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일 아침 ‘하늘이 하얗다.’고 말해 줘.
그게 만일 나라면
나는 ‘구름이 검다.’라고 대답할 거야.
그러면
서로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 거야.
–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 중에서
얼마 전에 인터넷 서핑 중 우연히 레오 까락스의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 의 부분 영상을 보았어요. 불꽃놀이가 한창인 밤에 퐁네프 다리 위에서 줄리엣 비노쉬와 드니 라방이 분출하는 몸짓에 가까운 춤을 추는 멋진 장면이었죠. 오래된 기억이 떠오르더군요.
영화가 개봉했을 때 고등학생이었던 저에겐 사실 꽤 어려운 영화였어요. 멋있는 장면이 많았지만 어린 나이의 제가 생각했던 사랑이나 로맨스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죠. 그래도 감상으로 남았던 건, 사랑은 상대방의 마음을 확인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스스로의 확신 역시 중요하다, 라는 것이었어요. 그것이 오직 둘만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이라 할지라도 말이에요.
장아미 작가님의 <꼬리명주나비>는 혼인해서 데릴사위로 들어온 지 채 얼마 되지도 않아 비명횡사한 새신랑 운휘를 구하기 위해 힘겨운 여정을 반복하는 인혜의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무심하게 요약하면 타임리프물의 닳고 닳은 클리셰, ‘과거로 돌아가서 사람 구하기’ 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작품은 인혜가 운휘에 대한 사랑을, 본인 스스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깨닫는 과정을 담고 있어요. 두 사람이 함께 자은 명주실의 인연이 워낙에 짧았던 탓에 자각하지 못했던 인혜를 위해, 타임리프라는 설정을 끌어와 그 시간을 벌어주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만 인혜에게 운휘를 사랑했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운휘가 그 집에 데릴사위로 들어오게 된 건 애초 인혜의 바람이 아니었고…
이 대목에서 드러나듯 처음 인혜의 동기는 먼저 떠난 낭군에 대한 애타는 마음이 아니었어요. 비극이 벌어진 날에 어떤 흉조(凶兆)를 목도했음에도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아 운휘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죄책감과, 어떤 연유로 그가 목숨을 잃었는지 진상을 밝혀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에 가까웠지요.
인혜는 서로 술래잡기를 하는 생과 사의 반복 속에서 임과 함께 하고 싶다는 노래를 하며 탑을 돌고, 탑을 돌며 노래를 해요. 끊어진 명주실을 매듭지어 다시 이으려는 노력을 거듭하는 동안 그가 발견한 것은 운휘를 애모하는 자신의 마음이었어요. 그의 휘파람 소리, 커다란 덩치로 수줍어하는 모습, 다정하고 사려 깊은 시선, 모질지 못한 심성, 그 모든 것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사무치게 깨닫게 되죠.
운휘가 목숨을 잃게 된 까닭을 알게 되었음에도, 인혜는 그를 구하지 못하고, 흰 비단 포를 입은 남자는 답을 주지 않아요. 거듭된 실패 후 마지막 도약에서 인혜가 답을 내죠. 마침내 확인한 자신의 마음을 따라서요. 스스로의 마음을 깨닫는 데 오래 걸린 자신을 기다려 준 임을 위해서요.
꼬리명주나비는 한때 멸종 위기에 처했다가 복원사업을 통해 2020년 8월에 다시 모습을 보였고, 2021년에는 더 많은 개체들이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장면을 기대할 수 있다고 해요. 끊어진 인연은 이렇게 매듭을 지어서 다시 이을 수 있어요. 새끼손가락에 명주실이 매여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