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호러, 추리/스릴러 작품으로 분류된 것까지 너무 완벽해서 웃겨 죽을 것 같아요. 그렇죠. 세상이 망하는 이야기는 호러물이죠. 이렇게 작품에 감명받아 하이한 기분으로는 두서없이 글을 쓰게 되리라는 걸 알지만, 습작 연습까지 미루고 이 소설을 세 번째 읽고 있는 제 상태를 깨달아 멘탈 디톡스를 위해 감상을 씁니다. 유료라서 살 지 말 지 고민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이 작품을 다 읽을 무렵엔 몇 골드 쓰셨는지 기억도 안 나실 거라고 말씀드립니다. 제가 지금 까먹었거든요. 원금 생각이 나지 않는 소비는 합리적 소비라는 말 들어 보셨나요? 읽어주세요. 전 이 소설 보고 순수하게 웃겨서 웃는 사람이 세상에 한 명이라도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이 커피가 식기 전에 돌아올게>의 주옥 같은 포인트들은 브릿G팀이 추천사에서 다 짚어 주셨습니다. 한 여대생이 천지 삼라만상 우주만물의 방해를 헤치고 이 커피가 식기 전에 돌아오겠다는 말과 함께 떠난 (이미 작품 중반부터 前 딱지가 붙은)남자친구의 커피를 식지 않게 지키려는 고군분투기. 가감할 것 없이 이 아이디어 자체가 스토리의 원동력입니다. 글의 짜임새가 독자가 이거 이외에 다른 걸 생각할 틈을 안 주고, 다른 걸 생각하실 필요도 없어요.(이 점을 생각하면 스릴러라는 장르 분류가 찰떡같이 여겨집니다.) 그저 물살 같은 필력의 흐름에 올라탄 후 거기에 마음을 맡기고 매끄럽게 계속 읽어 가시면 됩니다. 편집부 추천을 따라 팝콘 꼭 챙기시고요.
다만 읽기 시작하시기 전에 한 가지 제안 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각종 수난을 겪는 주인공도 좋지만, 커피에 좀 더 집중해보는 건 어떨까요?
작품에서도 한 번 언급되는 열역학 법칙, 그 중에서도 열역학 제2법칙인 엔트로피를 설명할 때 자주 쓰이는 예시 중 하나가 바로 뜨거운 커피입니다. 뜨거운 커피 한 잔이 완전히 식으면 커피에 있던 열은 주변 공기로 모조리 발산되고, 커피가 있던 전체 계의 엔트로피가 영구적으로 증가합니다. 자연 상태에서 이 커피가 다시 더워질 방도는 없습니다. 이 직관적이고 경험적인 법칙은 사랑의 속성을 설명할 때도 종종 끌려오죠. 아무 노력도 않을 때, 즉 자연 상태일 때 사랑의 열정은 식을 수밖에 없고 열정이 사라지는 순간 사랑은 끝납니다. 연인들은 이 고립계 속 사랑의 종말을 막아보겠다고 그야말로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애를 쓰지만, 언제까지나 처음과 같은 사랑이 이어질 수 있는지는? 글쎄요.
그러니 작품소개의 문구처럼, 이 소설은 삼국지와는 하나도 관련이 없습니다. <차=커피>가 아니라 <커피a엔트로피 증가/사랑a커피/사랑a엔트로피 증가>. 이건 사랑의 수명, 특히 열죽음이 오기 직전인 사랑의 유통기한에 대한 이야기예요. 그렇다면 ‘커피를 식지 않게 지키는 주인공’도 더는 아스트랄한 괴인이 아니죠. <이 커피가 식기 전에 돌아올게>는 헤어지자는 연인한테 아직 내 사랑은 식지 않았다고, 사실은 자기도 진즉 식은 걸 느끼면서도 한 번쯤 말해볼 수밖에 없는 심정에 대한 은유를 유쾌한 논조로 풀어내고, 독자들은 어쩔 도리 없이 이 사랑스럽게 미친 주인공의 편을 들게 됩니다. 모든 사랑이 언젠가 끝난다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라지만, 어떻게 그걸 지금 사랑하고 있는 사람에게 말하겠어요? 못된 짓이잖아요 그건.
그러니 우리 그냥, 사랑이 끝장난 세상이 도래하려는 걸 온몸으로 막아내는 주인공의 분투를 응원해주기로 해요. 혹시라도 커피 안 쏟게 기도도 좀 해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