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여름 작가님의 <시금치 소테>는 제가 브릿G에서 가장 사랑하는 작품 중 하나예요. 자살생존자와 방문보호사 사이의 느릿한 공명이 주는 감동은, 참으로 별 것 없는 음식인 시금치 소테처럼, 슬그머니 옆에 앉아 천천히 제 손을 어루만지는 기분이에요. 그 은근한 과정은 두 인물 사이의 머뭇거리는 대화로, 시선으로, 표정으로 보여져요.
연여름 작가님의 새 단편 <제 오류는 아주 심각한 것 같아요> 에서도 비슷한 정서를 느낄 수 있어요. 폐기 예정의 구형 안드로이드 승무원과 언어학자 승객이 사십일간의 우주 여행 동안 천천히 마음을 여는 이야기예요. 안드로이드의 인권을 주장하며 함부로 폐기해선 안된다고 항의하거나, 초신성 같은 사랑에 빠져 모든 것을 걸고 탈출을 시도하거나 하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이것은 기다리다 질문을 건네고, 망설이다 대답하는 이야기예요.
테이는 손목의 C칩 대신 현금을 사용하는 촌스러운 남자이자, 우주선에서 받은 최고급 재질의 수면안대 보다 지구에 두고 온 낡은 것을 더 좋아하는 언어학자입니다. 사십일간의 여행 동안 대부분의 승객이 선택하는 ‘동면’이라는 편한 방법을 두고도, 스스로 자고 깨는 루틴을 유지하겠다며 수면안대를 찾는 구식인간이죠.
미레이는 대체로 큰 짐을 갖고 타는 승객은 동면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는 베테랑 승무원이자, 테이의 시적인 표현에 감탄할 줄 아는 안드로이드입니다. 일하지 않는 시간에 전원을 꺼 둘 수도 있지만, 마실 수도 없는 커피를 두 손에 쥐고 휴식을 취하는 구형 모델이죠.
제가 조금 과장된 예를 들어 볼게요.
소년이 물었다.
“그동안 잘 지냈어?”
“그럼.”
소녀가 답했다.
운동화 앞축으로 괜시리 땅을 파던 소년이 겨우 고개를 들고 물었다.
“그동안 잘 지냈어?”
소녀는 그의 눈을 물끄러미 마주보다가 짧은 웃음을 하, 뱉어 내고 답했다.
“그럼.”
두 인물의 음성언어는 동일하지만, 그 내용은 사뭇 다르죠. 물론 미레이의 행동언어는 위의 과장된 예 보다는 훨씬 짧고 파편적이에요. 아무래도 원활한 기능 수행이 중요한 안드로이드라서요. 그 순간적인 의미들을 이해해주길 바라는 심정으로 작가님은 테이를 언어학자로 설정하셨을 거예요. 천천히 기다려서 마음을 끌어내고 온기 어린 위로를 건넬 수도 있도록요. 마치 드립 커피를 내리 듯이.
하지만 이것은 적정 거리를 유지하는 감정의 이야기예요.
이 소설의 테이와 미레이는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영화 <Lost In Translation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빌 머레이와 스칼렛 요한슨을 닮았어요. 낯선 도시 도쿄에서 외로움을 느끼던 두 사람이 서로에게 끌리고, 서로를 위로하죠. 하지만 두 사람은 각자의 일정이 끝나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해요. 감독은 둘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농담 섞인 대화와 섬세한 표정, 조심스러운 손동작으로 표현해요. 우리는 두 사람이 어떤 마음인지 정확하게 알 순 없지만, 어렴풋이 읽어낼 수는 있어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빌 머레이가 스칼렛 요한슨에게 속삭인 (들리지 않는) 대사처럼요.
영화에서는 언어가 통하지 않는 도쿄의 두 사람이었다면, 이 소설에서는 대부분의 탑승자가 동면중인 우주선의 두 사람이에요. 공통점도 많고 서로를 이해는 부분이 많지만, 영화의 기혼 여성과 왕년의 인기 배우처럼, 둘 사이엔 좁혀질 수 없는 결정적인 거리가 있지요. 도착지에서 내려야 하는 승객과 폐기 예정인 안드로이드 승무원이니까요.
질문은 조심스럽고, 대답은 미루어져요. 테이는 일 년이 지난 후에서야,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그때 미레이의 마음을 전해 들어요. 테이가 아무리 언어학자라 해도, 인간인 이상, 다른 이가 전해 준 안드로이드 미레이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할 거예요. 소설을 읽는 우리도 마찬가지고요.
어쩌면 미레이 자신도 그랬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