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우리는 삶에서 도망치고 싶은 유혹을 받을 것이다. 이를테면 난치병에 걸렸을 때라던지, 맞닥뜨리기 싫은 현실에 맞닥뜨렸을 때라던지, 삶이 너무 고단하다던지.
냉동인간이 되는 것은 삶에서 도망칠 아주 좋은 방법이다. 일단 냉동되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깨끗이 사라진다. 그저 내가 할 것은 잠들어있는 것 뿐이다. 재생버튼을 눌러 내가 다시 살아가고 싶어질 때까지 눈을 감고 냉동되어있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과연 삶을 일시정지시키는 것이 진정한 해결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도 지금 당장 닥친 내 삶이 버겁다. 누군가 보면 배부른 소리라 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로서는 상당히 버거운 것이 사실이고, 그럴 때마다 종종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다거나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눈을 감았다 뜨면 나를 둘러싼 상황이 바뀌어있기를 기도할 때도 있다. 아무래도 이번 인생은 망한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 한구석에서 찐득하게 눌어붙어 떨어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홀린듯 <망해버린 이번 생을 애도하며>라는 제목을 클릭했고, 순식간에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여기서는 각양각색의 이유로 삶을 일시정지시킨 사람들이 등장한다. ‘사랑을 위해서’라고 말은 하지만 취업도 안되고 불장난으로 임신한 여자와 아이를 책임지기도 싫어서, 자녀에게 젊은 부모를 만들어주고 싶어서, 상처를 견딜 수 없어서. 다양한 사유로 냉동되었다 미래에 깨어난 사람들은 일어나기만 하면 문제가 다 해결되어있을거라 믿었지만, 현실은 마냥 소망대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사랑이라고 포장한 뇌내망상을 실현하기 위해 결국은 살인을 사주하는 남자, 데이트폭력과 가스라이팅을 행사하다 결국은 자기 부모님을 살해한 살인자랑 맞닥뜨린 여자, 가장 필요할 때 곁에 없었다며 가족에게 외면받고 겉도는 여자.
그들은 파국으로 치닫기 전에도 마음 편하게, 예전처럼 살 수 없었다. 제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가족들이 자기의 진심을 몰라줘서, 숨기고 있는 사실을 언제 연인에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그뿐만 아니라 사회의 편견에서도 자유롭지 못해 늘 자신이 냉동되었다 깨어난 사실을 숨기며 주변 눈치를 본다. 이렇게 사는 게 과연 마음 편하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들은 잠시의 고민을 외면하기를 선택했고, 그 결과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불행의 씨앗을 퍼뜨리며 살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살면서 저마다의 짐을 지고 살아간다. 예외는 없다. 그러나 냉동되기를 선택한 사람들은 그 짐을 지는 대신에 다른 사람에게 내던져버리고 미래로 도망가는 것을 선택했다. 꿈에서 깨어나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그들의 짐은 다른 모습, 다른 형태로 새롭게 다가왔다. 애써 외면하려고 했던 과거를 미래에서 마주치게 되었을 때, 그 현실을 살아가는 그들의 심정은 참으로 참담하고 공포스러웠을 것이다.
당장 삶을 멈추면 나를 괴롭히는 각종 문제들한테서 벗어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깨어났을 때 그 문제가 해결되어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해결되어있을 수도, 해결되어있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해결된 경우에도 그로 인한 또다른 문제가 새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마냥 문제를 회피하려고만 하면 역설적으로 그것이 내 발목을 잡는다. <망해버린 이번 생을 애도하며>를 읽다보면, 어떻게 다르게 생각해보려 해도 결국은 결론이 이렇게 귀결된다. 도망친 곳에 미래는 없다.
마냥 힘들다고 징징거리며 미래로 도망쳐봤자 근본적인 원인은 해결되지 않는다. 현실도피를 하고 싶어 읽기 시작한 소설에서 오히려 문제를 마주하고 부딪힐 용기를 얻었다. 현재를 직시하지 못하고 미래로 유배되어 홀로 사는 것보다야 현실에서 부딪히며 깨지고 상처입는 것이 나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은 나를 아껴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용기내어 다시 한 발을 내딛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