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수 없는 주인공을 그리다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44712 (작가: 코코아드림, 작품정보)
리뷰어: 글 쓰는 빗물, 20년 9월, 조회 86

<44712>의 주인공 박윤덕은 어느 모로 보아도 사랑하기 힘든 주인공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소설 속 주인공들은 불완전하고 때로는 부도덕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어느새 응원하고 이입하게 되는 주인공이 있고, 그러기 어려운 주인공이 있다. 박윤덕의 경우 그 정도가 심하다. 서사가 진행되는 내내 묘사되는 그의 내면세계는 열등감, 건강하지 않은 방식으로 비대해진 자아, 타인에 대한 적의뿐이기 때문이다. 행동 면에서도 자기발전을 위한 진정한 노력은 보이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살며 타인을 향한 폭력만을 행한다.

 

1) 소설 속 박윤덕

 

등단을 꿈꾸며 인터넷에서 작품활동을 하는 박윤덕은 자신의 글솜씨나 소설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른다. 그의 눈에 자신의 작품은 언제나 완벽해 보인다. 그리고, 그런 작가인 자신과 자신의 글에 대한 비판은 일종의 심각한 가해로 느낀다. 이러한 박윤덕의 내면 서술은, 건강한 자기존중 없는 자기애가 자아를 얼마나 괴기한 방식으로 비대하게 만드는지 엿보게 만든다. 박윤덕이 ‘작가’라는 타이틀에 그토록 집착하고 거기에 훼방을 놓았다고 생각하는 이에게 증오심을 품는 것은 결국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 아닐까. 이는 안정적으로 작가 생활을 이어나가는 ‘은유’가 자신에 대한 공격에 성숙하고 합법적으로 대처하는 모습과 대비된다.

건강한 자아상의 부재는 타인에 대한 건강한 이해 또한 어렵게 만든다. 박윤덕은 타인 또한 자신처럼 흔들리고 실패했으며, 상처받기도 하는 하나의 인격체라는 인지를 하지 못한다. 그래서 학창 시절 백일장에서 자신을 ‘누른’ 급우나 작가로서 성공한 은유라는 인물에게서 박윤덕이 읽어내는 것은 단지 자신의 눈앞에 당장 보이는 성공뿐이다. 그 너머에 어떠한 좌절과 고민, 노력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짐작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니 박윤덕에게 이들은 단지 이겨야 할 대상일 뿐이다. 은유와의 갈등 상황에서 끝없이 가해의 수준을 높여가다 결국에는 은유가 가족같이 소중히 여기던 반려동물을 이용하며 인륜의 선마저 넘어버린 행위가 가능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박윤덕은 자신이 싸우는 대상이 자신처럼 감정과 사연을 지닌 사람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세상에 감정을 가진 인물은 오로지 자신인 것처럼, 모친의 감정도 은유의 감정도 보지 않고 자신의 감정만을 본다. 그래서 박윤덕의 악행은 끝없이 스스로에 의해 정당화된다. ‘나를 화나게 했으니까’ 무슨 짓을 해도 되는 것이다.

 

2) 소설 밖 박윤덕

 

소설에서 묘사되는 박윤덕의 모습은 상식인의 눈에 참으로 혐오스럽게 비친다. 타인에게 한 인신공격으로 인해 벌금형까지 선고받은 후에도 일체 반성 없이 고소인을 스토킹하고 가해한 경험이 있거나, 최소한 그 심리를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어느새 이런 질문이 슬며시 뒤따라온다. 나는 박윤덕인 적이 없었나? 지금 내 안에는 박윤덕이 있지 않나? 나의 자격지심으로 인해 상대의 작은 공격에도 크게 반응했던 경험, 타인의 뒤에도 내가 알지 못하는 많은 사정이 있음을 잊었던 경험, 나의 분노에 매몰되어 상대의 상처를 보지 못한 경험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박윤덕이라는 인물의 못남과 비열함에서 멀찍이 떨어져, 마냥 나와 다른 이로 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은 이 질문 때문이다. 이 질문을 무시한다면 소설을 읽고 돌아서는 기분이 조금 더 산뜻할 수는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외부의 적에게 끝없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물을뿐 자신의 내면에는 어떠한 질문도 던지지 않는 박윤덕의 모습을 도저히 사랑할 수 없어서, 독자는 끝내 그 질문을 붙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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