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성용 작가의 소설 〈메일을 공개합니다〉는 짧지만 상당히 재미있는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 스스로를 주인공으로 하는 겉이야기와 메일 안에 들어 있는 속이야기를 보아 액자식 구성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메타소설 등의 갈래가 떠오르기도 한다. (사소설이라면 좀 무서울 테고) 아마도 이 작품은 메타소설에 가깝다. 자신이 창작한 소설 속 상황에서 작가는 어떤 일들을 겪었을까. 열린 결말과 현실/가상을 모호하게 하는 실제적인 설정을 보자면 오싹함은 배로 늘어난다.
이 작품은 2020년의 크리스마스에 온 한 통의 메일로부터 시작된다. 공포소설 작가인 후안에게 온 메일 속에는 한 사람의 두려움이 담겨 있다. 메일의 발신자는 두 번에 걸쳐 겪은 자신의 경험을 말하며 이에 대한 확실한 답을 구하지만, 작가는 그 메일을 읽으며 다른 곳에 더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이를테면 모니터 한구석에 번지고 있는 검은 얼룩 같은 것 말이다.
모호함에서 출발하는 공포
앞에서 사소설이니 메타소설을 언급한 것은 아무래도 개인적인 의견이긴 하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이 작품이 ‘메일’이라는 아주 일상적이고 평범한 소재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일상과 평범은 ‘공포’ 장르에서 관습적으로 쓰이는 속성이다. 독자는 자신의 삶과 소설 속의 배경이 밀접한 관련 아래 있을 때 더욱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화장실 거울 속의 귀신이나 엘리베이터의 안내음, 학교 괴담이 유행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보편성은 공포를 일상으로 끌어오기에 가장 적합한 장치이자 속성이다.
보편성과 함께 볼 수 있는 이 소설의 큰 특징은 ‘모호함’이다. 소설 속 후안 작가는 (‘후안’은 아마 엄성용 작가의 필명일 테다) 누군가로부터 메일을 하나 받는다. 그는 자신의 사연을 제보하겠다며 작가의 글을 즐겨보는 독자라고 밝힌다. 하지만 메일 어디에서도 그의 구체적인 정보를 확인할 수 없다. 사소한 것이지만, 여기서부터 ‘익명의 공포’가 시작된다. 알 수 없는 사람으로부터 도착한 메일을 공개한 작가는 흔히 가상으로라도 적는 발신자의 메일주소나 계정조차 알리지 않는다. (개인정보 보호의 차원일까) 이로써 완전한 익명성을 획득하는 이 메일에 쓰인 사연은 다름 아닌 ‘검은 그림자’에서 시작한다.
메일의 발신자가 발견한 과거의 검은 그림자는 “창문 구석 부분”(정확히 “우측 모서리부터 중간까지”)에 있었다. 꾸덕거리는 아메바 같은 움직임, 전부 검지는 않지만, 정확히 묘사되지도 않는 밝은 부분. 이 물체는 소설 안에서 정확한 형태가 없는 것으로 지속해서 언급된다. 재미있게도 이 얼룩은 익명의 발신자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 않는다. 대신 일종의 ‘전조’이자 암시로서의 역할을 한다. 20년 전 군대에서, 메일의 발신자는 얼룩을 본 이후 환각 증상을 겪는다. (이 장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이 부분 역시 ‘모호함’을 살리기 위한 도구로 쓰인 것일까.) 떼를 지어 몰려오는 눈들이 주는 분위기는 충분히 두렵다.
‘예견된 공포’ 역시 이 작품을 끌고 가는 중요한 장치로 사용된다. 독자들은 메일의 발신자가 보았던 얼룩이 두 번이나 으스스한 환각을 연출했다는 것을 소설의 전반부에서 확인한다. 그리고 후반부에 드러나는 ‘모니터의 검은 얼룩’을 이전의 환각과 연관시킨다. 그리고 작가에게 닥칠 어떤 상황을 예측하게 된다.
사실 메일의 발신자와 작가가 각각 목격한 두 물체는 서로 전혀 연관이 없을 수도 있다. 처음이 공포스러웠다 해도 그다음은 일상적인 현상일 수 있다. 그러나 ‘얼룩-환각’으로 이어지는 연관의 고리는 쉽게 끊을 수 없다. 얼룩과 환각의 연속이 소설 전체에서 ‘세 번’ 나타나는 반복은 위의 고리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준다. 얼룩이 보인 이후에 익명의 발신자는 환각으로 인한 공포를 겪는다. 70년대 이전의 국방색 모자를 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가운데 그가 느낀 가장 확실한 감각은 “그들이 나를 보고 저도 그들을 봤다는 것”이다.
상호 간에 소통이 없는 공포는 상대적으로 약하게 느껴진다. 무서운 귀신이 지나가는 것을 내가 ‘목격’하는 것과 그 귀신이 나에게 ‘접근’하는 것과 귀신이 나를 명확히 ‘인식’하는 것 사이에는 단계적으로 강화되는 두려움이 있다. 그중 가장 강한 공포는 역시 나와 두려움의 대상이 서로를 알아보는 것이다. 〈메일을 공개합니다〉는 목격의 공포를 가장 잘 활용한다. ‘목격’은 ‘목적’이 되기도 하므로 베레모 아래의 눈들이 모두 자신을 보고 있는 상황은 제삼자인 독자로서도 몰입감 있는 장면이 된다. 두 번째 얼룩을 보는 지점에서는 목격의 공포가 한층 강화된다.
“봤는데. 봤는데. 분명 봤는데. 이제 한 번 남았는데.”
위의 말은 ‘보았다’라는 시각과 소리로서의 청각, 즉 두 가지 감각을 부여한다. 어떤 물체를 느낄 때 사용할 수 있는 감각이 많을수록 우리는 그것을 뚜렷하게 인식한다. 무서움 역시 예외는 아니다. 시각적으로만 감각되던 것들이 나를 인식하고 청각적인 대응을 하는 순간, 공포는 한층 더 선명해진다. 이제 한 번이 남았다는 언급 역시 의미심장하며, 이는 세 번째 얼룩을 마주한다면 드디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임을 직접적으로 암시한다. (세 번째 사건이 작가에게 발생한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지만) 작가는 “뭔가”라고 위의 목소리를 불명확하게 표현함으로써 서두에서 사용했던 익명의 공포를 다시 한번 활용한다. 독자들은 지속해서 자신을 엄습해오는 공포의 대상이 명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채로 그것을 받아들인다. 13일의 금요일이라는 클리셰 역시 이 부분에서 충실하게 쓰인다.
이 메일을 다 읽은 후, 작가는 자신의 해당 내용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기 위해 글을 쓴다. 단지 메일의 발신자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행위로서 상당히 건조한 말투로 뒷부분이 진행된다. 작가는 지속해서 “놀랍고 좀 무서운데” “평범한 일상”은 지속될 것임을 강조한다. 전혀 두렵지 않다는 듯 그는 홈쇼핑을 시청하는 여유를 갖기도 한다. 하지만 얼룩의 공포는 작가를 순식간에 덮는다. 마치 메일의 발신자와 작가의 경계조차 흐려놓는 듯하다. 세 번에 걸쳐 환각 속의 누군가가 찾으려 했던건 결국 작가였음이 드러나며 〈메일을 공개합니다〉는 끝을 맺는다.
아니, 끝난 줄 알았지?
이 소설의 가장 큰 재미는 결말부에 있다. 앞서 말했듯 이 작품은 메타소설의 큰 특징 중 하나인 열린 결말을 갖는다. 작가는 아마도 거대한 얼룩 이후 믿기지 않는 환각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세 번째 일어나는 사건이므로 ‘이제 한 번 남았던’ 어떤 일이 추가로 발생했으리라 예상할 수 있다. 작가가 당면한 상황의 급박함은 오타와 연속되는 숫자의 눌림, 문자의 반복 등으로 나타난다. 미처 글을 쓸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한 것이다. 무작위로 나열된 숫자와 문자, 그리고 점 등의 기호 사이에서 마지막 줄은 의미심장한 맺음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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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런한 마지막 문장을 한글로 바꾸는 일은 독자에게 작가가 부여한 흥미로운 미션이니 여기에서 그 내막을 공개하지는 않겠다. 이 하나의 문장 안에는 얼룩과 환각의 궁극적인 목표가 담겨 있다. 그러나 그마저도 명확하지 않으며 독자들은 이를 통해 작가가 특유의 모호함을 유지한 채로 신체 강탈의 모티프를 차용했음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일상성-모호함-예견됨의 과정을 통해 공포를 작품 내에서 재생산한다. 하나의 평범한 메일에서 출발한 공포는 ‘얼룩’이라는 비정형적인 물체가 주는 으스스함을 통해 결국 작가가 마주칠 것이라 예견된 상황으로 끝을 맺는다. 이상한 내용의 메일을 통해 시작되는 공포소설은 무수히 많지만, 작가 스스로가 경험한 것이라고 사실성을 부여함으로써 독자에게 좀 더 일상적인 두려움을 마주하게 한다. 또한 소설을 업로드하기까지의 과정, 즉 결말이 미스터리한 상태로 남겨져 메타소설로서의 가능성 역시 내포하고 있다.
〈메일을 공개합니다〉는 희미함에 작품의 특징이 있다. 보통의 소설은 ‘분명한 묘사’가 바탕이 되어야 하지만, 공포 장르에서는 모호함을 통해 공포를 이끌어내기도 한다는 점을 보편적인 방법으로 잘 활용한 소설이다. 결말부의 글자들을 좀 더 파편적으로 만들면 좋을 것 같다. 기호나 글자의 조합을 통해 암호와 같은 의미의 단위를 더욱 만들어낸다면 독자들에게 ‘퍼즐’을 맞추는 것 같은 재미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문장이 주는 강렬함에 주목해 보자. 이 부분은 소설에 들어간 클리셰를 오히려 평범한 방식에서 특수한 방식으로 전환하는 지점이다.
일찍이 공포소설의 대가 러브크래프트는 자신의 에세이에서 인간이 느끼는 가장 강렬한 공포를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는 〈메일을 공개합니다〉를 소개하는 데에 썩 잘 어울리는 문장이다. 발신자도, 그가 본 것도 명확하지 않은 미지의 메일에서 시작되는 하나의 짧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그러니까, 어떤 메일이 왔느냐고 물어도 답하지 않는 작가의 메일함을 상상해보자. “봤는데. 분명 봤는데.”라고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올지 모른다. 그리고 이 리뷰를 읽는 내내 모니터 한 구석에서 번져오는 얼룩이 있다면 각별히 조심하자.
그 얼룩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보게 될지는 이젠 아주 분명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