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짚고 넘어가는 것에 관하여 (강조 : 이것은 저의 자기반성문입니다.)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COLORFUL 6 (컬러풀 6) (작가: 722, 작품정보)
리뷰어: 대혐수, 21년 1월, 조회 149

먼저, 저는 연재를 하건 공모전에 도전하건 늘 망하기만 하는 사람임을 밝혀둡니다. 말인즉 다른 사람 글에 이렇다 저렇다 말을 얹을 자격이 없다는 뜻이죠. 그런 제가 다른 분 글에 리뷰를 쓰는 이유를 짧게 적자면 이렇습니다.

 

저는 제 글이 무조건 예뻐보이는 팔불출 작가이기 때문입니다.

 

연재와 공모전이 매번 실패로 끝난다는 건 제 글쓰기에 문제가 있다는 뜻인데, 제 글을 객관적으로 살펴보지 못하므로 발전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분의 글을 통해 간접적으로 제 글의 문제점을 살펴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지 요령을 배울 수 있다면 더 좋고요.

그래서 고른 작품이 이 『COLOURFUL 6』이었습니다. 작품 소개만 보면 “차분한” / “눈에 띄는 드라마틱함이 없지만” / “인물의 성장이라는 드라마가 있고” / “일상을 섬세하게 들추는” 작품일 것이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향하는 글쓰기가 딱 이거거든요. 지금까지 읽은 내용만 보면 제 판단이 크게 틀리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리뷰글에서 제가 하려고 하는 말을 짧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도시라솔파미레도

 

이렇게만 적어놓으면 8음계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것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의도를 담아 각 음에다 장단을 넣어주면….

 

“기쁘다 구주 오셨네”

 

가 됩니다. 이 소리를 왜 하느냐? 모름지기 소설이라면,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문장을 채워넣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의도를 담아 문장들을 배치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라고 하기 위해서요.

 

먼저 작품 소개글부터 보겠습니다.

 

이제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정희는 사람 좋다는 소리는 듣지만 꿈이나 하고 싶은 것은 딱히 갖고 있지 않았지만 입학식날에 초등학교때 절친이었던 민하와 극적으로 재회하면서 반가운 마음을 숨길 수 없었지만 민하는 정희라면 잘 할 수 있는 부탁을 하고 흔쾌히 들어주면서 함께 하는….

 

이게 다 한 문장이고, 사실 이 뒤에도 더 이어집니다. 여기서 저는 문장을 어떻게 어떻게 끊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습니다. 실패만 반복하는 작가로서 저의 조언은 별 공신력이 없습니다(강조함).

다만 단문이 되었건 장문이 되었건 중요한 건 의도이며, 문장은 의도를 반영할 수 있도록 배치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소리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작가 기리노 나쓰오는 자신의 추리소설 쓰는 요령에 대해 “도시락 싸기와 같다”라고 말씀하셨죠. 이 귀중한 조언이 추리소설 쓰기에만 적용된다고 여길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작품 소개글에서 작가님이 의도하신 것은 무엇일까요? 제가 보기엔 이렇습니다. ①주인공이 누군가를 만나는 사건이 발생하고 ②그로 인하여 일상이 크게 뒤바뀌는데 ③이 작품에는 그 외 다른 등장인물들이 여럿 등장하며 이들이 얽히는 드라마가 펼쳐질 것이다…..인 것 같습니다. 아마 이 의도를 반영하려면 작품 소개글을 조금 정돈해보실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저는 작가님이 표현하시려고 하는 바가 굉장히 제 취향이고, 또 빼어난데, 문장 배치가 그 의도를 살리지 못해 아쉽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이 소설은 도입부가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매우 제 취향입니다.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1)마른 무지개를 통해 제목 그대로 컬러풀한 풍경을 제시하면서 시작합니다. 열린 창문을 통해 살랑살랑한 바람이 불어오고, 그 바람이 말린 클로버 책갈피를 팔랑거리는 여유자적한 템포의 화면이 이어집니다.

2)갑자기 바람이 세게 불어와 탁상달력을 눕혀버리면서 소소한 개그 분위기로 넘어갑니다. 아침잠에 취해있던 주인공 소녀가 허둥지둥하다가 곤란한 자세를 취해버리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엄마한테 도와달라고 하는 귀여운 장면입니다.

3)주인공과 개그콤비를 이룰 것 같은 어머니가 등장(주인공은 덜렁이인데 어머님은 빈틈없는 사람이라는 좋은 대조를 이룹니다). 어머니는 주인공이 오늘 고등학교 등교 첫날이며, 시간이 넉넉치 않음을 독자들에게 알려줍니다.

4)주인공은 바쁜 와중에도 이래저래 멋을 부립니다.

5)아슬아슬 도착한 주인공은 자기가 아는 사람이 있는지 살펴봅니다. 그리고, 초등학교시절 절친과 만납니다!

6)뭔가 멋진 일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

 

위와 같이, 제 나름대로 작품 도입부인 1화~2화 내용을 분석해보았습니다. 분석해놓고 보면, 장면에서 장면으로 넘어가며 강약과 템포가 굉장히 다이나믹하게 조절되며 긴장감을 조이기도, 풀기도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막상 작품에서는 템포 장단조절, 강약조절이 잘 살려지지 못해 아쉽습니다.

 

원인이 뭘까요? 제가 보기에는, 각 장면에서 짚어야 할 부분을 충분히 짚어내지 못했던 탓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첫 장면의 스타트는 좋습니다. 느긋한 템포가 투명하고 일상적인 묘사를 통해 드러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두 번째 장면으로 넘어가면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두 번째 장면에서 충분히 짚어줘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약간 푼수같지만 생기발랄한 주인공 소개

 

이거 아니었을까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작가님이 서술해주신 내용으로는 주인공이 뭘 하고 있는지 이해가 잘 안 갑니다. 찬바람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서 마찰을 일으킨다? 따듯한 바닥에 착륙? 따듯한 바닥은 어디이며 왜 착륙하는가(주인공은 침대에 누워있는데 그 자체로 이미 착륙한 거 아닌가)? 서술이 잘 이해되지 않는 탓에 주인공에게 집중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니까, 작가님은 주인공의 성격을 소개하는 데에 더 포커스를 맞춰주실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예를 들어, 찬 바람에 놀라 주인공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주인공은 왜 마찰을 일으키는 이상한 짓을 했을까? 음…혹시 마찰열을 일으켜 따듯해지려고 했던 것일까요? 주인공의 생각이 정말 그랬다면, 굉장히 독특한 주인공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 독서량이 많지는 않지만 어지간한 괴짜 주인공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인 사차원 같습니다. 보통 이불속에 있다가 추우면 웅크리려고 하지, 마찰열을 일으키는 짓은 안 합니다! 마찰열을 일으켜서 따듯해질 생각을 하는 주인공의 사차원 면모를 어필해주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너무 아쉬워요. 그리고 따듯한 바닥에 착륙하려 했다는 것은, 바닥에 뜨끈뜨끈하게 난방이 되고 있어서 그 열을 느끼려고 했다는 뜻인가요? 이 역시 굉장히 비범한 행동패턴입니다. 이불 속에서 마찰열을 일으키다가, 아 그래! 바닥은 난방이 되서 따듯한데…하고 바닥으로 내려오려고 하는 주인공의 사고방식을 묘사해주셨다면…으으 너무 아깝습니다.

그런데 또 주인공은 발부터 내려오는 게 아니라 머리부터 내려온단 말이죠. 이 또한 비범한데, 왜 발이 아니라 머리부터 내려오나…이 역시 주인공의 사고흐름을 묘사해주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 결과 요상한 자세가 되어 엄마한테 도와주세요를 외치게 되죠. 여기서도 주인공이 좀 더 요란피우며 엄마를 불렀다면 귀여운 사차원 바보 주인공이 어필되지 않았을지… 이건 좀 제가 너무 참견하는 것 같습니다. 넘어가겠습니다.

정리해보겠습니다. 두 번째 장면에서는, 서술이 너무 난해한 반면 주인공 성격은 “충분히 짚어주지 못한 탓에” 주인공의 독특하고 귀여운 성격을 잘 설명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첫 장면과 둘째 장면은 정말 제 취향의 구성과 전개인데,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세 번째 장면에서 충분히 짚어줘야 하는 문제는 아마 아래의 것들이 아니었을까요?

 

-주인공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음을 독자들에게 인식시키기

-독자들이 주인공의 조급함에 동참할 수 있도록 긴장감 유발하기

 

요컨대 세 번째 장면에서는 주인공에게 지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지 충분히 짚어주어야 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엔 충분하지는 않았습니다. “9시까지 가야 한다” “현재 시각은 8시 10분이다”라는 정보가 주어지긴 합니다만, 50분이면 사실 짧은 시간은 아닙니다. 이게 얼마나 촉박한 시간인지 충분히 짚어주었다면 더 쫄깃한 긴장감을 줄 수 있지 않았을까요?

제가 이 부분을 지적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이 다음 넷째 장면에서, 시간이 급박한 와중에도 멋을 부리는 주인공이 비춰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게 굉장히 획기적인 구성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시간이 촉박해도 멋부리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으면서도, 아니 지금 시간이 없다고! 그만 꾸미고 얼른 출발해! 라며 조마조하하게 하는 서스펜스를 유발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현재 시간은 8시 10분, 학교 도착 데드라인은 9시 정각이라고 주어진 직후, 주인공은 손가락을 짚어보고는 “계산해보니 8시 50분까지는 가능!”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으로 넘어가죠. 차라리 여기서 좀 더 비중을 할애했으면 어땠을까요? 어떻게 해서 40분만에 도착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는지, 보다 상세하게 제시해주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충분히 짚어주지 못한 결과 어떻게 됩니까? 코디가 끝나고 시계를 보니 8시 41분이었다고 나오는 대목은, 앗 늦었다! 큰일이다! 라는 정서가 발생되어야 했을 지점입니다. 그런데 시간정보가 충분치 않은 탓에 독자는 시큰둥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주인공이 지각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서 긴장감이 아니라 시큰둥함이 발생한다면 좀 낭패스럽습니다.

왤까요? 학교까지 가는 시간이 촉박한가 촉박하지 않은가? 에 대해서 독자들은 정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긴박감도 없죠. 아까는 50분이나 남았는데 촉박한 것 처럼 말하더니, 이젠 19분밖에 안 남았다고 하니, 그래서 학교까지 가는 데 얼마나 걸리는 거야? 이미 망한 거 아냐? 아직 제 때 도착할 수 있긴 한 건가? 알 수 없거든요.

좋은 참고사례가 있습니다. 제가 라이트노벨 공모전을 준비하며 읽었던 『엔딩 이후의 세계』도입부의 상황설정이 비슷하거든요. 정시 등교라는 일상적인 소재로 굉장한 박진감을 만들어냈습니다. 『COLOURFUL 6』가 그 정도로까지 밀고나갈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일상적인 규모에서 공감과 서스펜스를 동시에 추구하는 건 가능했으리라고 여겨집니다.

“지도앱을 보니, 버스를 타면 학교까지 15분 내에 도착한다”라는 정보를 미리 제시했다면, 주인공이 지금 당장 튀어나가서 버스를 타도 간당간당하게 도착할 수 있구나, 여유가 거의 없구나, 하는 정보를 독자들이 알 수 있습니다. 긴장감이 생기겠죠. 만약 15분의 이동시간이 미리 제시되었다면, 못해도 45분에는 버스를 타야 한다는 정보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해당 정보는 버스를 타고 내린 다음에야 제시되죠.

못해도 집에서 45분에는 버스를 타야 한다, 라는 정보가 주어지면, 주인공이 옷을 고르는 장면에서도 서스펜스를 만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옷을 다 고른 게35분인데, 현관까지 갔다가 유턴으로 다시 방으로 돌아온다고 생각해보세요. 아니 왜? 추울 것 같아서 외투를 골라야겠습니다. 주인공도 독자들도 초조해집니다. 그, 그래. 춥다니까 어쩔 수 없지. 대신 빨리 골라! 주인공은 서두르면서도 신중하게 옷을 고릅니다. 좋아! 옷을 골랐어! 금방 골랐잖아? 하고 시계를 봤더니, 으악! 41분입니다.

간신히 버스에 타는 장면도 더 긴장감있게 묘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파트를 나와 버스를 타는 데 까지 약 3분. 하지만 정류장에 도착해도 버스가 늦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앗! 그런데 버스가 부웅 하고 나타나더니, 주인공을 지나쳐 정류장으로 달리고 있습니다. 이 버스를 놓치면 100% 지각입니다. 이렇게 해두면 필사적으로 버스를 쫓아 달리는 주인공의 초조감도 생생해지고, 버스에 타는 사람이 많았던 덕에 겨우 버스에 탈 수 있었던 안도의 한숨도 더 강화되었을 것입니다.

장면 3과 4에서 시간 정보를 충분히 짚어주었어야, 여기서 필요한 긴장감이 형성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긴장감이 형성되어야 학교에 도착했을 때의 환희감도 좀 더 강렬하게 형성될 수 있었을 것 같고요.

 

이후 장면들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고 저는 보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다음 장면들도 계속 짚을 수 있습니다만 그럴 필요는 없겠죠. 그런데 실은 저도 똑같은 짓을 하거든요. 작품 하나 쓰고, 망한 다음에, 한 삼개월 쯤 지나서 다시 보면 헛점들이 보입니다. 충분히 짚어줘야 할 부분을 충분히 짚어주지 못한 부분들이 보입니다.

한 장면에서 충분히 짚어야 할 지점을 충분히 짚지 못한 결과는 그 장면에만 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장면에서 다음으로 이어지는 에너지의 흐름 자체를 부실하게 만듭니다. 결국 작품 전체의 아쉬움으로 이어지는 거죠.

 

“도시락 싸는 요령으로 글쓰기”라는 기리노 나쓰오의 말씀을 되새겨봅니다. 여기서 기리노 여사님이 말씀하시는 도시락이란 물론 일본식 도시락이죠. 일본식 도시락은 도시락통의 구획을 계산하여 알차게 반찬을 채워넣는 방식으로 만들어집니다.

결국 전체 도시락 틀 안에서 어떻게 구성물의 비중을 조절해 채워넣느냐의 문제입니다. 글쓰기를 도시락 싸기에 묘사한 기리노 여사님의 말씀은, 참 절묘하고 정확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작가님의 글을 보면, 지금 장면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담아내려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그냥 그렇게 느낀다는 것일 뿐, 작가님이 정말 그러시는지는 저는 모릅니다. 대화해본 것도 아니고 제가 궁예도 아니고…. 하지만 제가 왜 그렇게 느끼느냐? 아마 제 발이 저리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리뷰글을 쓰는 제가… 바로 그런 짓을 합니다. 마치 제가 써내려는 장면을 신카이 마코토 애니메이션이 한 장면처럼 구상한 뒤, 그걸 글로 컨버전하려는 것이죠.

아시다시피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은 장면 안에 들어있는 모든 것을 정밀하고 아름답게 묘사합니다. 그러나 그걸 글로 표현한다…. 불가능하다고 하진 않겠습니다만, 적어도 장면 안의 모든 것을 나열하는 식으로는 달성할 수 없습니다. 연속되는 장면을 일일이 설명한다고 달성되지 않습니다. 그건 그저 소설이라는 매체적 특성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머릿속에 떠올린 애니메이션 장면에 집착한 나머지, 소설의 매체적 특성을 지혜롭게 활용하려는 노력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신카이 마코토적인 아름다운 장면은 커녕, 충분히 짚어야 할 것을 충분히 짚지 못한 부실한 장면을 만들어내고 맙니다. 왜냐? 화면에 뿌려진 문장과 표현들의 비중과 무게를 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장면에서 짚어주어야 할 정보가 뭔지 파악하지도 못하고 머릿속의 이미지를 옮기는 데에만 몰두해서 그렇습니다. 그 결과 제가 쓴 문장에서 보아야 할 것을 독자들은 보지 못하고 저 혼자만 보는 불상사가 일어납니다.

이런 문제는 분량이 정해져있는 글을 쓸 때 더 심각하게 드러납니다. 도시락통은 한정되어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필요한 정보를 위한 문장이 무엇일지 잘 선별하는 판단력이 필요하겠죠. 양을 넉넉히 넣을까? 양을 줄이고 맛을 강렬하게 할까?

분명 신카이 마코토식 장면을 글로 컨버전하는 요령이 있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세밀하게 묘사되는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 장면조차 필수적인 정보에는 분명히 포커스가 맞춰져있습니다. 관객들은 그 정밀하게 그려진 장면에서 제공되는 정보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냥 배경작화가 고퀄이라 잘난 장면이 아닙니다. 그 휘황찬란한 이미지가 필요한 정보로 종합되기 때문에 대단한 것입니다. 소설도 그래야겠죠. 이 장면을 독자들에게 왜 제시하려 하지? 이걸 작가가 명확히 파악하고 있느냐가 관건일 것입니다. 정리하면

 

①이번 장면에서 짚어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②얼마나 충분히 그것을 짚어내야 하는가?

③어떤 방법을 얼마나 써야 충분히 짚어낼 수 있을까?

④이번 장면이 작품 전체의 구성에서 어떤 역할인지 알고 있는가?

 

이게 승부처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 글 앞부분에서 지적했듯이, 작가님의 경우 ④에서는 손색이 없으십니다. 적어도 1, 2화의 후감상은 그랬습니다. 1화에서의 장면들은 긴장감을 조였다 푸는 리듬을 아주 모범적으로 제시할 수 있도록 배치되어있죠. 그러나 ① ② ③에서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러나 ① ② ③ 이 부분….이게 말이 쉽죠. 특히나 저처럼 팔불출 작가라면 더더욱 암담한 것입니다. 글 쓰고 망하고 3개월 지나서야 충분히 짚어주지 못한 부분들이 보이니까요. 그 땐 이미 뭐… 게임은 다 끝난 다음이고..

사실 이번 장면에서 꼭 짚어야 할 정보가 무엇인지, 충분히 짚어줬는지.. 하는 부분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쓰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충분히 짚어내지 못하고 넘어가는 실수를 끝없이 하고 있습니다. 제가 매번 속상한 이유죠.

이번 리뷰글을 쓰면서 느낀 건데, 앞으로는 제가 이번 리뷰글에서 정리했던 것처럼 체크리스트라도 작성해야겠습니다. 아마 노련하고 능숙한 작가님들은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겠죠. 하지만 저는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니까요…. 아마 저도 좀 더 연습이 되고 나면 체크리스트까지 만들 필요는 없을 거고요.

 

좌우간 길게 썼는데…. 서두에서 쓴 말을 반복하자면 이건 작가님의 글을 통해 저 자신을 반성해본 글입니다. 따라서 작가님에게 필요한 리뷰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기껏 달린 리뷰인데 작가님에게 도움되는 말씀을 적지 않고, 저를 위한 혼잣말이나 중얼거려 무척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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