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리뷰는 ‘콜러스 증후군’의 내용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본문을 읽으신 후 리뷰를 보시는 걸 권장합니다.
서론
‘콜러스 증후군’이라는 가상의 질병을 다룬 글은 타임리프를 기반으로 한 판타지 호러(개인적인 견해로는 호러 장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입니다. 저는 이 글에서 ‘재호’라는 인물에 집중을 해서 봤습니다.
재호는 사실상 모든 사건의 시발점입니다. 간단히 행적을 요약하자면, 그는 대학 시절 유슬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사랑스러운 딸 ‘윤하’가 탄생했는데, 한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바로 윤하가 경증의 콜러스 증후군 환자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재호는 자신의 딸을 사랑했지만 점차 지쳐가는 현실에 한 가지 선택을 합니다. 바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시간을 돌리는 능력’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 순간부터 이야기는 혼돈 속으로 빠지게 됩니다.
재호
재호는 과거를 놓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글을 읽다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가벼운 쇼크라곤 하지만 알러지가 일어나는 게껍질을 먹어가면서 시간을 되돌리고, 되돌리고, 또 다시 되돌릴 정도로 재호는 과거에 집착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집착하는 이유는 뭐였을까요? 바로 ‘윤하’ 때문이었습니다. 재호는 어느 순간의 오판으로 인해 딸이 없는 과거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거에 대해 얼마 지나지 않아 큰 후회를 하게 됩니다. 때문에 재호는 몇 번이고 시간을 돌립니다. 자신이 ‘사랑했던’ 딸 윤하를 다시 만나기 위해, 다시 행복할 수 있었던 과거를 위해서 몇 번씩 쇼크를 경험해가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재호는 윤하를 본인의 과오로 잃은 후 시간을 돌려 ‘세번째’ 유슬에게 프로포즈를 했고, 유슬은 다시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태어난 아이는 아들이었습니다. 이후 네번째, 다섯번째, 여섯번째를 거쳐 열 여섯번째에 이르기까지, 재호는 n번째 유슬에게 청혼하고, 아이의 탄생을 지켜보고, 게껍질을 먹길 반복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자신이 버린 아이를 되찾기 위한 부성애가 아닌, 경품 뽑기에서 원하는 상품이 나오지 않아 계속 돈을 들여 뽑기에 참여하는 모습에 가까웠습니다. 재호가 잘못된 선택을 아주 충동적으로 한 것도 맞고, 그 선택 당시 지쳐있던 것도 맞습니다. 그 때문에 고통스러운 마음과 죄책감을 가질 수 있는 것 역시 납득 가능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계속해서 시간을 돌렸던 것의 이유라 볼 수 있을까요? 우선 재호의 행동들이 윤하를 사랑해서 나온 행동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윤하
윤하는 과연 재호에게 어떤 존재였을까요? 물론 재호의 언급 상으로는 ‘사랑하는 딸’ 입니다. 그리고 윤하를 잃고 뼈저리게 후회하는 대목은 재호의 일기에서 명확히 드러납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커다란 눈동자를 반짝이며 내 허리 위로 엉덩이를 폭삭 깔고 앉고, 내 다리에 매달리고, 아침마다 달려와 내 품에 안기던 윤하에게.
나는 윤하의 삶을 지웠다.
(중략)
그저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이 말하기 부끄러울 만큼 하찮은 이유로.
다만 우리는 이 대목을 보기 직전에 등장한 대목을 같이 살펴봐야 합니다.
키가 내 허리까지 밖에 오지 않는 조그만 여자아이가 내 다리를 붙잡고 매달렸다. 모르는 아이였다. 나는 당혹스러운 얼굴로 아이를 내려다 봤다. 그리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 아이의 눈 속에서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봤다. 거친 붓끝을 따라 물결치는 밤하늘과 반짝이는 별빛들. 윤하와 같은 눈이었다. (후략)
윤하는 가벼운 콜러스 증후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윤하 이후 태어났던 재호와 n번째 유슬의 아이들 중에서는 콜러스 증후군을 앓지 않은 아이도 분명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재호는 끝까지 ‘윤하’를 고집했습니다. 콜러스 증후군에 걸린 아이를 돌보다 지쳐갔는데 정작 증후군이 없는 아이는 그대로 지워버린 행동은 사실 이해하기 조금 힘든 면도 있습니다. 때문에, 개인적인 추측으로는 재호가 하던 후회는 ‘윤하를 잃어버린 것에 대한 자괴감’에 의한 것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재호가 죄책감을 품은 시점은 윤하를 지워버린 이후 콜러스 증후군에 걸린 또 다른 아이를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부터 입니다. 그는 아이를 보면서 ‘아, 나도 윤하를 이렇게 잘 키울 수 있었을텐데.’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재호는 이미 육아에 지쳐서 도피를 선택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만약 윤하가 돌아왔다 해도 다시 지치는 상황이 온다면 시간을 돌리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있을까요?
그리고 새로 태어난 아이들을 마치 ‘경품 뽑기 하듯’ 지워갔던 이유도 결국 재호의 이기심에 기반해서라 생각합니다. 굳이 ‘경증 콜러스 증후군의 딸’을 원했던 것도 자신이 이미 한 번 경증 콜러스 증후군에 걸린 딸아이는 경험해봤기에 다른 선택지를 경험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으로 보였습니다. 만약 윤하가 중증 콜러스 증후군이었다면 재호는 중증인 아이가 나올 때까지 시간을 돌렸을 것이고, 증세가 없는 아이였다면 증세 없는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시간을 돌렸을 것입니다. 이러한 가정이 억측이라 볼 수도 있지만, 이것을 과연 부성애라 볼 수 있을까요? 적어도 저의 눈에는 이기심과 끝까지 편하고 싶어하는 감정 그 이상이 읽히지 않았습니다.
결론
몇 번의 시간여행을 반복함에도 결국 윤하는 돌아오지 않았고, 앞으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임이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재호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윤하를 보기 위해 시간을 돌렸습니다. 재호에게는 그것이 윤하를 향한 사랑이라 표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재호 혼자만의 생각이라 생각합니다. 재호의 타임리프는 윤하에 대한 사랑이 아닌 본인이 시간을 되돌리면 과오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는 크나큰 착각에 기반한 행동이었다고, 저는 주장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