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학원물처럼 시작해서 어느 순간 퇴마 서사로 전환됩니다. 개인적으론 거의 장르가 바뀌는 수준의 전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는 한 사립고등학교에 신규 교사로 채용된 주인공이 겪는 기이한 사건들을 담고 있고요. 아쉽게도 후반으로 갈수록 몰입도가 떨어집니다.
주인공 ‘서기수’는 갓 들어온 사립고등학교에서 일주일 만에 학교에 매인 악귀와 대면합니다. 환각에 가까웠던 첫 대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서기수는 이 악귀가 ‘남수혁’이라는 학생을 노리고 있다는 강한 암시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날 실제로 남수혁에게 원인불명의 손상이 일어나죠. 서기수는 진지하고 부지런하게 문제를 해결하려 애씁니다. 그런데 이게 좀 이상해요. 서기수는 이 일을 본인이 반드시 책임져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어느 모로 보나 서기수의 포지션은 조력자거든요.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인물은 따로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서기수가 이 일을 숙명처럼 여길 이유는 딱히 없어 보여요. 물론 유난히 책임감이 강한 성격이라든가, 교직에 대한 사명감이 투철하다든가,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든가, 관련된 트라우마가 있다든가, 가능한 설명이야 많겠죠. 근데 이야기 속에서는 자세히 언급되지 않거든요. 결국 개연성의 문제인데, 같은 문제가 수차례 반복된다면 아무래도 좀 의아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배경의 톤이나 인물 심리에 관한 묘사는 좋아요. 그런데 3년 전에 죽은 학생의 모습을 한 악귀가 왜 하필 지금 서기수와 남수혁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건지, 아직은 이방인에 불과한 서기수가 학교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그토록 막중한 책임을 느끼는 이유가 뭔지, ‘최아은’은 어째서 3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죽은 제자 이름을 듣자마자 표정이 굳는지, 왜 서기수는 잘못한 것 하나 없이 다른 인물들에게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끼는지, 어느 것도 충분히 설명되지 않아요. 어쩌면 작가는 모든 전개를 빠짐없이 설명하기보다는 독자가 상상으로 채워갈 여지를 남겨놓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에서 주인공의 감정 묘사는 자꾸만 극으로 치닫는데 개연성이 받쳐주지 않으니 중간중간 몰입이 깨질 수밖에 없습니다. 인물의 내면 묘사가 아무리 치밀하다고 해도 개연성의 고리가 튼튼하게 연결되지 않는다면 독자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지요.
복선처럼 의미심장하게 제시된 요소들이 기다려도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것도 의문입니다. 작품을 완성해가는 과정에서 이야기가 처음 구상했던 것과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간 게 아닌가 짐작하게 되죠.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서기수가 동생의 임관 얘기에 그토록 격한 반응을 보인 데에는 어떤 사연이 얽혀 있는지, 죽은 이아연의 어머니가 보였던 미소에는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미스터리한 사건의 키를 쥐고 있을 것처럼 그려졌던 최아은에게는 어떤 과거가 있었는지 등이 충분히 해소되지 않아요. 뚜렷한 의도에 따라 배치된 것처럼 보였던 가시적인 단서들이 그냥 힘없이 묻혀버립니다.
중요한 사건이 일어나는 공간이나 동선이 구체적/특징적으로 묘사되지 않고, 매 순간 모호하게 그려지는 것도 몰입을 방해합니다. 악귀가 등장할 때는 특유의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일부러 몽환적이고 환각적인 묘사 방식을 사용한 것 같고, 그 점에서 노을의 색채 이미지와 꽃향기를 매칭하여 활용한 것은 유효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밖에 다른 요소들은 아주 낯설고 모호하게 느껴져요. 이건 신선한 느낌과는 좀 거리가 있습니다. 이 작품의 클라이막스에 해당하는 퇴마사 ‘김나정’과 악귀의 대결에서마저도 특별한 타격감이 느껴지지 않거든요. 전반적으로 표현과 내러티브가 서로 균형을 이루고 있지 못한 느낌이 듭니다.
그밖에는 후반부의 초점 이동이 눈에 띕니다. 초점 간 비중은 서로 다르고요. 교차되는 인물들의 시점이 이야기에 속도감을 부여합니다. 결말부 하이라이트를 인상 깊게 연출하기 위한 선택이었을 텐데 전 이 구도가 좀 더 일찍 나왔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앞서도 잠시 언급한 것처럼, 주인공 서기수는 이 이야기 전체를 끌고 가기엔 기본적으로 동력이 약하고 매력도도 낮거든요.
물론 작품 곳곳에서 고민의 흔적이 보이고, ―특히 도입부에― 독자의 시선을 붙잡아둘 만한 매력적인 요소가 여럿 드러난 것도 사실이지만, 전 이 이야기의 개연성을 훨씬 더 많이 보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 분량도 대폭 수정할 필요가 있어 보이고요. 거기에 순전히 개인적인 바람까지 하나 덧붙이자면, 장르적 정체성이 더 선명하게 부각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도입부에서 간간이 엿보이는 냉소적인 긴장감이 제겐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그 뉘앙스를 결말부까지 이어가면 하나의 장르물로서 이 이야기의 차별점이 완성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