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카이계.
이 작품의 소재이자, 작중에서도 계속해서 언급되는 소재이다. 하지만 깔끔하게 정의를 내리기는 어려운 장르라고들 한다. 애초에 작중에서 등장인물이 정확히 정의내리기 어려운 장르라고 말하고.
나도 확실하게 모른다. 하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이 작품의 작가는 세카이계에 관해서 꽤 열심히 고찰하고 이 단편을 썼다는 것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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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부터 설명하면, 주인공이었던 ‘박수영(본명은 아니지만은)’은 책을 좋아하는 학생이다. 수영은 특이한 전학생 ‘이세상(이 또한 본명은 아니지만은)’에게 세카이계에 대해서 알게 된다는 것이 주요 스토리이다.
자신이 신이었으며, 분쟁지역의 최종병기였고, 우주시대의 파일럿이였고, 초능력자 뭐 그런 것이었라고 주장하는 전학생 이세상.
그리고 과거에 모종의 사유로 수영부를 그만둔 박수영.
두 명이 세카이계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서로를 이해해가는 스토리라고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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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읽으면서 든 생각. 여기서부터는 이 작품, 혹은 다른 작품의 스포일러가 간간히 섞여 들어간다. 만약 이 작품을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먼저 보고 오기를 추천한다.
작품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여러가지 작품에 대한 오마쥬, 혹은 영향을 받았음이 보였다.
세카이계는 물론이거니와, 세카이계로 포함되지 않는 작품들도 스쳐지나간다.
이세상은 말로 살아가는 캐릭터다. 정말로 세상의 말대로 옛날에는 신이었으며, 최종병기였고, 파일럿이었으며, 초능력자였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이세상은 단순히 괴짜인 캐릭터일 뿐이다. 세상을 바꾸려고 직접 부딪히지만, 결국 아무런 힘도 없는 학생일 뿐이다.
사쿠라바 카즈키의 소설 ‘사탕과자 탄환은 꿰뚫지 못해’가 떠오르는 부분이었다. 아무런 힘이 없는 사탕과자 탄환으로 세상을 바꿀수 없듯이, 이세상은 세상을 바꿀 수 없다.
박수영은 현재까지 과거를 잊지 못하는 캐릭터이다. 아니, 그것은 이세상도 마찬가지겠지만. 판타지스러운 이세상의 망상(혹은 과거 회상)과는 다르게 현실적인 과거에 사로잡혀있는 캐릭터이다.
열심히하던 수영마저 그만두게 되어 도서부가 되는데에는 현실적인 뒷배경이 있는 캐릭터이다.
캐릭터의 관점에서 보면, 괴짜 캐릭터와 현실적인 캐릭터가 만나서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는 스토리 라인이다. 청춘물로서는 정석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면 요네자와 호노부의 ‘고전부 시리즈’의 지탄다와 호타루 같은 관계. 혹은 미시마 요시하루의 ‘코다마 마리아 문학집성’의 코다마와 후에다의 관계. 이중에서는 둘의 관계는 후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의 또다른 매력이 코다마와 후에다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바로 선문답이다.
세카이계에 관해서 독자에게 작중 인물들이 보여주는 방식으로 작가가 채택한 것은 선문답이었다.
“책은 읽었어?”
“뭐?”
“읽었냐고.”
“읽었을 것 같아?”
“응. 아마도, 너라면.”
(중략)
“읽었어.”
“어땠어?”
“나쁘지 않았어.”
“어떤 부분이?”
둘의 대화는 이런식으로 질문을 물고 질문으로 이어지는 대화방식. 짧고 간결하고 리듬감있게 톡톡 튀는 둘의 대화가 자칫 지루할법도 한 세카이계에 대한 설명을 풀어나간다.
정리하면, 괴짜 캐릭터인 이세상과 현실적인 캐릭터 박수영의 케미가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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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에 대해서 얘기해보면, 작가가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확실하게 떠오른다.
세카이계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직 있을지도 몰라. 이 세상 어딘가에는
이는 작중 주인공인 이세상 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하는 말이리라.
세카이계가 메이저라고는 하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 또한 세카이계를 싫어하는 편은 아니지만, 최근에 흥행했던 세카이계 작품이 무엇이 있냐라는 질문에는 날씨의 아이 정도 외에는 별로 떠오르지 않는다. 개중에는 ‘스즈미야 하루히’나 ‘슈타인즈 게이트’ 등을 세카이계로 치는 경우도 있지만, 이들을 포함해도 꽤 오래전 얘기다.
수영은 세상한테 말한다.
작가는 독자한테 말한다.
세카이계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직 있을지도 모른다고.
단순히 보면 수영이 세상에게 위로를 하듯 던지는 말이지만, 작가는 확실하게 우리에게 어필한 것이다. 이 세상 어딘가에서는 세카이계로 구원받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것이 독자일수도 있다.
그것이 작가일수도 있다.
그것이 이세상일 수도 있고.
그것이 이 세상일 수도 있다.
결국 이 작품을 요약하면, 세카이계에 구원받은 사람들을 위한 선물이다. 만약 구원받지 않았더라면 이 기회에 세카이계를 접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초대장이기도 하다.
이 작품도 약하지만 세카이계 구조를 띄고있다.
세계와 한 사람을 고르는 장르가 세카이계라면, 수영에게 아주 작은 세계와 이세상 중 어느쪽을 고르겠냐는 질문을 던진다.
이 작품은 강하게 세카이계를 띄지는 않지만, 이런 고찰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면, 세카이계의 세계에 발을 들여보는 것은 어떻겠는가는 질문과 함께 내미는 초대장이다.
그것을 받아들지 말지는,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총정리 하자면, 이 작품은 세카이계라는 소재와 청춘물이라는 장르를 적절히 섞어 독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청춘물로 보면 괜찮다. 세카이계로 보기에는 조금 아쉽지만 형식만을 빌린 것일테니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는다.
청춘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세카이계를 접해볼 기회가 될 것이고,
세카이계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제목에서도 말했듯이, 이 세상보다 중요한 것이 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작가는 독자에게 말하는 것 처럼 보인다.
‘세카이계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직 있을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직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거기에 RADWIMPS의 노랫말처럼 답하고 싶다.
‘세카이계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직 있다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직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