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리뷰를 쓰려고 생각만 하고 있는 와중에 의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의뢰를 계기로 다시 여러 작품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쓸 힘을 얻었습니다.
타임리프 물을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막연히 과거로 돌아간다고 생각해보면 어쨌거나 모든 것이 ‘돈’으로 귀결되지 않을까 했는데 더 구체적으로 나눠보니 답이 조금은 바뀌더라고요. 만약 초등학생으로 돌아간다면? 그 때는 학업을 잘해내서 조금 더 명예롭고 권력을 가진 삶을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닐까요, 역시 돈도 있으면 좋겠지만요. 대학 무렵이라면 첫사랑 혹은 훗날 성공할 연애 상대를 만나는 사랑에 중점을 두는 것이 목적이 될 수도 있겠고, 아주 먼 옛날 그러니까 제가 태어나지도 않는 시대로 돌아간다면 그 때는 역사에 손을 대는 혁명가 혹은 밝혀지지 않는 영웅이 될 수도 있겠네요.
미드 <아웃랜더>가 좋은 예시가 될 수 있겠네요. 비슷한 시기에 나온 <왕좌의 게임>보다 훨씬 더 좋아하는, 타임리프 물입니다. 주인공이 태어나기 이전의 과거로 돌아가게 되었기에, 주인공은 역사의 한 축에서 역사를 조금이라도 뒤틀어보기 위해 노력하죠. 현재 시점에서 일어났던 일이 과거로 가면서 이해가 되는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기법도 볼만하고요. 사족이지만 원작 소설이 번역되다 말아서 결론은 보지는 못했는데 황금가지에서 다시 번역해서 출판해 주시면 어떨까요…. ㅠㅠ
이렇게 타임리프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내용을 정리하면서 <타임리프 소설> 문학상에 도전할 생각으로 쓰셨다고 하시기에 다른 작품들과의 공통점과 차이점, 특이점에 대해 정리해 드리고자 브릿G 출판부가 선정한 타임리프 소설에 관한 큐레이션을 참고해봤습니다.
2.
큐레이션에서 특히 재미있게 읽은 세 편을 먼저 적어 볼게요.
– <쿠소게 마니아> ,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 <나를 위한 노래> 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쿠소게 마니아> 는 사실 쿠소게가 뭔지도 모르고 보기 시작했습니다. 출판작에 선정된 것도 알고 있었는데 출판되고 나면 책으로 만나보려고 미루고 있었는데 기회가 닿아서 잘 읽었네요. 세이브 포인트가 있다는 건 특이할 것이 없었지만 앞 뒤 자르고 ‘특정 상황’만 구성해 놓았다는 점이 신선했습니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사실은 자신도 모르고 있던 낯선 능력을 활용하는 것, 제한된 시간에 온갖 장애물을 넘어서 탈출을 해야 된다는 점이 어쩐지 두렵기 보다 오기를 불러일으킨다고나 할까요. 읽는 독자에게 그런 감정을 이끌어 올 수 있다는 것이 또 신기했고요. 어떤 문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감상이 달라질 수 있구나 싶었어요. 그러다 아, 어쩌면 이 소년은 게임의 캐릭터일 수도 있겠다 싶었고 검색을 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게임 캐릭터일 가능성이 농후하더라고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는 1930년대 소설 느낌이었는데 실제 원작이 1935년에 발표되었더군요. 원작의 세계관과 인물을 차용하고, 관찰하는 시선을 유지한 것이 굉장히 매력적이었습니다. 특히 주인공이 타임리프한 인물을 관찰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타임리프한 인물 자체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도 특이했고요. 옥희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순수함이 남아 있는 어린 시선이기 때문에 생각의 폭이 좁아서 끝까지 타임리프에 대해 조금도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더 높은 점수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타임리프 큐레이션이 아니었다면, 태그가 아니었다면 더더욱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네요. 게다가 ‘현재를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볼 여지도 남겨주었고요.
<나를 위한 노래>는 좀 섬뜩했어요. 과거로 돌아가는 것!!! 단지 그것만 생각하고 있던 ‘나’가 어느날 과거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이제는 불행하게 살지 말아야지, 초등학생부터 다시 시작해서 앞으로는 핑크빛 미래만 그려나가야지. 하던 마음을 단번에 날려버릴만한 사건이 펼쳐져 있었거든요. ‘나’가 과거로 돌아왔다면 당연히 그 자리에는 없었어야 할 또다른 ‘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그건 ‘나’ 뿐만이 아니라 ‘나들’이라는 복수형이었지만 어쨌거나 ‘나’는 또다른 나를 죽이려 했지만 실패하고 말죠. 과거의 ‘나들’처럼, 지금을 지키고 있는 나는 12살이지만 슬프게도 사람을 죽이는 손길이 능숙할만큼 ‘나’를 죽이는데 익숙하니까요. ‘나들’을 다 죽인 나는 결코 행복하지 않습니다. 언제 또다른 ‘나’에게 습격 당할지도 모르는 삶을 살며 그 역시 나인 것을 알지만 죽여야만 하는 운명이, 행복해 질 수가 없겠죠. 그렇지만 제목에 왜 ‘노래’가 들어가는지는 잘 이해가 안되네요. 노래에 대한 암시가 있었는데 놓쳤나 싶기도 하고요.
3.
3-1
이제 모험님의 <손가락의 남은 시간>을 읽어도 될 것 같은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당연히 돈이지!!!! 라고 막연한 생각만 가졌던 짧은 생각에서 조금은 벗어난 것 같았습니다. 사랑도, 명예도, 학업도 단순히 노래방의 시간을 늘리기 위해 타임리프를 하는 소녀도 있었으니까요1. 하지만 성식의 상황을 보고 있자니 역시 돈이 최고인 것 같네요.
일단 타임리프로 얻을 수 있는 목적을 돈으로 정하고,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몰아넣은 설정은 잘 꾸며져 있습니다. 하지만 좀 더 숨이 턱턱 막힐 듯 한, 답답하고 숫기없고 목소리 내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성식이라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강력한 상황 설정이 더 있었으면 어떨까 생각해 봤습니다. 로또를 들고 [제발]을 되뇌이는 건 평범한 소시민들이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상상이니까요.
이 소설에는 ‘악마’라는 캐릭터가 주인공보다 더 매력적이여서 전 잠시나마 악마를 응원하기도 했습니다. 두 아이를 가진 가장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악마가 상당히 능숙하게 자신의 능력을 판다고 생각해서였습니다. 마치 “도를 아십니까.” 가 점점 진화하는 것처럼 악마라는 캐릭터도 점점 진화하고 있구나 싶었어요. 처음엔 친절하게, 낯선 상대라도 관심을 가질 법한 이야기를 합니다. “길 좀 물어볼게요.” 같이 웃으며 “잘오셨습니다.” 라고 말하죠. 마치 성식이 있어야 할 곳에 돌아오기라도 한듯이요. 그리고는 솔깃할 정도로 신기한 이야기를 쏟아 냅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면!, 명예있는 남자가 되려면!, 결국은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을 줄 수 있다고 꾀어내죠.
하지만 댓가 없는 친절은 없는 법이라 악마는 시간을 돌리는 능력에 대한 댓가로 성식의 몸을 원하고, 기겁한 성식은 줄 수 없다고 몸을 빼는데요. 그러자마자 악마는 태도를 바꿉니다. “그러다 조상이 노하며 너희 집은 화를 면하지 못…!”한다고 하는 전형적인 도를 아십니까처럼요. 이렇게 회유와 협박을 능숙하게 다루는 악마라니 어딘가의 영업사원으로 본다면 굉장히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게다가 네가 원해서 주는거야 그렇지? 가지고 있으면서 쓰지 않아도 되니까 얼마나 너한테 좋은거야? 라는 식으로 어르고 달래는 걸 보고 있자면 이 악마를 외교부로 보내고 싶은 욕심도 생기네요.
3-2
이렇게 어르고 달래서 생긴 능력을 ‘쓰지만 않으면 아무 일 없다.’고 순진한 생각을 한 것과는 다르게 바로 다음 날 회사도 빠져가며 시간을 돈으로 바꿀 생각을 하는 걸 보면 좀 급박한 태세전환이 아닌가 싶은 의아함이 남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성식에게 간절함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처음 악마와 계약했을 때부터 기왕 계약했으니 돈이지! 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렸으면 다음날 바로 계획을 세우고 착수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을 것 같습니다.
놀이터에 따라가는 장면이랑 몇 군데 수정을 하셨던데 수정한 것이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그렇지만 현태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추악한 아주머니’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 비약이 심한 것처럼 느껴지네요.
그리고 성식의 성격이 답답하며, 소극적이라서 대화를 할 때마다 말을 더듬고 늘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식의 성격을 보여주기 위해 말줄임표(..)를 자주 쓰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대화체가 아닌 문장의 끝이나 중간에도 말줄임표를 쓰신 것은 수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몸이라니.. 이건 완전히 장기밀매와 같은 방식이 아닌가? 이건 위험하다.. 이 정체 모를 남자와 같이 있는 것 자체도 위험하지만 저런 말도 안되는 교환 조건이라니..
이 문장의 경우
몸이라니. 이건 완전히 장기밀매와 같은 방식이 아닌가? 이건 위험하다. 이 정체 모를 남자와 같이 있는 것 자체도 위험하지만 저런 말도 안되는 교환 조건이라니.
라고만 고쳐주셔도 가독성도 좋아지고 늘어지는 느낌을 줄 일 수 있습니다. 또한 올바른 표기법이기도 합니다. 성식의 생각이란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식의 말투에서 성격을 짐작할 수 있으니 평서문의 경우에는 마침표를 하나만 찍어주시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마지막에 미혜의 교통사고가 났죠.
우연히 얻은 능력으로 일확천금을 노리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건 일견 뻔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악마의 독특한 영업능력과 그 일확천금의 방식이 노름판이라는 건 이 소설의 매력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2. 에서 살펴본 것처럼 특이한 설정이나, 특이한 문체, 혹은 당연할 것이라 여겼던 것을 당연하지 않게 만드는 반전 등이 조금 부족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4.
공모전에 내실 작품인 것 같아서 더 분석적으로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평소 제 리뷰의 목적이 홍보나 감상인 것과는 다르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동물의 연예> 도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지치지 않고 연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