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 여행의 계보 공모(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저승 이주 프로젝트 (작가: 오메르타, 작품정보)
리뷰어: 냉동쌀, 21년 5월, 조회 80

첫 장편 연재작 리뷰이면서, 완결나지 않은 작품의 리뷰입니다. 그래서 쉽사리 판단할 수 없는 부분도 많지만, 작가님께서 미완결 작품의 리뷰를 공모하셨으니 감안하시리라 믿고 짧은 감상을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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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이라는 공간은 우리같은 산 사람에게 있어 유쾌한 공간은 아닐 것입니다. 아무래도 죽음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곳이니까요. 하지만 동시에 친숙한 공간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저승에 들락날락거릴 일이 많다는 의미가 아니라, 여러 매체를 통해서 자주 접하는 공간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지하세계를 관장하는 하데스가 있고, 산 사람이 지하세계를 왕래하는 사례도 자주 보입니다. 물론 아무나 쉽게 출입할 수 있는 곳은 아니고, 상당한 대가를 치르거나 해야 하죠.

산 사람이 저승을 왕래하는 이야기는 비단 서양에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옛 신화에도 등장합니다. 대표적으로 대한민국의 웹툰작가 주호민의 웹툰 ‘신과 함께’의 신화편에서 소개된 강림도령 신화가 있겠습니다. 저승편이나 이승편에서도 저승의 모습이 묘사되긴 하나, 각각 죽은 자와 신이라는 점에서 산 사람이 저승에 가는 내용이라고는 보기 힘들겠군요.

단지 각지의 신화에서만 소개되는 것이 아니라, 현대에도 그런 작품들은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제 기억에 가장 깊게 남는 작품은 프랑스의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장편소설 ‘타나토노트’가 아닐까 싶은데요. 이 역시 특정 기계를 통해 여러 장막을 뚫고 여러 단계를 거쳐 저승에 당도하는 이야기입니다.

이렇듯 저승 여행이라는 소재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많은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저승에 당도하기 위해선 많은 시련을 겪거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점, 그렇게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끝내 저승에 도착해야만 하는 사연 등 드라마틱하게 구성할 수 있는 소재가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혹은 사후세계 그 자체라는, 종교적인 흥미를 고취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요.

이를테면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는, 아내 에우리디케를 지하세계에서 데려오기 위해 뱃사공 카론, 지옥의 개 케로베로스 등의 난관을 이겨내지만, 끝내 마지막 순간 하데스가 정한 금기를 범하는 바람에 아내를 잃은 비극적인 인물입니다.

강림도령 설화의 강림도령도, 비교적 수월하게 저승에 도착하고 돌아오지만 이미 수년의 시간이 흐른 뒤였고, 강림도령의 능력을 높이 산 염라대왕에 의해 그대로 저승차사가 되어버리고 말죠. 그리스 신화의 비극과는 거리가 좀 있는데, 비교적 명랑한 분위기의 우리 신화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국 신화 등에 폭넓은 지식이 없는 모자란 이의 식견이니 이 부분은 무시하셔도 좋습니다.

타나토노트의 경우는 어떨까요. 주인공 일행은 끝내 저승으로 가는 기계를 개발하지만 저승에 도착하기까지 수많은 단계가 있습니다. 각각의 단계는 장벽으로 가로막혀 있고, 장벽을 지날 때마다 새로운 난관이 여행자들을 위험으로 몰아넣습니다. 마침내 도착한 저승, 혹은 천국은 상당히 영적인 세계로, 현세에서의 일을 심판하고 윤회할지, 나아갈지를 정합니다.

이 작품들과 비교해서 ‘저승 이주 프로젝트’는 어떤 분위기일까요. 어떠한 사연이 있어서 저승에 가야한다는 것은 일관되게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지구 멸망이라는, 조금 큰 스케일의 배경이 등장하네요.

어떠한 일의 동기는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습니다. 마냥 커지기만 한다면 그 스케일에 압도당할 만큼 무게감 있는 소재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독자와의 거리를 유지하고 비교적 관조적인 시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합니다. 반대로 작아진다면, 다시 말해 사사로워진다면, 독자가 그 소재에 깊이 공감하고 등장인물에게 감정이입할 수 있게 됩니다. 대신 소재 그 자체가 가지는 무게감이 조금 떨어질 수 있겠죠.

앞서 언급한 작품들의 동기는 상당히 사사로웠고, 그로 인해 죽음마저 무릅쓴다는 주인공의 행동에 이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반대로 지구가 멸망한다는, 그래서 전 인류의 새로운 거처를 찾아야 한다는 무겁고 거대한 사명이 주인공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이 소재를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작품의 행방이 갈린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동기의 무게감에 비해 주인공의 행동은 상당히 가벼워 보입니다. 업무차 강제로 보내진 공무원의 입장이기 때문에 일의 능률이 떨어지는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볼 수 있겠지만, 지구 멸망 카운트다운에 기대감을 갖고 있으신 독자분이시라면 주인공의 면모가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반대로 업무차 이승으로 보내져 사자를 이끄는 전통적인 공무원 저승사자의 모습을 뒤집어 주인공 기린에게 씌워 이해하시는 독자분이시라면, 그 소소한 재미에 미소지으실 것입니다. 이 부분 역시 둘 사이에 균형을 잘 잡아 작품의 이후 분위기를 결정짓게 되는 요소입니다.

특히 이 유머러스함에 대해서 말인데, 이 작품에서는 저승까지의 여정을 과감히 생략하고 저승의 모습을 묘사하는 데에 집중합니다. 보통 드라마라는 장르는 결과가 아닌 과정의 장르라고들 하시죠. 즉, 이 작품에서는 저승 여행이라는 드라마는 표현되지 않고, 저승에 도착해서 그 일상을 보여줍니다. 저승 여행이 아니라 저승 정착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렇기 때문에 드라마 장르보다는, 흔히 라이트노벨에서 보이는 일상물이라는 느낌입니다. 간간이 잡혔던 부자연스러운 일본어 번역투 덕분에 그런 느낌이 강화되기도 합니다. 무거운 배경을 끼고 있는 일상물의 경우 이후 시리어스물로의 전환이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그 극적인 반전 부분이 작품 전체에서 매우 중요하게 작동하는 파트이기도 합니다.

지나치게 느슨하게 넘어갈 경우 분위기가 이도 저도 아니게 희석되어 버릴 위험이 있고, 지나치게 힘을 줄 경우 충격적인 연출이 될 수 있으나 분위기의 급변에 적응하지 못할 수도 있죠. 과연 이 부분을 어떻게 처리할지 관심이 모입니다.

지금까지 살필 수 있는 부분은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자꾸 중요한 포인트를 향후 행방에, 작가님께 떠넘기는 기분이라 마음이 편치 못하군요……. 하지만 그만큼 높이 기대하고 있고, 어서 결말까지 달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중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게 되는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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