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친절한 듯 친절한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그러게 내가 뭐랬어 (작가: 묵독, 작품정보)
리뷰어: 코코아드림, 20년 9월, 조회 148

글을 처음 읽었을 때, 제목이 왜 누군가를 탓하는 제목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글의 시작은 서론이 아예 증발한 상태인 채로 화자인 ‘나’가 패닉 상태에 빠진 것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얼굴이 눈물 범벅이 된 채 고개를 파묻고 있던 중 다짜고짜 (아마도)친구로 보이는 인물이 남긴 노트를 찾아 헤메고, 거기에 적혀있는 글을 읽는 것이 제시된 화자의 행동의 전부입니다. 이후 나폴리탄 규칙 괴담이 제시되고, 맨 마지막에는 제목과 같은 단 한마디가 적혀 있습니다.

 

그러게 내가 뭐랬어.

 

사실 이 것만 두고 본다면 굉장히 불친절한 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나폴리탄 계열 괴담의 특성이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라지만 이것을 소설로 고친다면 최소한의 기승전결은 알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글은 그런 불친절함을 가장한 채 친절하게 서론을 보여줍니다. 무려 작품소개 란에 말입니다.

 

여보세요? 어……. 뭐? 방 좀 빌려달라고? 나 여행가는 건 누구한테 들었어……? 야, 내 방 아무한테도 안 빌려주는 거 알잖아. 아니, 화낸 거 아니야……. 어, 어……. 네 사정은 알겠는데, 내 방이 좀……, 위험해. 곧 있으면 철거할 거라 다른 건물에 세입자들도 없고, 주변도 어둡고……. 그리고……. 하……. 알겠어. 어…….그래. 여기 주소가 어떻게 되냐면…….

 

이제 이 작품소개 란까지 본다면 우리는 대략적인 줄거리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유혁이라는 남자가 여행을 가게 되고 ‘나’는 모종의 루트로 그 사실을 안 뒤 집을 빌려달라 요구합니다. 유혁은 여러 이유를 대며 빌려주기를 꺼려 하지만 ‘나’는 억지를 부리고 결국 그 집에 들어선 뒤 본문과 같은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이 글은 불친절한 듯 보이지만 묘하게 친절한 구석이 있는 글입니다. 기승전결 중 기와 전을 내세우고 승과 결을 의도적으로 숨겨서 나폴리탄 계열 괴담이 가진 상상의 여지를 내보이는 것입니다. 때문에 글과 작품소개 란까지 다 읽고 나서는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하는 유혁의 한마디가 무슨 의미인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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