무공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호기심에 의한 것이었다. ‘현대 무협’이라는 장르에 걸맞게 작가는 별과 호비의 관계를 바로 무인과 제자로 설정하지 않는다. 남이었다가, 완전히 다른 세계에 있던 둘이 연결되는 통로는 평범한 ‘과외’였다. 일면 흥미를 고취하기 위해 ‘게임’에 무공을 접목했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과외’라는 상황의 특수성을 따져본다면 왠지 재미있어 웃음이 나온다. 중학생 또는 고등학생쯤 되면 공부가 얼마나 지루한지 안다. 그리고 과외 역시 습관적으로 흘러가는 인생의 한 부분이다. 숙제와 수업, 그 안에서 버티다시피 보내는 몇 시간은 학교 수업의 연장이다.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과외 수업에 생뚱맞은 ‘무공’이라는 요소를 툭 던짐으로써 작가는 주인공이 다른 세계로 흘러갈 통로를 순식간에 만든다.
과외를 하면서 별은 호비와 ‘밤 나들이’라는 이름의 일명 ‘악당 퇴치’ 활동에 나선다. 이러한 상황 설정은 별이 무공을 쌓는 동시에 ‘다른 세계’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경험이 된다. ‘노야차’라는 이름의 무지막지한 실력을 가진 무인이나 이후 둘도 없는 동지가 될 ‘무명’ 역시 별과 호비가 밤 나들이를 하던 와중 나누는 대화에 등장하는 이들이다. ‘혈적검’이라는 다소 웅장한 별명을 가진 남자를 만나는 등의 일은 모두 별이 ‘비의문’에 입문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별은 비의문에 처음 발을 디딘다.
“반포 고등학교 2학년 권별”은 그렇게 무공의 세계에 입문한다. 호비는 문파의 사람들에게 별을 ‘수제자’라 소개하고 세 사람과 무공을 겨루는 장을 만들어준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은 의외로 ‘김익’이다. 김익은 노골적으로 별을 ‘여협’이라는 말로 깎아내린다. 흥분을 이기지 못한 별은 공격을 내지르는 데에만 집중했고 별의 주먹이 김익의 얼굴을 뭉개기 직전, 호비가 만류한다. 여기에서는 별의 부족함도 드러난다. 별은 “먼저 흥분하는 사람이 진다고들 그러잖아요”라고 하면서 자신의 신중하지 못함을 반성하는 한편,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며 김익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낸다.
이시우 작가는 이 장면을 통해 김익과 비슷한 성정을 지닌 이들을 비틀어내는 동시에 무공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는 별에게도 초심자의 미숙함이 남아 있었다는 점을 각인시킨다. 《무명의 별》이 청소년 주인공을 설정한 것은 그의 성장 과정을 조명하는 데에 좋은 역할을 한다. 권별은 성장 소설의 초입에 선 인물이다. 그렇기에 비의문에서의 대련은 긍정적인 상황 맥락으로 작용한다. 별의 ‘성장 이전’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호비는 별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비의문 차기 문주’로 별을 추대한다. 별은 김익과의 싸움에서부터 상해 있던 기분을 풀지 못하고 자리를 뜬다. 이렇게 둘의 관계는 잠시 냉랭해진 듯 보인다.
이 작품은 플롯이 굉장히 잘 짜여 있다. 호비는 별에게 비의문이 어떤 곳인지 적당히 경험할 수 있게 해주었다. 별은 이 과정을 통해 무공의 생태를 익혔고, 자신이 가진 힘이 어디까지 뻗을 수 있는지 가늠했다. 이 무렵 별에게 호비는 ‘어쩌다 만난 특이한 과외 선생’에서 ‘진정한 스승’으로의 위치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주 5회의 수업을 4년 가까이 한 두 사람의 관계는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에도 친밀했을 것이고 무공의 세계에서 보자면 수제자와 하나뿐인 선생이었다. 그러나 이후 이야기를 정점에 올려놓는 사건이 발생한다. 장호비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별은 어머니에게 소식을 전해듣고 당황한다. 그리고는 복잡한 마음을 추스리며 장례식장으로 향한다. 예상치 못한 호비의 죽음은 주인공 별을 각성시키는 기폭제로 작용한다.
흔히 영웅담이나 여로형 구조를 갖는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수동적’이다. 자신이 원해서 여정을 떠나는 인물형보다는 ‘원치 않는 이유’로 인해 안전한 세계를 떠나는 캐릭터가 훨씬 많다. 관습적으로 그들을 떠나게 하는 요인 중 하나는 ‘죽음’이다. 지인의 죽음, 가족의 죽음, 친구의 죽음 등, 이야기를 쓰는 작가는 주인공의 가장 가까운 이가 사망하는 사건을 통해 그가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하는 진행을 선택하곤 한다. 별은 그렇게 익숙한 세계에서 잠시 벗어나 호비의 죽음에 복수하기 위한 길을 떠난다.
여정과 회귀
별은 호비의 복수를 하기 위해 무명을 찾아 나선다. 정황상 호비를 죽인 것이 무명이라는 확신이 있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무명을 찾아 떠났던 여행은 생각보다 긴 서막을 올린다. 무명이 아닌 다른 인물이 호비를 죽였다는 것에서 작가는 ‘가짜 범인’을 효율적으로 활용한다. 작품의 초반부터 지속적으로 언급되던 ‘무명’은 중반에 접어들어서야 그 진짜 캐릭터를 드러낸다. 무명과 별, 두 명의 고등학생은 각자의 목표를 위해 함께 길을 나선다.
이시우 작가는 전작인 《과외활동》에서도 청소년 캐릭터가 성인의 무리에 들어가 범죄를 해결하는 과정을 특유의 코드로 표현했다. 그렇기에 작가의 오랜 독자들은 《무명의 별》에서 무명과 별의 조합이 낯설지 않다. 통칭 ‘영어덜트’라고 불리는 장르에서 이시우 작가의 색은 독보적이다. 캐릭터의 설정이 분명하고 작품을 관통하는 하나의 사건이 이루어지기까지 곁가지 없이 매끈하게 뻗는 서사의 진행이 독자에게 이유 있는 시원함을 준다. 여전히 나이 어린 사람들을 무시하는 지금의 어른에게 이 두 작품의 아이들은 일침을 날린다. 어른들이 망가뜨린 세상을 바로잡는 건 아이들이다.
여정을 떠난 이상 그 결과는 예상 가능하다. 범인을 잡고, 악인을 처단하는 것이 이 작품의 결말이리라. 하지만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은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다. 인물과 사건, 배경 중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인물’이다. 작가는 사건보다 인물의 연관에 중심을 두는데 그것은 ‘호명’의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무협 소설답게 한자어로 쓰인 호칭을 제하더라도 이 작품에서 인물 각각에 붙는 이름은 공간, 또는 외면의 특징을 담고 있다. 소야차로 자신을 칭하던 ‘이마트 언니’. 누구의 편인지 모를 ‘지배인 아저씨’, 미스터리하고 베일에 싸인 ‘정치가 아저씨’ 등은 실제 이름보다 ‘호칭’으로 불린다.
이러한 작가의 의도는 성인 캐릭터에게 익명성을 부여한다. 주변 인물의 익명성은 독자가 더욱 주인공에 집중할 수 있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학생의 위치에 있는 무명과 별이 작중에서 돋보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일인칭 시점과 말 건네는 어투 역시 독자들이 두 주인공에게 초점을 맞추도록 돕는다. ‘이름이 없다’라고 불리는 둘은 이로써 작품 안에서 가장 큰 존재감을 획득한다. 그리고 어른들이 망가뜨린 작은 세상을 바로잡는다. 아이들만의 방법으로, 서로에게 기대는 방식으로.
작품의 첫머리에서 중학생이던 별은 말미에서 고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있다. “이제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것들을 어딘가에 버려두고 왔다는 사실이, 내가 이 이후에는 절대로 이전과는 똑같은 사람일 수 없을 거라는 것이, 그리고 언제 시작되었는지도 몰랐던 것이 이제는 끝났다”라고 별은 여정에서 돌아와 말한다. 경계 밖의 세상에서 쓰던 ‘무명성’이라는 이름을 잠시 놓아두고, 별은 원래의 ‘권별’로 복귀한다. “모든 게 너무 생소하게 느껴”지는 도시에서, 한바탕 꿈만 같았던 복수의 여행은 그렇게 끝을 맺는다.
맺으며
이 작품 안에는 ‘별’의 이름을 넣어 만든 문장이 눈에 띈다. 인물과 자연물의 이름, 두 가지 의미가 중복되는 과정에서 표현할 수 있는 내용은 확장된다. 별을 보는 타인의 시선에서, 그리고 권별 자신이 생각하기에 ‘별’이라는 단어 안에 담긴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일대기가 아닌 짧은 시간을 다룬 소설이기에 그 안에서 성장한 별이 생각하는 여행의 의미가 궁금해진다. 아래의 두 문장은 독자들의 질문에 시원한 답을 해준다.
“그래… 네가 그 사람의… 별이구나….”
첫 번째 문장은 호비의 장례식장에서 유성검이 별에게 했던 말이다. 수제자였던 별은 호비에게 ‘가르치는 학생’ 이상의 존재였다. 자신이 몸담은 비의문의 차기 문주로 점찍은 동시에 애제자였던 별에게 호비는 애정을 넘어선 무언가를 전수했다. 그리고 결국 별은 호비의 ‘별’이 되었다.
“통영 밤하늘엔 이름 모를 별들이 빛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별이 무명과의 일을 생각하며 떠올린 문장이다. 별은 위험에 처한 무명에게 차분히 망가진 내공의 흐름을 다스리도록 돕는다. 별과 무명, 무명성과 무명은 작품이 끝나는 순간까지 동료이자 친구로서 둘도 없는 동반자가 된다. 이 문장은 별이 암호처럼 글자 수를 맞춰야 하는 상황에 만든 낭만적인 고백이자 무명을 향한 마음이었다.
평범했던 고등학생 권별은 스승인 호비의 별이었을 때 여행을 떠나, 무명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신의 별을 발견하며 모험을 마친다. 별에서 시작되어 별로 끝나는 이 소설의 제목이 《무명의 별》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읽는 내내 한순간도 별을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길게 이어지는 이야기의 연속은 별과 다른 별이 이어져 별자리를 만드는 것과 같다. 《무명의 별》을 읽는 과정은 이름 없는 한 별자리의 처음과 끝을 가늠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하나의 별자리에는 반드시 이름이 붙기 마련이지만, 슬프고 낭만적인 기운이 느껴지는 이 별자리의 이름은 오늘도 빈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