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이야기는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에메랄드 시티 (작가: 어스, 작품정보)
리뷰어: Meyond, 20년 9월, 조회 91

세상에는 참 다양한 이야기가 도처에 널려있다. 지구 인구가 올해 5월 기준으로 77억이라고 하니, 아마 인간 전체의 이야기도 최소 770억 개 이상은 되지 않을까? 그중 많은 이야기가 우리의 ‘다름’을 소재 삼고 있다. 뮤지컬 <위키드>를 떠올리게 하는 제목, ‘에메랄드 시티’ 역시 ‘보유자’라는 존재를 통해 인간의 다름을 말하는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위키드> 역시 여느 인간들과 달리 초록색 피부를 지닌 엘파바라는 ‘다른’ 존재의 서사이기도 하다.

묘사와 흐름이 유려해서 이미 영상화된 시리즈의 각본을 읽는 기분으로 읽어 내려갔다. 소재 탓인지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비슷하게 돌연변이를 다루는 <엑스맨> 시리즈였는데, 이야기 자체의 멋들어진 분위기는 왠지 <카우보이 비밥> 같은 느낌을 자아내기도 했다. 엠이 버스 안에서 듣던 비숍 브릭스의 앨범을 함께 들으면서 남은 분량을 마저 읽었는데 여러모로 이 작품의 분위기를 잘 대변해 주는 음악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다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는데, 요즘은 너무 예쁜 이야기 같은 걸 만나면 묘한 거리감을 두고 지켜보게 된다. 말하자면 처음부터 내가 관객인 걸 인지하는 이야기라고 할까? 물리적인 무대는 아니더라도 머릿속에 이야기가 펼쳐지는 무대가 존재하고 그걸 가만히 구경하는 나 자신을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느끼게 되는, ‘에메랄드 시티’는 딱 그런 범주의 예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몇 년 전엔가 런던 여행을 다녀온 직후 단순히 추억 팔이나 할 요량으로 <007 스펙터>를 보러간 적이 있는데(영화 자체는 솔직히 내 취향의 이야기는 아니었고 정말 그냥 러닝타임 내내 영화 속 런던 풍경을 구경했다), 딱 마침 요즘 자꾸 런던에 다시 가는 꿈을 꾸고 있어서 이 작품을 읽으면서 평소보다 이야기의 풍경이 더 생생하게 그려졌다. 엠의 친구이자 보유자 동료인 다른 인물들이 런던 서부의 셰퍼즈 부시와 동부의 스트랏퍼드를 기반으로 활동한다는 설정도 그래서 한결 더 생동감있게 느껴졌다. 매일 바쁘게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기에 바빴던 셰퍼즈 부시가 보유자들의 본거지였다니 좀 더 주변을 세심하게 살펴볼 걸 그랬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쓸데없이 런던 이야기를 잔뜩 한 김에, 런던 이야기로 리뷰를 마무리해볼까 싶다. 내가 겪은 런던은 대체로 나의 다름을 끊임없이 의식적으로 마주해야 했던 공간이었다. 그래서 길지 않은 체류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잠시간은 아무 노력 없이 무리에 섞여들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렇게 반년 이상을 보내고 나니, 다시 한 번 그 다름에 맞서 보고 싶단 생각이 초가을 냉기처럼 이따금 마음 안으로 훅 불어든다. 이미 세상을 가르는 수많은 다름의 기준을 두고도 끊임없이 ‘다름’에 관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는 가장 큰 이유는 어쩌면 우리가 겪는 현실의 다름을 제대로 극복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치열한 ‘다른’ 존재들의 싸움은 사실 그 기저에 깔려 있는 ‘같음’의 전제 하에만 성립할 수 있는 갈등이다. 이제는 우리 인간 모두가 좀 더 다른 질문을 던져도 좋을 시점이 된 것이 아닐까? ‘같음’이란 대체 무엇인가, ‘같음’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종류의 질문들을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질문을 통해, 현실의 나는 제대로 해내지 못했지만, ‘에메랄드 시티’ 속 에메랄드는 용감하게 세상에 맞서고 같음과 다름의 갈래와 굴레에서 벗어나, 보유자로서 자신의 삶을 충만히 누리게 되기를, 그래서 이 이야기가 결국은 행복한 결말로 향해 가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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