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엘리베이터, 꼭 타야 하나요. 공모(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딩동댕 문이 열립니다 (작가: 오메르타, 작품정보)
리뷰어: 환상괴담, 20년 9월, 조회 135

※ 리뷰 대상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94년 비 오던 여름밤의 일을 떠올린다.

‘나(화자)’는 ‘또 딸’로 태어났다.
어머니로부터 첫 딸 언니가 태어난 후 한 번의 유산 끝에 10년만에 태어난 ‘또 딸’.
배울 기회 없이 대충 농사나 돕다 시집 가래서 시집 온 어머니 인생의 지겨운 ‘또 딸’.

언니는 어머니가 그러했듯 대충 살다가 스무살이 되자마자 시집을 갔다.
어머니는 ‘나’도 그러하길 바랬다. ‘얌전하게’ 시집이나 가길 바랬다.

퇴비 냄새로 가득한 동네에서 19년 인생을 살았다.
큰 사람 되라기는 커녕 ‘대학 등록금은 못 대주니 알아서 하라’는 말만 들은 나는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문을 열기 위한 돌파구가 필요했다.
마침내 서울 소재 대학에 시험을 쳐 입학하게 된 ‘나’.
물론 독립하고 싶었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경제적 이유로 광명시에 위치한 아파트,
언니와 형부 아래의 식객이 된다.

밝게 탈색한 머리? 짧은 치마?

” 꼴이 그게 뭐니. 네 형부 선생님이야. 불편하게 하지마. ”

정작 형부의 트렁크 팬티 위 불뚝한 배, 아홉살 머리 굵어지기 시작한 조카의 능글맞은 시선은
어떤 식으로든 배려받은 적이 없다. ‘나’의 불편함은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94년 비 오던 여름밤.
술을 좀 많이 마셨고, 그 아파트에 산 지 일년 반이 지난 때였다.

딩동댕. 문이 열립니다.
누구에게 말한들 믿어주지 않을 광경이다.
딩동댕. 다시 문이 열리고, 눈을 뜬다.

” 동네 챙피하게 다 큰 지지배가… 왜 9층에서 자빠져 자고 있어 ”

9층에 있었다고? 가긴 갔었지.
그럼 그 시커먼 아가리는?

문득 정신을 차린 곳은 커피숍에서 선 보는 자리다.
계산기 때려봐도 이런 남자 없다나.
너 여자가 서른 다섯에… 남편 될 사람이라면 직장은 안정되야…
‘나’만 빼고 모두가 편해지는 길을 택한다.
여차저차해서 나는 임신을 했고,
어느새 나는 직장 남자들로부터 ‘악성 재고’ 마냥 관심 밖의 사람이 되었다.

어느 날은 날 구해준거라 믿었던 개에게 물어뜯기는 꿈을 꾸었다.
눈을 뜨니 시어머니의 누구 들으라는 듯한 불평이 들려온다.

ㅡ 내 평생 우리 아들 아침에 빵쪼가리 줘서 보낸 적이 없는데!

맛있는 빵에 달걀부터 버터까지 신경쓰지 않은 재료가 없이
정성스레 구운 프렌치 토스트는 일순간에 ‘빵쪼가리’가 된다.

‘못 들은 척 해… [손주] 하나 안겨드리면 마음 여실거야’

또 꿈을 꾼다.
개에게 물어뜯기다 못 해 흰 개가 붉게 물들고
붉은 달마저 뜬 꿈이다, 쏟아져내리는 그 핏빛 파도를 맞으며 울다 깬다.

ㅡ 빨리 이거 해 봐라. 내가 좋은 꿈을 꾸었다.

임신 테스트기.
두 줄.

[악성 재고]가 언제까지 자리 차지해서야 되겠냐는 식의 퇴사 권고가
들어온다. 이를 악물고 버틸수록 더 힘든 일들이 주어진다.
배가 불러온다. 꿈을 꾼다. 땅이 부서지며 무저갱을 향해 떨어진다.
눈을 뜬다. 병원이다. 다행히 아기는 무사하다.

ㅡ 네까짓게 벌면 얼마나 벌길래 장손을 위험하게 하냐!

결국 난 사표를 낸다.
‘딸’을 위해.
아들 태몽을 날려버렸다는 ‘나’는 이후 혼자 진료를 받으러 다닌다.

( 중 략 )

<딩동댕, 문이 열립니다>를 끝까지 읽고난 후 저는 제일 먼저 어머니를 떠올렸습니다.

다행히 ‘중학교’까지 나오셨죠.  친구 분들은 ‘국민학교’ 나온 게 보통이시라던걸요.

제가 좀 심하게 늦둥이라 저희 어머니 시대는 보통 그랬다네요.

어머니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중매로 결혼하셨고 그때가 작중 언니가 결혼한 나이 즈음 되셨습니다.

그 뒤로 내내 우리 4형제 키우는데 밤낮으로 고생하셨습니다.

작중 배경이 되는 시대보다 20년 가까이 과거의 ‘어머니’셨으니 그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첫째를 낳고 산후조리는 커녕 젖 물려가며 뙤약볕에 농사 지었다니 자식된 입장에서 분통이 터지는 일이 아닌가요.

그러나 그리 하라고 시키셨을 할머니를 미워하기엔 당신 역시 일제시대에 ‘또 딸’로 태어나 살아오며

평생 배운 것이 그런 것이니 그게 맞는 줄 알고 사셨을 할머니를 후대에 와서 원망하기도 어려운 마음입니다.

 

어머니는 좌충우돌 아들 셋을 내리 키우느라 얌전한 딸 하나 얻는게 소원이었는데,

그만 셋째로부터 10년도 넘게 지나 덜컥 얻은 넷째가 ‘또 아들’, 저였답니다. 징글징글하죠.

 

각설하고, 저희 어머니와 같은 시대는 이미 옛말이 되었을 90년대, 00년대, 아니 비교적 최근까지도

‘여성’의 삶이 어떤 체크리스트에 따라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고 강요되어 왔었던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작중에 나오듯 30살 넘긴 여성을 혼기가 찼다며 쉽게 넘보는 남자들과, 마흔 넘은 선생을 ‘서른다섯 너한테

과분하다’는 투로 밀어넣는 중매쟁이가 보여주는 결혼관. 임신하자마자 대놓고 퇴사를 종용하는 직장.

꿈 한 번 꾸곤 ‘아들’이라며 축제 분위기의 집안, ‘딸’이 분명해지니 낳던 말던 냉랭한 집안…

그 답답한 일대기 속에 철저히 짓밟히는 건 한 인간의 꿈, 성취, 기대와 같은 것들.

 

대학 가고 싶다는데 ‘대학 갈 돈이 어딨느냐. 일찍 결혼해서 애 낳고 살면 그만이다.’

직장을 다니고 싶다는데 ‘꼴에 일한다고 뻣뻣히 고개 들기만 하지’ , ‘임신하면 민폐니 그냥 퇴사해’ ‘애가 우선이다’

ㅡ… 작중 내내 옥죄어오는 주변인들의 태도와 그에 따끔히 반론하지 못하는 작중 ‘나’의 모습에 안타까웠습니다.

 

‘나’는 엘리베이터에 대한 아픔이 있습니다.

그래서 굳이 힘든 계단을 타고 다닙니다.

엘리베이터는 그녀의 트라우마를 부르는 곳입니다.

독자인 저는 어쩐지 엘리베이터란 ‘당연히 탈 것으로 강요되는 정해진 루트’를 내포하는 장치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왜 힘들게 자신의 힘으로 끝까지 걸어가야하는 계단을 굳이 타느냐’는 것이죠.

그냥 대충 열려있으면 허겁지겁 놓치기 전에 올라타서 10층까지만 가면

딩동댕~ 문이 열리는데 말이죠.

 

‘나’는 엘리베이터를 남들처럼 편리하게 느끼지 않습니다.

기억 때문에 ‘꿈’을 꾸거든요. 개가 덮쳐오고, 아가리가 입을 벌리고 있는 꿈을요.

그래서 계단을 걷는데 주위 사람들은 둘 중 하나죠. 딱히 관심 없거나, 비난하거나.

왜 자신이 엘리베이터를 싫어하는지 얘기해준들 믿어줄 리 없고,

믿는 척이라도 해주면 고맙겠죠.

 

그녀는 꾸역꾸역 계단을 걸어왔습니다.

가지말라는 대학을 가고, 다니지말라는 회사를 다녔고,

20살에 하라는 결혼은 30살을 넘겨서야 했고, 아들 아들 노래를 부르는데 딸을 낳았습니다,

엘리베이터 없이 계단을 타고 어떻게든 갔습니다.

보통은 ‘그냥 타지 뭐’하고 탔을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오직 계단.

누구 하나 그녀를 응원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렇게 살아냈습니다.

 

작중 마지막에 이사를 갑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1층 주택으로.

그것은 ‘나’가 힘겹게 밟아야 했던 ‘계단’도,

당연히 타야 하는 것으로 강요되었던 ‘엘리베이터’도 필요하지 않은,

누구에게나 평등한 시대를 딸에게 살게 하고싶은 ‘나’의 뜻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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