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닿지 못할 내일과의 인사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콜러스 신드롬 (작가: 해도연, 작품정보)
리뷰어: 햄해미, 21년 4월, 조회 55

시간 여행의 클리셰를 비틀다

대부분의 시간 여행 영화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시간을 되돌려 누군가를 구하는 것도,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도 주인공의 몫이다. 그리고 수많은 시간을 거쳐 깨달음을 얻는 주인공은 지금 이 시간(되돌려진 시간)을 살고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누군가, 주인공의 어깨를 잡으며 말한다. “왜 멍하니 있어?” 주인공은 아무것도 모르는 주변인을 보고 미소지으며 말한다. “아무것도 아니야.”

정말 지나온 시간은 주변인에게 아무것도 아닌 시간일까. 깨달음은 주인공에게만 허락된 것일까. <콜러스 신드롬>은 시간여행자 클리셰를 비틀어, 시간여행자의 선택과 그 결과의 책임에 대해 되묻는다. 조연인 줄만 알았던 시간여행자 주변인의 이야기를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생각해보게 된다.

 

반복이 아닌 중첩, 리셋이 아닌 기억

주인공인 유슬은 그녀의 논문 발표일에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그녀와 재호의 아이가 1/20의 확률로 콜러스 신드롬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논문발표회장 앞에서, 그녀는 발표대신 아이를 선택하게 된다. 이것은 그녀의 선택이었다. 육아의 고된 순간들을 버티면서도, 그녀는 그녀가 선택한 일임을 계속하여 상기시킨다. 때문에 학자로서의 길을 포기하고 온전히 딸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녀에게 아이를 낳겠다는 선택은 몇 번의 시간 여행을 해도 변함없다. 그녀는 커리어와 육아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며 다디단 잠을 잔다. 꿈은 꾸지 않는다. 그러나 꿈에서 깨어나면, 그녀는 아이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준다. (어떤 아이였던지 말이다.)

한편, 주인공의 남편인 재호에게 아이의 유전병은 선택의 변수이다. 그는 첫 째 아이인 윤하와 완벽히 같은 아이를 만나기 위해 16번 째 시간여행 중이다. 시간 여행을 하면 할수록 나머지 선택은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는 ‘윤하’라는 하나의 목표와 나머지 부수적인 것들만이 남는다. “마치 꿈을 꾸는 거 같아. 꿈에서 깨면, 처음으로 돌아가 버릴 것만 같아.” 이 말은 빈말이 아니다. 그에게는 윤하와 있었던 때만이 현실이고, 나머지는 꿈이며 ‘깨어질’ 것들이다. 그러나 그도 몰랐을 거다. 깨진 조각을 몇 번이고 다시 끼우며 생긴 틈이 그의 계획을 완전히 틀어놓을 거라고는.

 

“세상이 어두워졌다. 꿈은 꾸지 않는다.” – 유슬

“마치 꿈을 꾸는 거 같다. 꿈에서 깨면, 처음으로 돌아가 버릴 것만 같아.” – 재호

 

둘은 현재에 관한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 유슬은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고자하는 반면, 재호는 윤하와 있던 과거를 살고자 한다. 목표가 다르다보니 시간 여행을 생각하는 태도도 달라진다. 유슬에게 15명의 아이는 같은 아이가 아니다. 그녀가 15번 딸을 가진 적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딸들은 모두 자매(‘동생’)가 된다. 중첩된 기억 속에서 딸들은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겹쳐진다. 그녀는 더욱 딸을 사랑할 수 있다. 반면, 재호에게 ‘현아’라는 14명의 실수와 ‘윤하’라는 1명의 목표가 있었다. 윤하 빼고는 모두가 같은 실패일 뿐이다. 그는 실험을 반복하며 처음의 순간으로 돌아갈 때까지 ‘리셋’한다. 마치 컴퓨터 전원을 껐다 켜듯 말이다.

리셋과 중첩은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온다. 리셋은 모든 것을 다 없었던 일로 하자는 것이다. 자신이 무언가를 조작할 수 있으며, 바꿀 수 있다는 이기적인 표현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새로 시작하면 된다.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다는 것은 아무 것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올바른 선택과 유일한 세상에 관한 의문

“먼 시간을 돌아갈 수 없게 된 걸까? 설마 진짜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안된다. 회복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재호는 윤하가 있는 세상을 ‘회복’한다고 말한다. 이토록 그가 하나의 가능성에 집착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윤하를 위해 무수한 시간을 반복한 것은 그의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해서가 아닐까. 윤하가 태어나기 전까지 그의 인생에 후회란 없었다. 언제나 시간을 되돌려 최고의 선택을 해왔으므로. 그러나 윤하는 다르다. 윤하는 그가 버린 생명이자 그의 도덕성에 난 흠이다. 경증 콜러스 증후군인 ‘유나’(과거 수하의 아이)도 가족의 보살핌에서 행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생활을 방해받는다는 이유로 너무나 쉽게 그 삶을 포기해버린 것이다. 유나의 눈에 담긴 우주를 보며 너무 쉽게 선택해버렸다는 죄책감, 최고의 선택이었을지 모른다는 후회가 중첩되어 타임리퍼라는 괴물이 만들어졌다.

재호는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자신이 딸을 버렸으면서, 딸을 ‘잃었다’고 표현한다. 죄책감을 덜기 위한 시도에 구원의 서사가 덧씌워져, 윤하의 세상만이 옳은 세상이 된다. 때문에 재호는 윤하에게만 미안하다. 유슬이 말했듯이, 재호가 말하는 불행은 스스로가 자초한 불행이다. 동시에 자신을 구하기 위한 이기적인 불행이다.

 

 

영원히 닿지 못할 내일과의 인사

유슬은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시간여행과 콜러스신드롬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또 자신의 어머니가 갑각류 알레르기가 있었던 것 같다고도 말한다. 자신 역시 유전의 확률로 시간 여행 능력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자의적으로 시간을 돌리지 않는다. 현아를 지키기 위해 재호를 죽인 책임을 진다. 그러나 그녀는 그녀의 딸들에게 ‘안녕’이라고 당당하게 인사할 수 있다. 그녀의 삶이 굴곡지게 되었더라도 딸을 향한 사랑은 언제나 진심이었으므로. 그녀는 다음번에 윤하나 현아를 만나도 똑같이 사랑하겠다 각오하고 있으므로. 때문에 그녀는 당연하게 다가올 내일이 두렵지 않다. 그녀의 기대와는 전혀 닿지 못할 내일이 오더라도 현재의 나는 항상 같은 선택을 할 거니까.

우리에게도 못가본 길이 있을 수 있고, 선택을 되돌릴만한 능력이 있을 수 있다.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게 보임에도 불구하고 현재를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 모든 것을 ‘리셋’ 또는 ‘언팔’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는 나의 선택과 결부된 다른 이의 감정을 헤아리는 책임감의 연장선일 수 있다. 나와 무관하지 않은 타인을 되돌아볼 때, 내 선택은 더욱 가치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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