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위에는 많은 영혼약탈꾼들이 존재하고 있다. 조금만 방심하면 그들은 슬며시 다가와 영혼을 조금씩 갈아먹고 가버린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영혼은 파괴되어가고, 언젠가는 그런 것이 있었던가 싶은 생각이 들만큼 영혼이라는 것은 감쪽같이 사라질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 하냐고?! 이미 많은 이들이 그렇게 영혼을 약탈당해 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영혼이 있다면, 태극기를 흔들며 자신들만 애국자라 칭하지도 않을 것이며 정작 자기네들이 빨간 옷을 입고 설치면서 상대를 보며 빨갱이라고 외치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근데 그 자칭 애국자들은 왜 성조기도 같이 흔드는 것일까?! 그들의 영혼을 약탈해간 자들이 혹시 미국인인 것일까?! 흠…;;; 쓸데없는 소리는 집어치우고, <영혼약탈꾼>이나 살펴보자.
동과 서가 서로 싸우고, 북이 나타나 최후의 이익을 취하는 전쟁터. 수천의 사람이 죽어있는 이 공간에 세 사람이 마주하게 된다. 선의를 가진 마법사라고 스스로 칭하는 자와 전투 중에 다친 백인대장, 그리고 잔해 수집단 소속의 수색꾼이 바로 그들이다. 시체들만 가득한 이곳에 살아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과 백년에 한 번 나타나 재앙을 부르고 죽은 사람을 먹어치운다는 ‘영혼약탈꾼’의 전설이 맞물려, 이 세 사람은 서로를 ‘영혼약탈꾼’이 아닐까하는 의심을 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자신에게 향하는 의혹을 풀기위해 서로에게 해명을 하지만, 서로가 서로의 해명 하나하나에 말꼬리를 붙잡고 의심하고, 또 의심한다. 자신을 향한 선의에 약간의 믿음을 보이며 연대해서 또 다른 누군가를 향해 더 큰 공격으로 맞서보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서로 의심받고 의심하며 결코 검증되지 않을, 그래서 결코 끝나지 않을 이야기만을 붙잡고 팽팽히 맞서는 모습이 펼쳐진다. 흡사 얼마 전까지 볼 수 있었던 대선토론을 그대로 옮겨놓은 모습이랄까?!
작가가 대선토론을 보며 떠올라서 쓴 이야기라는데 어떤 모습을 봤는지, 또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어느 정도는 짐작이 간다. 지금이야 새로운 대통령도 탄생했고, 새로운 세상을 향한 첫 걸음에 기대감으로 한껏 부풀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대통령 선거가 있기 직전까지 펼쳐졌던 대선토론을 보면서는 가지고 있던 희망과 기대가 점점 사라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어떻게 모두가 하나같이 그렇게 실망스러울 수가 있었을까?! 왜 상대방을 깎아내리지 않고서는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것인지, 왜 상대의 약점보다 자신의 강점을 보이려고 하지 않는 것인지, 왜 내 말만 그렇게 옳다고 우길 수 있는지, 왜 다름이라는 말은 모르고 틀림이라는 말만 알고 있는 것인지… 진짜 어찌 그렇게 국민들의 영혼을 약탈하려고 애들 쓰는 것인지 도대체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어쩌면 물러날 곳이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그랬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뒷생각은 하지 않고 끝까지 가야만 한다는 입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서로 의심만 하고 싸우다보면 결국에는 파국만이 남을 것이라는 이 이야기 속의 메시지와 같은 결과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싶은 의문도 든다. 물론 현실에서 그리 극단적인 결과로 흐르지는 않겠지만, 지금 이순간 아무도 모르게 그런 파국에 서서히 침식당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기도 하니까.
이 작품이든 대선토론이든, 파국을 향하는 것만 같은 그들의 걸음을 보면서 여전히 더 좋은 결말, 더 좋은 세상을 그렸던 것도 사실이다.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를 조금씩 배려하려는 마음만 있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살기 좋은 세상이 그려질 거라는 -어쩌면 당연한!-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당연하기에 오히려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당연하기에 오히려 그렇게 되돌리기 쉬울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생각을 말이다.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영혼 약탈자들의 행동에 피로를 느끼고, 그 쌓이고 쌓인 피로에 찌들려 최종적으로 모든 선택들을 ‘너네들 마음대로 해라’ 라는 식으로 내려놓고 나 몰라라 하곤 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최근에 봤고 또 보고 있는 중이다. 다시는 겪지 말아야 할 과정과 결과들 속에서 나 같은 개인이 도대체 뭘 할 수 있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뭐가 진실인지 또 어떤 선택이 그래도 좀 더 나은 것인지는 결국 우리들 개개인이 판단해야 할 일이라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물론 모든 것을 알고 정확하게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조금 더 관심을 갖고 하나라도 더 알아가려는 개인적인 노력이 시작된다면 뭔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그 작은 시작이라는 씨앗이 결국에는 우리의 삶 전체에 많은 영양을 공급할 잘 익은 열매로 돌아오지 않을까?!
쓸데없는 소리로 정작 <영혼약탈꾼>에 대한 이야기는 뒷전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지만, 그만큼 다른 생각들을 할 수 있게 만든 것이 <영혼약탈꾼>이다. 1인칭 시점에 대화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작품이라는 특징도 있지만, 그런 특징을 굳이 생각하지 않을 만큼의 팽팽한 긴장감이 잘 유지된 작품이었다. 덕분에 이런 쓸데없는 생각들도 작품을 순식간에 다 읽고 난 후에야 할 만큼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다. 비교적 짧은 분량에 부담 없이 읽었지만 그 후에 따라오는 잔상에 이런저런 생각들을 할 수밖에 없었던 작품, <영혼약탈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