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되고 아름다운 이야기 비평

대상작품: 달빛램프 (작가: honora, 작품정보)
리뷰어: 글 쓰는 빗물, 20년 9월, 조회 56

‘희생’이라는 가치는 참 오랜 세월 이야기되어온 주제다. 그리고 그 오랜 세월 빛을 잃지 않을 만큼 강한 힘을 지녔다. 희생을 선택함으로써 이야기 속 인물은 극단의 고통을 겪지만, 그 고통은 남의 고통을 보듬기 위한 고통이기에 숭고하다.

 

1) 소년과 소녀, 그리고 왕자와 제비

 

<달빛 램프>는 불의 정령을 관리하는 ‘숲지기’ 소년과 왕궁에서 도망친 공주의 애틋한 관계, 그리고 백성을 위한 공주의 희생을 그린다. 왕궁에 살며 나라가 어려움에 빠져도 자신의 감정밖에 돌아보지 못하던 공주는 숲으로 도망쳐 숲지기 소년과 만난 후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생각을 할 만큼 성장한다. 그리고 공주는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자신이 얼마나 많은 이의 희생 위에 살아왔는지, 그것을 몰라서 얼마나 많은 이를 고통스럽게 했을지, 그리고 자신이 희생제가 되면 얼마나 많은 이를 편안하게 해줄 수 있을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그 유명한 <행복한 왕자>에는 보석으로 몸을 치장한 왕자 동상과 남쪽 나라에 가지 못한 제비가 등장한다. 자신의 곁에서 몸을 쉬는 제비에게 왕자는 부탁한다. 자신이 지닌 보석을 떼어다 어려운 이들에게 전달해달라고. 이야기는 결국 왕자와 제비 모두 죽음을 맞이하며 끝난다. 혹자는 왕자가 자신이 아닌 제비를 대신 희생시켜 자신의 동정심을 표현했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원작을 잘 들여다보면, 왕자와 제비는 어려운 이들을 함께 돌아보며 서로 사랑의 감정을 나누었다. 왕자와 제비는 모든 것을 잃었지만 결국 함께 천국에 들어간다. 제비는 왕자를 통해 희생이 주는 고차원의 행복을 깨닫게 되었고, 왕자와 마음을 나누었다. 왕자는 동상이기에 움직일 수 없다. 그래서 희생은 함께하지만, 몸을 움직인 건 제비다.

 

<행복한 왕자>를 언급한 까닭은 <달빛 램프> 속 소년과 소녀의 사랑이 이와 닮아있기 때문이다. 숲에 머무는 고아 출신 숲지기 소년. 소년은 불의 정령을 포함해 누군가의 희생으로 세상의 평온이 유지됨을 알고, 지금 나라가 처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그럴 것이라는 걸 안다. 그러나 숲을 나가, 제물로 올려져 스스로 빛이 될 수 있는 존재는 공주인 소녀뿐이다. 죽어가는 제비를 보며 마음 아파한 왕자처럼, 숲지기 소년은 공주가 고통받는 게 싫다. 하지만 보내줄 수밖에 없다. 제비도, 왕자도, 소년과 소녀도 서로 함께 하는 동안 희생의 가치를 알았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말은 너무도 남용되곤 하지만, 한 대상을 향한 진정한 사랑은 타자를 향한 사랑으로 확장되니까.

 

2) 오래된 아름다움

 

소설은 고전적인 플롯을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주인공인 공주가 희생을 결심하기까지의 심리 변화를 설득력 있게 그리고, 희생의 결과는 강렬하다. 그래서 공주의 희생은 목숨까지 내놓은 극단의 형태임에도, 독자의 눈에 결코 허무하게 비치지 않는다. 이것은 어쩌면 아주 오래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아름다워서 오래 살아남은 것만 같다. 모든 것이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건, 사람의 이야기를 쓰고 읽는 건 사람이라는 사실 아닐까. 그래서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고, 그를 위해 희생하는 이야기는 오래 살아남나 보다. 저 먼 나라에서 만들어진 공예품처럼 촘촘히 짜인 서사 밑에 깔린 환상적인 이미지와 은은히 빛나는 여운이, 그렇게 말해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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