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는 무엇으로 정치가가 되는가 공모(비평)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미세 정치가 (작가: 이상문, 작품정보)
리뷰어: 새벽마라, 21년 4월, 조회 70

고해성사로 시작할까요. 사실 큰 기대 없이 클릭한 소설이었습니다. 첫 인상은 무난했지만 굳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를 물으신다면 부정적인 쪽이었습니다. 제목에 쓰인 두 단어가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었거든요. 그 덕에 오히려 기억에 남았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미세하다’는 표현과 ‘정치가’라는 표현이 제 머릿속에서는 도저히 맞물리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제게 이 소설을 읽게 한 것은 결국 51페이지라는 분량이었고…. 에, 뭐.

죄송합니다. 얄팍한 식견으로 귀인을 몰라뵈었습니다…!

 

이 소설의 시작은 미미합니다. 아무도 듣지 않는 수업에서 그저 ‘급우’일 뿐인 학생이 질문을 하고, 마침 점심시간에 근처 자리에 앉은 일을 계기로 말을 트며 주인공과 ‘급우’는 모의전의 세계로 나아갑니다. 이후 모의전 카페에서 나타나는 ‘급우’의 행보를 주인공이 중계하는 것이 소설의 줄거리입니다.

솔직히 평범하고 익숙한 구조입니다. 제목으로 대표되는 주인공과 관찰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소설 속 화자. 이 분야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이라면 ‘셜록 홈즈’가 있겠지요. ‘위대한 개츠비’도 비슷할 지 모릅니다. 작가님의 소개글에 미루어 가까이에서 작품을 소개하자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도 유사한 맥락일 수 있겠네요.

다만 앞서 소개한 세 작품과 이 소설의 차이는 주인공과 화자 간에 상대를 바라보는 온도 차이에 있을 겁니다. 결말에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화자가 엄석대를 보는 시선은 비탄에 가까운 반면, 화자가 ‘미세 정치인’을 보는 시선은 냉소적입니다.

그러나, 과연 이런 시점 차이만으로 ‘이 소설이 재미있었는가?’ 하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지는 않겠네요. 개인적으로는 이 같이 담백한 서사 구조에 호의적입니다만. 아무래도 앞의 요소는 재미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닐 겁니다.

 

그렇다면 소재는 어떤가?

이 소설의 소재는 ‘정치모의전’입니다. 제가 인터넷 문화에 경험이 일천한 편이라 사실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님의 오리지널 설정인가 싶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이 글을 쓰기 전에 검색해 본 결과, 2010년도부터 유행했던 문화였다고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큰일 날 뻔 했네요!

그런데 사실 정치모의전도 이 소설의 큰 매력포인트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정치모의전은 주인공이 미세 정치인과 관계를 맺는 계기가 되고, 나아가 카페 사람들과 만나게 되는 도구로서 작용하죠. 네. 거기서 끝입니다. 화자는 작품 끝무렵에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실제 정치에 나서게 되며, 정치모의전에 몰입했던 시절을 계단 역할로 마무리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왜 모의전이어야 했지?’ 다른 소재로는 이 같은 이야기를 만들 수 없었을까? 이 소재를 더 깊이 천착했다면 이 이야기가 더 재미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네. 않았을 거고, 없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모의전이란, 결국 실제의 싸움이 아닌 시뮬레이션이기 때문입니다. 연습이고, 현실의 모조품이고, 탁상공론이며, 진짜가 아니라 가짜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반론에 예상이 갑니다. 가짜가 뭐가 문제냐? 저 유명한 게임 월드컵을 보라. 유구한 역사의 <항성공업>부터 사이버 감염성 질환 <전설의 리그>까지 얼마나 기라성 같은 가짜들이 많았냐. 저는 이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아뇨, 그건 진짠데요.’

 

말장난 하는 게 아닙니다. 끝까지 들어주세요. ‘미세 정치인’은 가짜인 채 막을 내렸고, 화자는 진짜가 되었습니다. 이 둘 사이에 대체 무슨 차이가 있기에 현실도 가상도 기준이 될 수 없는 경계를 통해 진짜와 가짜를 가르는지. 지금부터 ‘미세 정치인’의 주인공 박씨를 중점으로 설명해 보고자 합니다.

 

박씨는 예. 뭐. 평범한 고2입니다. 특이점이라고는 ‘정치모의전’이라는 취미에 필요 이상으로 심취한 것 정도네요. 취미에 집착하고, 사교성이 부족하고, 주인공을 다른 세계로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셜록 홈즈’와 비슷합니다만, 안타깝게도 히어로는 아닙니다. 소설 속 그의 행보를 보면 오히려 빌런에 가깝죠.

그렇다면 질문이 필요할 겁니다. ‘무엇이 그를 빌런으로 만들었는가?’ 그와 달리 빌런이 되지 않고서도 모의전을 즐겼던 회원들은 무엇이 달랐는가? 명백합니다.

회원들의 모의전은 그들 사이의 관계보다 우선시되지는 않았습니다. 친목 모임에서 그들은 모의전을 잠시 내려놓고 서로를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고, 시험 같은 공동의 중대사 앞에 모의전을 중단하는 인간미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그저 인간미가 없어서 박씨는 빌런이 되었던 것인가? 그것만은 아니죠.

우리 주변에도 사교적이지 않으면서 일 밖에 모르는 캐릭터 한 명 쯤은 보신 적 있지 않나요. 그런 든든한 워커홀릭과 박씨 빌런을 가르는 선은 앞서 말씀드린 진짜와 가짜의 경계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박씨 빌런이 집중한 건 결코 사실이 될 수 없는 모조품이었습니다. 하나씩 두면 무해한 요소가 조합되어 그를 빌런으로 만들었던 것이죠.

소통을 포기한 채, 가상도 되지 못한 허상에 매달린 외골수 말입니다.

 

이런 박씨의 특성을 이해하면 제가 말하는 가짜에 대한 실감이 느껴지실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박씨는 진짜가 될 수 있었습니다. 모의전을 2년 미만 겪은 것만으로 정치의 현장에 나아간 화자가 그러했다면, 그들 중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던 박씨는 운동가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고 어느 선거 캠프의 말단으로 일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기를 포기하고 SNS의 명찰로 남은 박씨의 말로는 독자에게조차 인식되지 못합니다. 화자는 10년 후 쯤, 후배 같은 사람이 왜 정치를 시작했느냐는 물음을 받고 나서야 ‘그 때 그런 별종이 있었었지’ 라며 그를 기억하지 않을까요.

결코 긍정적이거나 추억 어린 감회 없이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이 소재를 다루는 방식은 각별히 의도적입니다. 밭을 갈고, 건물을 짓는 일은 단연코 현실입니다. 인터넷 속 게임에 열광하며 기량을 뽐내는 건 가상의 일일지언정 가짜는 아니겠지요. 그렇다면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경험에 의존하여 자신의 권위를 강조하는 것은 가상조차 되지 못한 허상이며, 가짜일 것입니다.

소재가 꼭 모의전이어야만 했다면 그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현실의 실체가 아니라, 정책과 제도라는 이름의 약속일 뿐인 ‘정치’의 ‘사본’인 만큼 정치모의전은 허상의 성격을 띱니다. 그렇다면 모의전이 허상에 대한 상징물이라는 해석도 과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그 허상이 그 자체로 나쁘고 쓸모없는 것은 아닙니다. 게임 산업의 가치가 여타 거대 자본들과 맞먹고, 프로게이머가 운동선수들과 비슷한 몸값을 받는 시대에 우리는, 미성년자 셧다운제와 게임을 직업으로 인정하지 않는 기성세대의 냉소를 기억합니다. 이 간극을 일일이 설명하려면 불필요한 분량이 필요하겠습니다만, 요는 이겁니다. 화자가 시도한 것처럼 ‘허상’의 경험을 ‘실상’에 적용할 수 있다면 허상은 충분히 쓸모를 갖춥니다.

정리하자면 모의전이라는 소재는, 허상에 매몰되는 대신 이를 딛고 오르라는 도구적인 의미에서 그칩니다.

 

소재는 도구였을 뿐이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다면 남는 건 결국 캐릭터 뿐이겠죠. 다시 박씨빌런을 조명해 볼까요. 사실 미세 정치인이네 박씨빌런이네 하며 ‘일반 사람과는 어딘가 다른’ 느낌을 주고 있긴 합니다만, 이런 유형의 인물을 우리 주변에서 찾기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어디에든 입을 쓰는 데 집중하느라 귀를 쓰는 법을 잊은 이들은 있고, 허상에 매달리는 거야 우리 같은 독서광들의 특기 아닌가요.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빌런은 우리가 언제든 될 수 있는 모습입니다. 하물며 우리는 이미 빌런의 자질 중 한 가지를 갖추었습니다. 때문에 저는 이 소설을 고평가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이 왜 내 능력을 인정하지 않느냐고 부르짖을 때 세상은 답을 주지 않습니다. 그런 순간에 떠올려, 마음 편히 남을 욕하던 손가락을 내게 향하게 한다면. 그런 소설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길고 재미없는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니체의 심연에 대한 경구가 함께하길 바라며.

이새마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