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의 작품에 대한 감상은 이전에 댓글로 쓰던 것이 익숙하여 그런지, 이번에도 그렇게 쓰게 될 것 같습니다.
애초에 이 글은 작가님만 봐주신다면 충분한 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글의 첫머리도 이전과 다르지 않습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우선 좋은 작품 감사드립니다.
정말로 좋은 이야기였습니다. 이야기를 끝까지 읽고 든 생각은 역시 인간은 모순적이고 그렇기에 아름답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우리들은 삶의 끝에 가까울수록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까요. 그것이 현실이든, 상상 속의 이야기 속에서든 말입니다. 방주를 향해 걸어갔던 진영 씨 또한 그런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도 그의 마지막 말이 생각이 납니다. 물론 명확히는 마지막도 아니었으며, 110년의 시간 후에 좀 더 긴 시간을 살았을 지도 모르지만요. 제가 생각하는 말은 율라에게 건낸 말입니다.
“나는 죄책감이나 어떤 애착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게 아니야. 율라.”
왜냐하면…. 이건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이 문장이 이토록 깊은 중량감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작품 내에서 걸어온 진영 씨의 삶이 있었기 때문이겠죠. 기나긴 수기 속에서 진영 씨는 죄책감이나 애착에 깊게 얽매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제겐 그렇게 느껴졌어요. 그것들은 결코 그보다 앞서지 않고 뒤에 서서 그를 무너지지 않게 하는 것만 같았어요. 율라가 제시한 냉혹한 현실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게 하는 과거의 잔해들이요. 스스로는 이미 부숴졌지만 그것을 지닌 이는 무너지지 않게 하는 흙이나 토대 같은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작가님이 의도하신 게 아닐 수도 있지만, 이 작품이 나온 시기가 지금이라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멋대로 생각합니다.ㅎㅎ 살아달라는 마지막 외침들이 단순히 진영 씨만을 향한 게 아니리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현재 저희는 다들 작은 쉘터에 갇혀있는 것과 제법 비슷한 세상을 살고 있으니까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가까워지긴 했지만, 이전까지 충분한 절망들이 있었던지라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이어질까? 하는 생각은 얼핏 끝없어보이는 사막을 걸어가는 진영 씨와 닮은 것 같기도 해요. 물론 진영 씨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요. 그런 진영씨를 밀어준 것이 이전의 삶과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던 것처럼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살아있는 이들을 보면서 그들에게 살아달라는 생각을 하면서 진영 씨 또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현실 또한 이전의 삶과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이 우리를 살게 해줄거라고 생각합니다.
율라가 친절해진 것은 재미있게도 진영 씨가 죽음을 목전에 두었을 때네요. 이 모든 것은 진실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죽음에 가까이 다다른 인간을 위한 율라의 마지막 자비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문득 듭니다. 사실 우주선은 발사가 불가능한 상태일 지도 모르고, 진영 씨도 걱정했듯 모든 카탈로그는 오염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율라는 진영 씨가 해낸 것들을 의미 없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더 벅찼습니다. 인간이 한 생애를 소모하여 이루어낸 것들이 명확한 형태가 된 무언가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과연 의미가 없는 일일까요? 이미 그렇게 해냈다는 점에서 우리는 찬사를 보내야하지 않을까요? 사실 정말로는 이 모든 것이 의미가 있었기를 바라지만,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저는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은 태어난 이래로 자신의 존재 의의를 고민하지 않은 적이 없지만, 사실 태어난 것들은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살아가도 괜찮으니까요. 진영 씨도, 수민 씨도, 순례자와 약탈자, 여자와 아이, 연구원들 모두도요.
언제나처럼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네요ㅋㅋ 그냥 덕분에 저 또한 계속 걸어나가보자는,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작가님의 이야기는 언제나 다정한 시선으로 삶을 걷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서 참 좋습니다. 세상을 읽는 날카롭고 첨예한 시선도 물론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이런 사소한 듯 조곤조곤한 것들이 결국 사람을 살아가게 하지요. 늘 감사하다는 말씀 다시 드리면서, 이만 글 마치겠습니다. 건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