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이야기인데도 읽다가 몇 번이나 웃었습니다. 내용을 다 이해한 건 아니지만 이해하지 않아도 웃긴 건 웃긴 거죠. 농담에 대한 불문율 중 하나는 이게 왜 웃긴지 설명하지 않아야 한다는 거잖아요. 수준 높은 유머의 핵심은 종종 시크함에 있으니까요.
작가는 타고난 스타일리스트입니다. 억지 부리지 않으면서 적당히 매력적으로 쓰는 데 필요한 균형감각을 그냥 갖고 있는 사람 같아요. 물론 다른 작품도 더 읽어봐야겠지만요. 저는 이 이야기가 완전히 제 취향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건 작품을 독자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애쓴 흔적이 훌륭하게 가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관심 있으면 한 번 읽어보세요”하고 툭 놓고 간 듯한 작품인데 웃기기까지 하거든요. (쉽게 쓴 작품일 거란 얘기는 당연히 아닙니다. 그건 제가 말할 수 없는 영역이지요.)
스토리텔링은 두 해설자의 체스 경기 중계로만 이루어집니다. 이들의 실제 역할은 코미디 듀오예요. 애벗과 코스텔로처럼요. 경기의 시작과 끝이 곧 이야기의 시작과 끝인데 평범한 체스 경기는 아닙니다. 체스를 잘 몰라도 상관없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체스 애호가 입장에서 이 이야기를 읽을 때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긴 합니다. 제가 이해하기론 이 작품에서 체스는 요리로 치면 프라이팬 역할을 하고 있거든요. 중요한 도구이긴 하지만 <퀸스 갬빗>(2020)처럼 현실의 체스를 요리의 핵심 재료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아요. 프라이팬에는 온갖 재료가 희한한 조합으로 담겨 있고 그래서 더 개성 있게 느껴집니다.
저는 이 이야기가 가진 매력의 중심에 ‘불친절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만 보면 이 작품이 선보인 마법 같은 체스경기에는 꽤 많은 설명이 필요해요. 자본주의와 파시즘, PC와 사보타주, 그리고 러브크래프트가 어떻게 체스 전략에 녹아들 수 있는지 직관적으론 알기 어려우니까요. 하지만 앞서도 언급했듯, 그걸 친절하게 설명해서 아다리를 맞추는 순간 이야기의 매력은 시들고 말 겁니다. 적어도 이 정도로 신선한 느낌은 아닐 거예요. 그러니까 작품 속 해설자는 체스 경기를 지켜보는 관객이 그 모든 전략과 규칙을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는 듯 천연덕스럽게 경기를 중계하지만, 작가는 독자가 그걸 낱낱이 이해하려고 애쓰길 바라진 않을 거란 얘기죠. 헐렁하면서도 시크한 구성 자체가 이 작품의 매력 포인트니까요.
‘뭐, 가끔은 멍청한 글도 리뷰 공모에 하나 정도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라는 작가의 코멘트마저도 익살처럼 느껴지는 것이, 이 작품 전체가 한 편의 말놀이이기도 하거든요. 두 해설자의 티키타카 형식을 빌려, 작가는 평소 자기 취향의 스노비시한 언어유희를 맘껏 즐기는 것처럼 보입니다. 실은 이게 너무나도 제 취향이라 제 입장에선 덮어놓고 응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이야기 또 써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