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과 판타지의 중간에서, 소설의 넓이를 훑다
군상극의 대표적인 작품은 <왕좌의 게임>이라고 한다. <왕좌의 게임>을 추천해 준 사람이 나에게 누가 주인공같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나는 당연히 북방의 영주가 아니냐고 답했다. 1부의 마지막화를 보기 전까지 누구나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결론은 아니었다. 이야기는 복수와 욕망을 중심으로 확장되고 확장되었다.
<탄투라 연대기>의 작가는 이 소설 역시 군상극의 형식을 띄고 있다고 한다. ‘연대기’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은 다양한 인물에 초점을 맞추어 역사를 재구성한다. 때문에 인물 한 명의 이야기를 진득하게 이야기하기보다 짧은 호흡으로 여러 명을 조망하고 있다. 때로는 흑조 군대의 시선으로, 때로는 카프카의 시선으로. 시점이 바뀌며 우리가 보아야 할 세계는 점점 넓어진다.
내가 처음 <왕좌의 게임>에 빠졌던 이유는 전개가 빠르게 변했기 때문이다. 계략과 음모 사이에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탄투라 연대기>를 집중해서 볼 수 있었던 이유도 비슷하다. 그러한 시점의 전환이 빨랐기 때문이다. 장편 소설을 연재하는 작가들 중에서는 주인공의 서사를 합리화하기 위해 주인공의 내면보다 감정을 서술하는 작품이 있기도 하다. 그러한 요소가 필요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사건과 대화가 더 궁금한 경우가 많다. 그 작품이 무협지나 판타지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한 점에서 초반 카프카의 정체와, 헨리와 잭의 우정, 레이철의 정체가 속시원히 밝혀져서 좋았다. 또 캐릭터의 장단점을 명확히 부각시켜 조화와 성장을 꾀하는 것도 장편 소설을 더 읽게 만드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전투 능력은 없으나 왕좌와 관련한 비밀을 숨기고 있는 잭, 전투력 만렙이지만 따스한 정을 느끼지 못했던 아렘과 같이 능력치를 적절하게 섞고 나타내고 있는 점이 좋았다.
한편, 이 소설의 장점은 전투신이다. 전투신이 담백해서 이해하기 쉬웠다. 전투신이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누가 누구의 칼날을 막고, 누가 공격하는지 헷갈릴 때가 많다. 전투 후의 대화로 ‘아, 누가 졌구나’를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소설의 전투신은 전투하는 양자의 입장에서 모두 서술해주어 전투의 흐름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헨리는 다시금 창으로 찌르기 공격을 했는데, 그 흑조 기병은 그 공격을 검으로 흘려 보내려 했다. 헨리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창을 돌려서 창 손잡이 끝으로 그 흑조 기병을 가격했다.”
내 입장에서는 이런 식으로 공격의 의도를 나타낸 것이 친절하게 다가왔다.
이 외에도 <탄투라 연대기>의 장점을 꼽자면, 섬세한 소품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황제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국민들이 많았다’고 설명하는 대신, 황제를 비난하는 카드게임인 ‘폴 재키’를 왕이 직접 하자고 제안하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황제 스스로 알만큼 국민의 비난이 거세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본인은 그에 개의치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세밀한 장치를 통해 서사가 빨라져도 중심을 잃지 않는 작품이 되면 좋겠다. 분명 작가님께서 프롤로그에 다루려고 한 이야기가 있을테니, 그것을 뚝심있게 밀고 나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