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사이버펑크란 그다지 먼 소설 속의 일이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는 거대한 이웃나라 중국의 사이버 검열 소식이나 안면 인식 기술 등에 공포에 떠는 한편, 자연스럽게 지문으로 핸드폰의 잠금을 해제하고 SNS에 사진을 올리며 자동으로 선택된 얼굴에 사람을 매칭시키죠.
그 때문일까요? 우리에게 사이버펑크라는 장르는 꽤나 익숙하고 인기를 끄는 장르가 되었습니다. 얼마 전 주목을 끌었던(적어도 실제 발매 전까지는 그랬던), 제목에조차 사이버펑크라는 단어를 넣은 게임 ‘사이버펑크 2077’은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받았죠. 누가 처음 만든 구호인지는 모르겠지만, 말 그대로 ‘사이버펑크는 지금입니다(Cyberpunk is Now).’
저는 사이버펑크가 압도적인 기술력을 그려내는 것과 달리, 사이버펑크라는 장르의 핵심은 역설적이게도 기술에 대한 반감, 거부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이 세계를 선도하고 문명을 발전시킨다면, 꽤 많은 사이버펑크 작품들이 우중충하고 비 오는 도시를 배경으로 삼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이버펑크는 오히려 기술이 사람을 옥죄고, 지배하는 수단으로 작동되는 것을 염려하며 주도권을 기술로부터 인간에게 되돌리려 하는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도련 작가님의 「바이오 드론」은 사이버펑크적인 요소에 크게 영향을 받은 작품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의 뇌를 꺼내 연산 장치로 이용하는 기동타격 드론이라는 발상은 그 자체만 보면 꽤나 흥미롭고 재밌을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렇게 마냥 재밌기만 하다면 굳이 ‘사이버펑크’라고 소개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드론이 진짜 무서운 점은, 작품 초반에 묘사되었듯이 시위를 진압하고, 시민에게 최루탄과 고무탄을 쏘는 등 국가가 시민들을 (폭력을 통해) 통제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니까요.
그렇지만 이 소설의 진짜 주인공은 드론이 아닙니다. 한 가족, 더 정확히는 할머니와 그 손녀가 주인공이지요. 그리고 거기에서 이 소설은 시작됩니다.
「바이오 드론」은 2018년경, 한반도에서 전쟁이 공식적으로 종결될 거라는 희망이 가득 찬 시기를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만, 작품 내에서는 한 가지 비틀기가 들어갑니다. 바로 종전 선언 이후, 서울 시내가 드론으로 인해 공격을 받는 것이지요. 이를 북한의 도발이라고 판단한 한국은 새로운 무기를 도입하기에 이릅니다. 그것이 바로 위에서도 설명한 드론입니다.
이 드론에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의 뇌를 연산 장치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서 뇌를 꺼내 액체가 담긴 통에 넣고 적인지 아닌지 직접 판단하게 하여 공격을 가한다는 점에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바로 국가에 의한 폭력이 드러납니다. 그 양상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겠습니다. 먼저 하나는 직접적으로 시위대를 드론이 공격하는 장면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말 그대로 국가는 시민들을 상대로 폭력을 저지릅니다. 손녀딸인 주인공 ‘민경’이 어머니 ‘현옥’에게 보여주는 외국의 시위 장면과 오버랩되는 이 장면은 직접적으로 국가가 시민들을 어떤 방법으로 통제하려 하는지 보여주면서 (그리고 일정 부분 실제 사건과 겹쳐지면서) 작품에 등장하는 기술 –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바이오 드론’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해주는 요소로 작동합니다.
두 번째는 위의 것보다는 조금 더 간접적인 방향으로(그렇지만 충분히 쉽게 읽어낼 수 있게) 드러납니다. 바로 국가의 뇌 강제 징집입니다. 당초 지원자의 뇌만 받던 프로젝트는 국가의 위기라는 명분을 통해 강제 징집 제도로 바꿉니다. 대한민국에 실재하는 징병제도를 연상케 하는 이 제도는, 징병제와는 반대로 사회적 약자 계층을 우선적으로 노립니다. 바로 노인들이죠. 이 제도는 이 때문에 사회의 힘없는 사람들을 산 채로 뇌만 꺼내고 병기로 부려먹는 제도로 만들었고, 많은 사람들이 작중에서(적어도 시위대 진압 장면이 퍼지기 전까지는) 반대하는 걸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 징병을 피하기 위해 할머니 주인공 ‘성순’과 그 가족들이 노력하는 게 이 작품의 중심 이야기를 끌고 가는 소재가 됩니다.
작품은 크게 두 파트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튼튼한 몸을 가졌다가 갑자기 뼈가 골절되며 징집 대상으로 내려앉아버린 할머니 ‘성순’이 주도하는 초반부, 그리고 그의 손녀딸 ‘민경’이 주도하는 후반부입니다. 하지만 두 파트 모두 한 가지 주제를 가리킵니다. 바로 국가가 자행하는 폭력을 헤쳐나가는 소시민입니다. 어떤 사람은 (평주처럼) 애국심을 말하며 폭력을 옹호하고, 어떤 사람은 (민경처럼) 그에 대해 꿋꿋이 반대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작품에서 그려진 현옥, 현우, 현준 삼자매가 그렇듯이 소시민적으로 행동할 것입니다. 어떻게든 법을 피해가려고 애쓰고, 더 큰 의도보다는 자신과 가족들의 안녕, 평안을 위해서 행동합니다. 자신의 가족이 국가에게 강제로 끌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꾀를 생각해내고, 국가가 저지르는 폭력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가장 먼저 달려갑니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런 태도를 한껏 긍정합니다. 결말부는 그런 정서를 최대한으로 보여주는 아름다운 결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그러니 꼭 결말부까지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지만 작품에 대해서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다소 하나하나의 에피소드의 밀집도가 떨어져서 이야기가 자꾸 다른 길로 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거든요. 특히 초반의 사이비 종교 이야기는 후반부로 갈수록 다른 이야기에 밀려 다소 흐지부지 된 것이 아쉬웠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점을 제외하고는, 정말 좋은 단편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 리뷰를 쓰면서, 「바이오 드론」에서 논의된 것은 현실에서도 많이 떨어진 게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글을 쓰는 시점에는 현실 대한민국에서 여성 징병제가 화두에 오른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 글을 읽고 있자니 화제와 글이 겹쳐 보이며 여러 생각이 들더군요. 그 뿐만 아니라, 사이버 상의 국가 검열과 안면 인식을 통한 통제는 지금도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입니다. 이런 것들을 보며 사이버펑크는 지금이라는 문구를 다시 한 번 떠올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이버펑크의 시대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지, 도련 작가님의 「바이오 드론」을 읽으면서 조금의 실마리나마 잡으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