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이유상(生已有想)이 빚은 작품, <설화, 왕들의 뒷담화>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설화, 왕들의 뒷담화 (작가: , 작품정보)
리뷰어: 그림니르, 21년 4월, 조회 69

어느덧 내일이 생애 첫 브릿G 리뷰단 활동의 마지막 날이다. 글솜씨가 부족한 나를 감사하게도 리뷰단으로 발탁해 주신 브릿G 관계자 여러분께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고맙단 말씀을 올린다.

 

 

마지막 리뷰를 쓸 브릿G 소설로는 <설화, 왕들의 뒷담화>를 선택했다. 우리나라 고대 역사를 <여우누이>, <구렁덩덩 신선비> 등 구비설화와 크로스오버한 역사소설이다. 제목에서 보여주는 대로 국왕인 주인공들은 각자 배경이 어느 한 나라에 국한되지 않고 고구려, 백제, 신라에 두루 걸쳐 있다. 심지어 궁예의 고려와 견훤의 백제도 등장하기 때문에 드라마 <태조 왕건>을 좋아하는 독자분이 이 작품을 함께 보면 기분이 미묘하게 즐거워질 것이다.

 

 

이 작품을 쓴 금낭아 작가는 상기한 구비설화 외에도, 작품 내에 등장한 실제 역사인물이나 해당 인물의 활동지와 연관된 전설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작품에 채용하여 사람들이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와 역사인물을 바라보도록 유도한다. 이처럼 역사에 설화 등 다른 소재로 살을 붙이는 능력이야말로 역사 창작물 작가에게 가장 요구되는 힘이다. 독자들은 사실만을 그대로 나열하는 건조한 논문을 보려고 역사 창작물을 읽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처럼 역사소설을 즐겨 보는 독자들은 금낭아 작가가 이 능력을 갖추었단 것만으로 그가 역사를 다루는 창작자로서 평균 이상의 역량을 갖췄단 것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일연 스님(1206~1289)이 <삼국유사>에 남긴 말씀, “한 솥의 맛을 보는 데는 저민 고기 한 점이면 족하다(嘗鼎味一臠足矣)“를 아는 독자들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엔 약점이 하나 있어, 나는 재미있게 읽어 가다가도 가끔씩 그 약점 앞에서 멈칫하였다. 그래서 나는 이 자리에서 그 점을 짚고 넘어가 금낭아 작가의 문예적 성장을 도와주고 싶다. 리뷰단으로 발탁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작가에게 피드백을 주는 것은 더 나은 작품을 바라는 독자의 도리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실제 한국사를 배경으로 실존인물이 등장하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의 역사인식에 혼란을 줄 수 있는 <남당유고>와 대륙백제설을 활용했다. 역사 창작물은 대중의 역사인식 확립 및 제고에 기여하므로 검증된 사실에 근거해야만 하기 때문에 이는 이 작품의 가장 중대한 약점이다.

 

 

<남당유고>는 남당 박창화(1889~1962)가 남긴 저술들의 총칭인데, 역사 기록의 형식을 따르고 있지만 그 내용은 문헌 및 고고발굴 결과와 거의 교차검증이 되지 않은 박창화의 창작이다. 현재 국내의 역사학자들 중 <남당유고>를 신뢰할 만 한 사료로 이용하는 사람은 전무하다. 박창화의 창작물 중 가장 유명한 <화랑세기>는 그래도 소수의 역사학자가 활용하고 있지만, 이미 황룡사 9층목탑 찰주본기의 발굴로 <화랑세기> 내용이 실제 역사와 일치하지 않는단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에 <화랑세기>를 활용하는 역사학자들은 그에 관한 비판을 받는다.

 

 

이 작품에 활용된 <남당유고> 백제 편의 기록 역시 실제 백제의 사회상과 전혀 맞지 않기 때문에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낮다. 백제에서는 부계 혈통 못지않게 모계를 중시하여 왕자의 즉위에는 그 어머니의 신분, 지위와 친정 세력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따라서 만약 <남당유고> 기록처럼 개로왕의 어머니가 비유왕과 사통한 유부녀고, 그 동생 문주왕의 어머니는 비유왕의 둘째 왕후이자 눌지왕의 딸인 신라 공주였다면 개로왕은 아예 왕이 되지 못했거나 문주왕 사후에 겨우 즉위하였을 것이다.

(*물론 무령왕은 이런 계승 법칙을 깨뜨리고 즉위했지만, 그는 뛰어난 지략을 활용해 동성왕 및 자기보다 서열이 높은 왕위 계승자 전원을 척살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백제 왕위계승의 예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중국 대륙에 백제의 영토가 있었다는 대륙백제설은 역사학계에서 굉장한 논란을 낳은 주제이다. 그나마 <남당유고>는 대부분의 역사학자가 위서로 판단하기라도 했지만 대륙백제에 대해서는 아직 정설이 없기 때문에, 이를 창작물에 활용할 때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역사를 잘 모르는 독자들이 자칫 대륙백제설에 대한 논란을 모르고 그것을 고정된 사실로 받아들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금낭아 작가는 생이유상(生已有想)의 연꽃 봉오리처럼 뛰어난 역사 창작물 제작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런 작가의 손이 빚어내는 이 작품 <설화, 왕들의 뒷담화>도 연꽃이 피듯 약점을 극복하고 발전을 이루는 작품이 되리라 믿는다. 작가에게 고구려만큼 큰 감사를 드리며 앞으로도 좋은 역사 창작물을 만들어 주시길 감히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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