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 5일엔 어른동화를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진달래 선비 (작가: 유권조, 작품정보)
리뷰어: 햄해미, 21년 4월, 조회 65

유권조님의 작품은 인터넷 텍스트의 기능을 이용해 장르소설에 새로운 활력을 일으킨다. 최근 완결한 <진정한 의미의 텍스트 어드벤처>를 보고 잘 논(?) 터라 다른 작품도 궁금해졌다. 어떤 작품이 유권조님의 작품 세계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을지 찾아보전 중 <진달래 선비>에 관한 리뷰를 보게 되었다. 이 작품이 유권조님의 모든 세계를 담을 수는 없겠지만 일부를 대표할 수 있지 않을까 하여 리뷰를 작성해 본다.

 

1. 200+1자, 한 글자의 존재

이 이야기는 공백포함 201자로 쓰였습니다. (작가 코멘트)

이 작품은 201자의 작품으로 되어있다. 보통의 원고지 한 장이 200자인 점을 감안해 보면, 여기에 딱 한글자가 추가되어 2매 분량의 글이 완성되는 구조다. 그 한 글자의 존재가 신경쓰인다. 이전 작품인 <진정한 의미의 텍스트 어드벤처>가 한 번의 클릭으로 다른 결말을 맞았다면, 이번 작품은 한 글자의 증가 혹은 제한으로 글의 내용이 풍부해지거나 축약된다. “작은 언덕을 해 지는 방향으로 끼고 조그마한 집이 한 채 있었다.”라는 문장에서, ‘조그마한 집이 있었다’로 표현해도 되지만 “한 채”라는 말을 써 더 고독감을 강조시킨다.

한 편 더 많은 말을 쓸 수 있음에도 글자수를 제한하여 상상해볼 여지를 남긴다. 보통의 소설이라면 서사를 이어나가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서사보다는 묘사를 통해 201자를 채워나간다. 한정된 글자를 써야 하는 상황에서 깨알같은 디테일을 살려 더욱 있음직한 세계를 만든다.

땅은 사만칠천하고도 예순일곱이라 하였고 하늘은 십구만사천하고 셋이라 하였다.

또 그들은 땅과 하늘을 셈으로 말할 때에 입술을 쓰지 않았고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손가락을 구부리고 목을 기울이고 바닥을 치는 모든 것이 셈이었다. (3회-셈을 고민하는 사람들)

그럼 진달래 선비는 사만칠천번 동안, 십구만번 동안 손가락을 구부리고 목을 기울이고 바닥을 치는 모습을 본 것인가?

 그래서 내게는 <진달래 선비>의 이야기가 동화이자 시처럼 느껴졌다. 전래 동화같은 말투가 이야기의 보드라움을 더했고, 글자수가 제한된 환경에서 만들어진 여백이 생각할 거리를 늘렸다. 그렇다고 마냥 동화같은 작품은 아니다. 가납사니(13회)처럼 비뚤어진 마음을 등장인물의 행동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세계를 비판하는 작품은 많지만, 그 비판을 한 번 더 가공해 동화같은 상상력으로 풀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리고 흔하지 않다. 그래서 브릿G의 작품 중 이 작품이 소중하다.

 

2. 얼음판을 걷는 선비

1화부터 읽어보았을 때, 35회 <얼음판> 이야기가 유독 다른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링크를 클릭하면 새창으로 볼 수 있습니다.) 80회차의 이야기 중 35화는 1부의 완결을 알리는 말처럼 보였다. 동시에 작가님이 작품을 연재하는 이유가 드러난 것 같았다. 선비는 진달래가 흐드러진 봄날을 만날 때까지 “꽁꽁 언” 세계를 모험하게 된다. 그는 낯선 존재에게 말을 걸고, 직접 다가가며 얼어 붙은 세계를 녹인다. 물론 진달래 선배가 한 모든 여행이 다른 존재들의 세계를 180도 바꾸고, 구원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어른동화라고 부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진달래 선비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세계를 보게 한다. 직접 우리의 망원경이 되어 낯선 세계를 바라보게 한다. 우리는 그곳에서 삶의 조각을 발견하게 된다. 진달래 선비는 그 세계를 더 잘 보여주기 위해 아무리 험한 길이라도 “짚을 감고 흙을 뿌려” 관찰자로서의 중심을 잡는다. 우리에게 더 많은 낯선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짚을 감고 흙을 뿌”리는 것과 같은 디테일을 추가하는 것이 작가님의 소망이 아닐까. 그래서 작가님의 작품에는 인물의 마음보다 인물이 바라본 존재의 묘사가 두드러지게 되는 것이고.. <진달래 선비>의 다른 리뷰에서, 이 세계와 낯선 세계를 잇는 존재가 진달래 선비라는 말을 본 적이 있다. 그 말에 무척 공감한다.

그래서 단지 건너간 행위이지만, 진달래 선비는 웃을 수 있다. 그가 조심조심 건너간 얼음판에 작지만 선명한 생채기가 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작가님의 작품에 많은 단문 응원이 있다는 것이 그 증거가 아닐까. 이 균열을 통해 꽁꽁 언 우리의 상상력이 조금은 녹아 언젠가 봄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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