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별이 쏟아지는 병은 비극적이되 언뜻 낭만적이기까지 합니다.
윤동주는 밤마다 지나가는 별들이 스치운다라고 말했습니다. 스치운다라는 말은 스친다는 의미일테지만 운다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무심히 지나가는 별은 의미 없을테지만, 자신이 헤는 밤을 스치우는 별은, 그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있기에 소중합니다. 그리고 하나의 별들은 다른 별들과 다를 바 없이 홀로서 오롯합니다. 우리는 매일 우리에게 다가오는 별을 지켜보면서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무수히 많은 별들과 만나고 이별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다가와서 지나간 별을 다시금 붙잡으려 하는 일은 어떨까요. 지나간 별을 만난 나는 어떨까요. 그리고 돌아선 시간에서 마주친 별들은 어떨까요. 그 별은 동일한 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 별이 똑같은 시간에 온다는 보장이 있을까요. 맑았던 하늘이 흐려질 가능성은요. 별들이 하나만 떨어져 내리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무수히 쏟아진다면요. 구름이 낄 가능성은요. 우리가 시간을 되돌려 본 모든 별은 동일한 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통시적인 시선에서 공시적인 시선으로 옮겨온 별의 의미는 해체되기 시작합니다. 물론 그 별들의 본질은 ‘별’이라고 따옴표를 붙여 이야기 할 만한 것일 터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별을 이해하는 것이 아닌 별을 관측하는 입장입니다. 그렇기에 매번 본 별은 상대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잡을 수 있는 별의 의미는, 시간이 남기고 간 정신의 흔적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미 떠나버린 별들은 어찌 되는 건가요. 우리가 다시 붙잡지 못하는 별들을 사랑했다는 기억은, 어찌 되는 건가요.
여기서 별은 관계성의 은유입니다. 관계성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일 수 밖에 없기에, 그 본질은 언제나 타자와 그리고 타자의 타자 – 간단하게 치환하면, 나, 너, 쟤들의 상호간 차이 – 와의 차이를 통해서만 성립될 수 밖에 없습니다. 타임리프는 그 시공이 쌓아올린 서사라는 – 서사는 시간을 기록하는 기본 단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관계성을 휘발시킵니다. 하지만 여기서 휘발된 시간이 ‘공시성 속’에 중단된 채 남아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일종의 관념적인 살해로 봐야할 것입니다. 네. 이 것은 명백한 살해입니다. 공시성이라는 전제가 붙긴 하지만 시체가 남지 않는 깔끔한 살해인거죠.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살해 행위가 재호에게는 통시적이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 살해는 자신이 죽였던 생명을 되찾으려고 한다는 점에서 모순적입니다. 더 끔찍한 것은 이렇게 수많은 살해 끝에 되찾은 생명 역시 과연 처음의 생명과 같을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는 점이죠. 공시성 속의 생명과 죽음은 이렇듯 서로 대립쌍을 이루면서 모순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렇기에 재호의 행위의 이데올로기는 불완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재호의 모든 진실을 깨달은 유슬의 시점으로 나아가봅시다. 유슬의 복수는 공시적인 시점에서는 어찌 보면 무수한 투신 자살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유슬의 모순은 재호의 모순과 다릅니다. 재호의 살해는 삶을 위한 – 생명을 되찾기 위한이 더 적절할 것입니다 – 살해지만, 유슬의 복수는 그저 자살을 위한 삶 – 비록 하루일 뿐이더라도 – 일 뿐이니까요.
이 자살을 지켜보고 유지하는 이가 수하입니다. 수하는 윤슬과 같은 피해자임과 동시에, 이 복수를 기록하는 자입니다. 여기서 이 살해와 자살이 공시성에서만 존재함을 다시 지적하고 싶습니다. 윤슬은 통시적인 시점에서는 자살을 관찰하지 못하나, 공시적인 시점에서는 한없이 사라집니다. 이 자기파괴적인 행위는 어떤 면에서는 카니발적입니다. 질서와 규범이 파괴되면서 동시에 (유슬의 입장에서) 유희적이지요.
문제는 이 모순 속에서 유슬은 재호의 망령 속에서 현아는 끝없이 갇혀 있었다고 말합니다. 공시성 속에 갖혀있던 현아는 무엇을 겪었을까요.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이런 점에서 그녀의 죽음은 일종의 죄씻김입니다. 그리고 피의 세례이기도 하죠. 재호의 피가 들어와 자신의 인자가 발현했다라는 묘사를 보면 이를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례를 통하여 한없이 희미해졌던 관계성이 명료하게 자리잡게 됩니다. 그녀의 적이 재호이자 재호가 낳은 공시성임을 깨닫는거죠.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더이상의 모순을 범하지 않고 원흉을 제거합니다. 즉 유슬이 루프의 힘을 깨우치고 루프를 끊는 것은 이 이데올로기의 모순을 타파하여 관계성의 죽음을 회복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