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리뷰에는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 작가님이 속상해 하실 이야기가 포함돼 있습니다.
※ SF 애독자로서 드리는 독후감상문입니다.
며칠 전에 매도쿠라 작가님의 <생각의 결말>에 대한 리뷰를 썼는데요, 그 소설도 안드로이드가 느끼는 정체성의 혼란이 주제였는데 이 소설도 비슷한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생각의 결말>에서는 안드로이드들의 자의식이 안드로이드들 간의 연대를 일으키고 신인류의 선언과 인간을 향한 도전으로까지 이어지는 반면, 이 소설에서는 안드로이드의 자의식이 어떤 오류 정도로 치부되어 안드로이드가 홀로 그것을 간직한 채 폐기되고 만다는 점에서 결이 완전히 다른 작품입니다.
만약에 십년 쯤 전에, 그러니까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기 전에 이러한 주제들의 소설을 봤다면 충격과 신선함으로 다가왔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SF에서 굉장히 흔한 주제가 되어서 이렇다 할 큰 감흥이 느껴지지가 않습니다. 이건 제가 최근에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인 <관내분실>을 읽어서 더 이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김초엽 작가님의 두 작품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제외하면 나머지 네 작가님들의 작품이 모두 인공지능이나 안드로이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심사평에도 인공지능과 안드로이드에 관한 소설이 너무 많이 응모했다, 다양한 소재의 작품을 봤으면 좋겠다는 멘트가 여러 번 나올 정도인데도 수상작 중 2/3이 안드로이드에 관한 이야기인 걸 보니 안드로이드에 관한 작품이 정말로 엄청나게 많이 출품됐었나 봅니다.
주제는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은 하나로 이어집니다. 안드로이드를 인간 혹은 생명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 안드로이드는 어쩌다가 인간의 감정을 느끼게 되었나? 그것을 오류로 봐야 하는가, 정상으로 봐야 하는가? 안드로이드를 자유의지를 가진 인격체로 대우하는 것이 옳은가? 인간이 안드로이드에게 동지애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이 정상인가?
저는 이런 주제의 소설을 보면 아쉬운 게 안드로이드의 정체성을 다루면서 여전히 인간 중심의 관점을 벗어나지 못 하는구나, 하는 것입니다. 소설 속의 안드로이드들은 ‘인격체’로 ‘인간’들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있습니다. 인간이 인정을 해 주지 않으면 스스로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걸까요? 물론 인간이 창조주이고 인간과 유사하게 창조되었고 인간이 명령을 내리는 입장이기 때문에 안드로이드들이 그런 태도를 가지게 된 것이겠죠. 하지만 인간 따위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그냥 자기들끼리 사회를 이루고 사는 안드로이드들은 없는 것일까요? 그러한 세상이 김창규 작가님의 <삼사라>에서 그려져 있어 신선하고 흥미로웠습니다. 또한 브릿G의 작가님인 다른이의꿈 님의 <두 번째 달 : 기록보관소 운행 일지>에서는 인공지능에게 인간의 감정을 일부러 학습시킵니다. 인공지능들이 망가진 지구를 테라포밍한 후 진화시킬 인류에게 감정을 가르치게 할 목적으로요. 이때 인공지능 아에록이 고민하는 것은 ‘내가 어쩌다가 인간의 감정을 느끼게 됐나? 이게 정상인가?’가 아니라 ‘인간들이 왜 나에게 인간의 감정을 학습시켰을까?’입니다. 정체성의 혼란 같은 문제는 가뿐히 넘어선 뒤 다른 인공지능들과 함께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는 데 더 골몰하죠. 인간들도 인공지능을 동등한 존재로 대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요. 그 과정에서도 인간이 ‘내가 로봇 따위에게 의지해도 되나?’ 하는 고민은 하지 않습니다. 저는 인공지능들과 안드로이드들이 이렇게 당당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제 오류는 아주 심각한 것 같아요.>에서 또 다른 아쉬운 점이자 감흥을 느낀 점을 말씀드릴게요. 주인공이 지폐를 사용하는 점, 종이책을 읽는 점을 들어 구식이라고 표현을 했는데 이미 지금도 그런 부분은 구식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저만 해도 지폐나 동전을 안 들고 다닌지 오래됐고요, 저는 아직 종이책을 선호하지만 요즘 젊은 분들은 이북이나 웹소설을 더 선호하시는 분들이 많죠. 그런데 생각해 볼까요. 현재 기술로는 지구와 가장 가까운 천체인 달에 인간을 보내는 것조차 (가능은 하지만) 수월하지가 않습니다. 그러므로 달이나 화성보다 훨씬 먼 거리인 목성의 위성 칼리스토에 식민지를 건설할 정도로 기술이 발전한 시대라면 지폐와 종이책은 구식이 아니라 원시 유물 쯤의 취급을 받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예 생산이 안 될 수도 있고요. 어쩌면 그 시대에는 신용카드와 이북마저 유물 취급을 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테이가 지폐와 종이책 운운하는 부분에서 생경한 거리감을 느꼈습니다.
차라리 지폐나 종이책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이 현재의 지불 수단이나 텍스트가 아닌 완전히 다른 어떤 수단들만을 보여줌으로써 소설 속의 배경이 굉장히 먼 미래임을 확실히 부각시킨 뒤에 골동품이나 석기 시대 유물과 다름 없는 원시적인 커피 머신을 등장시켰다면, 혹은 커피조차도 나무가 아닌 공장에서 찍어낸다든가, 커피는 이미 합성품일 뿐이라는 설정 같은 게 있다면, 커피 원두와 커피 머신에서 느껴지는 과거에 대한 향수(라기 보다는 동경이나 호기심에 가깝겠죠, 미래 시대 사람이라면. 독자는 향수를 느끼겠지만요.)랄까 이런 게 더 강렬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제가 이 소설에서 감흥을 느낀 부분은 다른 승무원들과 승객들은 동면을 선택하는데 주인공은 동면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건 저 같아도 그럴 것 같거든요. 만일 제가 가족들과 칼리스토로 여행을 간다면 제 짝꿍과 아이는 동면을 시키고 저 혼자서 저만의 시간을 즐길 것 같아요. 자유다~~~외치면서요. 혼자 가는 여행이라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온전히 혼자서 지내는 일이 흔치는 않으니까요. 하지만 아무리 고독을 즐기는 성격이라도, 인간은 오랜 세월 사회적 동물로 진화돼 왔기 때문에 다른 인간과 어울리고 싶어하는 욕구, 외로움 이런 것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도 그런 이중적인 심리를 지닌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래서 셰프 레스토랑을 거부하고 셀프 레스토랑만 찾지만 결국은 머레이라는 안드로이드와 친분을 쌓게 되죠.
그렇게 되기 전에 피폐해져가는 주인공의 심리가 더 극적으로 묘사됐으면 좋았겠다 이런 생각이 들고요. 인간 승무원도 있는데 왜 그들은 멀리하고 하필 안드로이드에게 친근감을 느꼈는가에 대한 묘사도 좀 더 충실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이라면 로봇보다는 사람에게 친근감을 더 느끼는 게 인지상정일 테니까요. 테이가 안드로이드 자체를 처음 보는 것 같은 반응도 조금은 공감이 되지가 않았네요. 저런 시대라면 주변에 안드로이드가 흔하고 흔할 것 같거든요. 안드로이드와의 우정도 드문 일이 아닐 것 같고요. 중언부언해서 죄송하지만, 다른 행성에 식민지를 건설할 정도로 발전한 시대에는 안드로이드가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 것이 이미 새로운 이슈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런 주제를 중점으로 하고 싶으셨다면 소설 속의 배경처럼 먼 미래가 아닌 이제 막 안드로이드가 인간 사회로 퍼져나가기 시작하는 근미래로 설정을 하셨다면 더 공감이 됐을 것 같아요.
(만약에 동면하지 않는 승객이 테이가 유일했고 동면하지 않는 승무원이 모두 안드로이드였다면 어땠을까요. 혹은 상대가 안드로이드가 아닌 그냥 사람, 이를 테면 커피는 전혀 먹어 본 적이 없다든가 하는 사람이었다면, 혹은 우주선의 무중력 상태 때문에 커피 내리는 게 실패하고 말았다든가 한다면…이건 그냥 저의 창작욕일뿐입니다.)
아쉬운 점만 잔뜩 말씀드린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네요. 하지만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섬세한 감성과 따뜻한 인간애 덕분에 마음이 움직여 리뷰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 부분이 작가님과 이 소설의 강점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따뜻한 감성으로 충만한 SF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