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자 전문 탐정 커크는 DNA 시술이 일반화된 도시에서 실종된 시장을 찾는다.’라는 작품 소개에 이끌려 읽게 되었습니다. 태그의 ‘인공지능’과 작품 소개에 언급된 생명공학 개념이 어떻게 결합했을까 궁금했거든요. 생명공학에 관심이 많기도 하고요.
이야기는 작품 소개에서처럼 실종자를 찾는 일을 주력으로 하는 한 탐정이 실종된 시장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장면에서 이미 우리는 이 소설의 배경이 현재의 우리 세상이 아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일단 의뢰자가 꼬리(?)를 갖고 있고요, 테트로도톡신(!)으로 만든 칵테일을 즐깁니다. 실종된 시장도 뱀의 유전자와 결합된 인물입니다.
한 문장 한 문장 읽어나가다 보면 세계관이 조금씩 파악이 되는데요. 이 도시에서는 인체의 DNA를 변형할 수 있는 시술이 일반화돼 있어서 딱 한 명의 주민만 빼고는 모두가 어느 정도든지 유전자가 변형된 몸을 갖고 있습니다. 그 딱 한 명의 주민은 바로 탐정 커크입니다. 왜냐면 오래 전에 난치병을 이유로 냉동됐다가 최근에 해동된 인간이거든요.
그리고 그에게는 한 가지 특권이 있습니다. 이 도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유전자가 변형된 인간에게는 도시의 CCTV를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을 주지 않는데요. 따라서 주인공은 유일하게 CCTV를 열람할 수 있는 인간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실종자를 찾아달라는 의뢰가 자꾸 오는 거죠. 왜 그만이 그러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는 결말에서 나옵니다. 그 부분에서 뒤통수가 띵~~~
여하튼 주인공은 실종된 시장의 행적을 쫓다가 어떤 음모를 맞닥뜨리게 되는데요. 그 음모가 밝혀지는 부분에서 이 작가님 혹시 천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커크의 정체가 밝혀지는 부분에서도요. 뒤통수 여러 번 맞는 거죠.
그래서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스릴러로 봐도 손색이 없고 SF장르로 봐도 훌륭한 이야기입니다.
댓글에도 남겼지만 이런 맛에 SF를 읽습니다. 현 세계에 대한 패러다임이 확 뒤집힐 수 있는, 사고의 전환을 가져다 주는 SF! 까지는 아니어도, 왜냐면 유전자 변형 시술을 받은 인류라든가 인공지능에게 일을 맡기는 인류 같은 모습은 여러 SF에서 보아왔으니까요(SF가 쏟아지는 세상에서 더 이상 얼마나 참신한 소재를 생각해 낼 수 있을까요), 충분히 현실과 동떨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현실을 반영하는 기발함과 상상력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위에서 언급한 ‘인공지능+생명공학’의 조합이 아주 뛰어났다고 생각합니다. 보통은 둘 중 하나만 다뤄지기 마련인데 이 작품에서는 두 가지가 긴밀히 연관돼 있습니다. 왜 그런지는 스포일러라 말씀을 못 드리고, 꼭 결말까지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판타지와 마찬가지로 SF는 인물보다는 세계관이 중시되는 장르이다 보니 SF를 쓸 때는 자칫 잘못하다가는 세계관을 설명하는데 지면을 할애하기가 쉽습니다. 그리 되면 독자들은 낯선 개념을 주입받는 느낌을 받게 돼 스토리에 몰입하기가 버거워지죠. 작가가 그걸 모르고 자꾸 설명을 하려 들면 소설이 소설이 아니라 보고서처럼 보여지기가 십상입니다.
반면에 그러한 위험을 피하려고 독특한 세계관이 없이 유명한 영화나 소설에 등장해 대중에 잘 알려진 소재를 적당히 차용해 쓰다 보면 SF로써의 참신함과 개성을 잃기가 쉬워지죠. 그래서 솔직히 이게 SF인가? SF의 탈을 쓴 순문학이 아닌가? 싶은 작품들도 종종 보게 되고요. (어디까지를 SF로 봐야 하는가 하는 논란은 워낙에 역사가 길고 의견이 다양해서 여기서 언급하진 않겠습니다.)
브릿G에 올라오는 SF들을 읽어보면 ‘세계관 보여주기’와 ‘스토리 전개하기’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균형을 잘 맞춘 작품만큼이나 양 극단에 있는 작품들을 꽤 많이 봐 왔습니다. 저도 공순이다 보니 글 쓰다 보면 저도 모르게 자꾸 설명을 하게 되네요. ‘설명하기’가 아니라 ‘보여주기’ 방식으로 쓰고자 노력해도 필력에 한계를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설명하기와 보여주기를 적절히 안분해서 배치하고 보여주기를 할 때는 적절한 묘사를 함으로써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의 하루하루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 세상에 들어가 있거든요. 그러한 균형감도 뛰어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작품의 주제의식에 관해서인데요.
이 작품은 인공지능을 다룬 여타의 소설들과 약간은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작품에서 느껴지는 인상은, 소설 속의 인간들이 철저히 인간의 입장에서 인공지능을 타자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공지능에게 인격을 부여하느냐 마느냐 망설이고 갈등을 느끼지 않는다는 거죠. 상당수의 소설들이 인공지능도 인격체 아니냐! 그들을 사람처럼 대우하자!는 식으로 결말을 맺곤 하는데요. 실제로 인공지능의 위험성에 우려를 표하는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이 소설은 어느 정도 그런 시각이 반영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경향이 어느 한 쪽으로 몰릴 때 본인만의 주관을 드러내기는 힘들어지죠. 그래서 이러한 주제를 쓰신 점에 점수를 더 드리고 싶어집니다.
딱 한 가지 의문스러운 점을 찾자면 소설 속에 언급된 ‘20%이상의 차이’라는 부분입니다. 이건 과학적인 검증과 관련된 거고 소설 자체의 전개에는 문제가 없는 내용입니다. 기준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아무 문제가 안 될 수도 있고요.
시장이 박쥐의 유전자를 받음으로써 인간 유전자와 20% 이상 차이가 나므로 인간이 아니다, 라는 부분인데요. 역으로 말하면, 인간으로 인정받으려면 원래 인간 유전자의 80% 이상을 갖고 있어야 된다, 이런 얘기가 되겠죠.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인간과 다른 동물의 유전자가 일치하는 비율이 의외로 꽤 높습니다. 박쥐의 경우는 못 찾았는데, 인간과 실험용 쥐의 경우 유전자가 99% 일치한다고 하네요. 80% 정도의 유전자는 동일하고 19%의 유전자는 유사해서 완전히 유전자가 다른 건 1% 정도라고 합니다. 침팬지의 경우 측정 기준에 따라서 95% 혹은 99% 일치한다는 글도 있고요. 그래서 1~10% 차이 나도 다른 동물인데 20%까지 차이 나면 당연히 다른 동물 아니냐 이런 생각도 가능한데, 그럼 10~20% 차이 날 때는 애매하지 않냐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것 같아서요. (실제로 제가 그랬…) 왜냐면 1~10%의 적은 차이로도 동물 간의 생김새가 확 달라지니까요. 그런데 시장은 대체로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그 20%의 기준을 한 두 문장 정도로 제시해 주시면 좋을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생각해 보면 딱히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러네요. (어쩌라는 건지 ㅠㅠ 제가 좀 사소한 거 따지기를 좋아합니다. ㅠㅠ) 이 부분은 그냥 웬 너드 독자의 뻘짓이라고 봐 주셔도 되겠습니다. ^^;;;
편집부 추천까지 받은 작품인데 공감과 댓글이 너무 적어서, 그리고 어머 이건 꼭 봐야 해! 하는 마음이 들어서 리뷰를 써 봤습니다. 많은 분들이 읽어 보시고 이 글의 재미와 주제를 느껴보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