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비의 시선으로 본 친절한 인간 찬가 공모(비평)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후안 유니버스) – 지하철 (작가: 엄성용, 작품정보)
리뷰어: 냉동쌀, 21년 5월, 조회 173

유행에 한 발 뒤쳐진 저는 언제나 뉴비였습니다. MCU가 한창 궤도에 올랐을 무렵, 저는 어벤져스 1도 안 봤고, 스토리를 따라잡기 위해서 상당히 많은 영화를 정주행해야했습니다. 이전 작품에 대한 선행학습 없이 한 편의 영화를 이해하는 건 상당히 힘든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MCU를 필두로 상당히 많은 프랜차이즈가 자체적인 세계관, 유니버스를 구축하려 시도했습니다. 이러한 유니버스의 장점은 팬들의 충성도를 높여주고 그렇게 충성심이 쌓인 팬들에게 더 깊은 인상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점 또한 명확한데, 저처럼 한 번 놓치면 따라가기 힘들다는 점, 즉 진입장벽이 높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보는 데 상당한 결심이 필요했습니다. 높은 평점과 브릿G 추천작이라는 표지, 공포 장르, 제가 봐야 할 이유가 충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유니버스’라는 제목 때문에 감상을 꺼려 했던 것이죠. 그러다 결국 큰맘먹고 이 작품을 클릭했고, 다행히도 이렇게 훌륭한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선 저는 ‘후안 유니버스’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뉴비입니다. 이전 작이나 세계관 설정 등에 대한 기본 배경지식도 전무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저처럼 뉴비이신 분이 혹시 리뷰를 먼저 읽어보시는 것이라면, 걱정말고 감상하라, 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작품, 상당히 친절하거든요.

주인공은 만원 지하철을 이동하다, 승객이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 기묘한 칸에 도착합니다. 그곳에서 공포스럽고 끔찍한 경험을 한다……는 것이 이 작품의 도입부가 되겠습니다. 어째서 그런 공간이 생겼는지, 그 끔찍한 존재는 무엇인지는, 초반에는 전혀 설명되지 않습니다. 친절함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장르가 호러라는 점에서 그 불친절함은 장점으로 변모합니다.

공포는 미지에서 온다는 말이 있죠. 인간은 낯섦에서 두려움을 느낍니다. 이질적임에서 느낀다고도 할 수 있죠. 아무런 설명도 제공되지 않는 공간에 놓여진 주인공은 공포에 질리고, 이건 (뉴비) 독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두려움에 떠십시오. 그게 이 소설이 의도한 바일 테니.

제가 구태여 뉴비라고 강조를 한 이유는, 이후 줄거리가 전개되며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공간에 대한 정체가 안개가 걷히듯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게 후안 유니버스의 중심 설정일지도 모르죠. 나머지 작품은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군요. 물론 안개가 걷히듯, 뿌연 안개 속에서 실루엣이 보이는 듯, 등장인물의 추측으로만 드러나는 설정은 불명확하고 모호합니다. 어두운 방안에서 암순응을 한다고 한들 여전히 시야는 확보되지 않고, 행동은 조심스러운 그대로입니다. 이 작품의 공포는 그렇게 유지됩니다. 제가 이 작품을 친절하다고 말한 이유는 거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저 공포스러운 이공간의 정체가 후안 유니버스의 중심 설정이라면, 올드팬들은 공포심이 덜한 것 아니겠냐는 의문도 듭니다. 저야 아직 후안 유니버스를 접해보지 않았기에 예전부터 이 유니버스를 즐기신 분들이 어떤 공포를 느끼셨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뉴비의 한계입니다. 어쩌면 제 추측이 완전히 틀렸고 이 작품의 이공간은 후안 유니버스의 설정과 아무런 연관이 없을 수도 있죠. 이 또한 뉴비의 한계입니다. 유니버스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고 난 뒤 이 작품을 다시 읽어봐야겠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히 공포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액션영화에서는 그럴 시간에 총 한 번이라도 더 쏘고, 공포 소설에서는 그럴 시간에 속옷 한 장이라도 더 갈아입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장르 순수 주의자이신 독자분들이시라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일지도 모르죠. 이 작품의 주제는 등장인물들의 입에 의해 안개가 걷히는 순간부터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시야가 확보됨으로 인해 공포성을 줄어들지언정 주제가 드러나게 되고, 때문에 호러 장르로서의 장점이 약해지지만 긴장감은 여전히 유지되게 됩니다.

이 작품의 주제는 인간 찬가입니다. 사실 고전소설이면 모를까, 인간을 찬미하기에는 시대가 많이 흐른 것이 사실입니다. 순수한 의미에서의 인간 찬가가 통했던 시절은 고대 그리스 정도로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최근에 들어 자주 재해석되는 인간 찬가는 ‘인간은 위대하다’가 아닌, ‘인간은 위대해질 수 있다’입니다. 네, 인간은 위대하다 쪽이 좀 더 무게감이 있죠. 그래서 자주 ‘인간은 위대하다’로 표현되고, 이 작품에서도 인간은 위대하다는 대사가 중점적으로 등장하지만, 감히 추측하건대 작가님의 의도는 이쪽에 더 가까울 것입니다. ‘인간은 위대해질 수 있다.’ ‘아무리 깊은 어둠 속에 떨어진 인간일지라도, 인간은 스스로의 의지로써 칠흑같은 암흑 속을 헤쳐나올 수 있다’

이쯤에서 아직 작품을 읽지 않은, 지하철의 ‘뉴비’ 분들은 작품을 감상하시길 권합니다. 이 작품을 감상하셨다면, 스포일러 탭을 눌러도 괜찮으실 겁니다.

공포로 시작했던 작품은 말미에서 한없이 벅차오른 상태로 끝나지 않은 결말을 맺습니다. 그 감정은 뉴비 분이시든, 올드비 분이시든 다름없이 느낄 수 있고, 그렇기에 이 작품을 가치 있게 만들어 줍니다. 이 작품이 유니버스의 시작점은 아니겠지만, 시작점을 만든다면 반드시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작품을 즐길 수 있는.

혹시 유니버스를 구축하고자 하신다면 반드시 이 작품을 참고하셔야 합니다. 교과서적인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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