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하고 강렬한 단편영화 같은 호러소설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층간소음 (작가: 엄성용, 작품정보)
리뷰어: 랜돌프23, 20년 9월, 조회 96

브릿g에서는 소설뿐만 아니라 리뷰 읽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그 덕에 제가 놓쳤던 작품을 알게 되어서 구미가 땡겨 찾아 읽게 되기도 하고, 또 이미 제가 읽은 작품이라면 다른 분은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살펴볼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식견과 필력이 대단하신 분들도 많고요.

그렇게 또 리뷰란을 둘러보던 도중, 연속으로 두 번의 리뷰를 받은 호러소설이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곧장 호기심이 생겼죠. ‘우와, 어떤 소설이길래 이렇게 리뷰가 바로 두 개나 달린 걸까?’하고요. 물론 리뷰가 달려야만 좋은 작품인 것은 아니지만, 리뷰가 달렸다는 것은 단문응원란을 벗어나 따로 시간과 지면(이라는 말을 웹에서 쓰긴 묘한데 ㅋㅋ;)을 할애해서 쓰고 싶을 만큼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생기는 소설이라는 뜻이잖아요?

그래서 곧장 읽어봤습니다.

분량이 생각보다 굉장히 소박(?)한 것에 놀랐습니다. 뭔가 할 얘기가 많으려면 분량도 길고 이야기가 많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자그마한 편견도 있었고요.

그리고 읽고나니, 과연 깔끔하고 멋진 호러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다른 두 분(환상괴담 님, 태윤 님)이 이런 저런 얘기를 리뷰에서 써주셨기에, 중복되는 내용은 제외하고 제 감상을 말씀드리자면, 강렬한 단편영화를 본 것 같은 인상을 주는 호러소설이었습니다.

정말로 단편영화로 만들어도 꽤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서 단편영화라고 함은 <2AM : the Smiling Man>이라든가 <Zygote>처럼 유튜브에 올라온 10분 내외의 작품을 의미합니다. (두 작품은 유튜브에 검색하면 바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추천드리는 작품들이니 시간 나면 한 번 봐보세요!) 그 단편영화들은 짧은 분량 안에 강렬함으로 관객을 사로잡습니다. 쉽게 잊히지 않는, 참신함, 기묘함, 혹은 반전 등을 통해 뇌리에 깊게 각인 시키죠.

엄성용 작가님의 <층간소음>도 그런 느낌의 소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층간소음… 층간소음과 같은 사회문제는 호러소설의 단골소재 중 하나죠. 층간소음 문제 자체가 가져다주는 정신적인 피로와 피해, 얼굴을 본 적도 없는 타인에 대한 살의, 하지만 옆집사람도 아니고 누가 사는지도 잘 모르겠는 윗집 사람에게 가서 따졌을 때 이길 수 있을까(오히려 해코지 당하진 않을까) 하는 불안… 써먹을 게 정말 무궁무진합니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런 요소들을 보란듯이 배반합니다. ‘이런 호러 많이 봤어, 이렇게 전개되겠지?’라고 예상하는 내용들을 ‘응, 아니야’ 하고 내친다고 할까요…

 

※이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작품 먼저 감상하고 오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우선, 주인공.

주인공은 층간소음의 피해에 시달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랫집 사람이 따지러 올라옵니다. 호오, 여기서 한 번 재미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주인공이 층간소음을 내는 사람이라니… 게다가 주인공은 자신은 뛰어다닌 적도 없고 애도 없고 강아지도 없어서 그럴 리 없다고 강력히 주장합니다. 여기서 저는 또 내용을 예상해봤습니다. 자신은 그런 적 없다고 하지만, 상대는 분명히 들었다고 말하는 미치고 팔짝 뛸 상황, 해결되지 않는 답답한 대화, 깊어지는 오해… 결국엔 아랫집 사람이 주인공을 해치려고 하는 건 아닐까… 결국엔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소통이 없어진 아파트 단지의 비극 같은 이야기인가… 결국 그 소리는 누가 낸 것인가 하는 미스터리함까지…

물론 이 소설은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둘째, 훅 하고 치고 들어오는 귀신.

화장실 쪽에서 소리가 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주인공은 화장실 문을 엽니다. 와, 여기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갑분머리쿵입니다. 당연히 아무도 없어야 할 화장실에, 갑자기 낯선 여자가 욕조 바닥에 자기 머리를 찧고 있다뇨. 이런 급작스러운 광경에 주인공도 놀라고 저도 당황해서 놀랐습니다. 원인 모를 소리가 아니라, 너무나 분명하게 눈 앞에 있는 층간소음의 원인, 근데 그 존재의 정체도 출처도 불분명합니다. 소름 돋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아랫집 사람은 부리나케 도망가버립니다. 예상했던 내용이 보기 좋게 전부 부서져버렸군요. 도대체 저 여자는 무엇일까, 사람일까 귀신일까, 왜 저기 있는 걸까… 주인공은 두려움으로 가득했겠지만, 독자 입장인 저는 이제 호기심으로 글을 읽게 됩니다. 뭘까 뭘까 하고요.

셋째, 원(怨)의 귀신.

저번 학기에 일본 영화 수업에서 한국의 귀신은 한(恨)이고 일본의 귀신은 원(怨)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물론 교수님 말씀대로 이걸 완전히 일반화시킬 수는 없는 것이지만, 귀신을 바라보는 대체적인 시각이 어느 정도 반영되어있지 않나 싶었습니다. 한국에서는 귀신이 나오면, 대체로 억울합니다. 그래서 한을 풀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사연이 나오고, 한풀이를 하고, 복수에 성공하는… 그래서 귀신이 연민의 대상으로 그려지고, 또 성취되지 못 한 정의의 일부로 봅니다. 그래서 영화든 소설이든 귀신에게도 정당성을 요구하는 의견이 꽤 많습니다. 어쨌거나 귀신이라도 한 때는 사람이었다는 게 꽤나 강조되는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귀신이 될 만 했네, 어쩌다 저렇게 되었을까 등등)  반면에 일본의 귀신은 억울해서… 모두를 죽이고 싶어 합니다(!) <주온(呪怨)> 같은 거죠. 아니, 그 집에 사는 사람이 무슨 잘못입니까, 그냥 거기 살게 된 아무 관계 없는 사람일 뿐인데… <링>도 마찬가지로, 매스컴이 미운 건 알겠는데, 거의 무차별 테러나 마찬가지입니다. 불특정 다수가 마구 휘말려듭니다. 무시무시합니다. 일본에서는 원한을 품은 귀신은 사람으로서의 귀신이 아니라 요괴로 보는 시각이 강한 것 같습니다. 이래서 귀신이 가지는 공포의 강도는 일본이 더 강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쪽이 좋고 나쁘고가 아니라, 죽은 넋에 대한 시선과 문화가 굉장히 다르다는 뜻이라 생각됩니다. 미국은 죽은 사람을 다루기 보다는, 사람이 아닌 ‘외부의 존재’가 악(惡)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죠. 악마라든가, 초월적 존재라든가…

그리고 이 소설에 나오는 여자 귀신은 한(恨)보다는 원(怨)에 가까워 보입니다. 주인공이 무슨 죄입니까, 똑같이 혼자 집에 살게 된, 집주인한테 사고물건(事故物件)이라는 걸 듣지도 못 하고 입주하게 된 평범한 인물일 뿐인데 말이죠. 이런 탓에 주인공이 겪는 공포는 더더욱 극대화됩니다. 여자 귀신은 자기 사연도 말하지 않고, 어떤 걸 원하는지도 밝히지 않습니다. 그냥 주인공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것, 묻지마 살인이나 무차별 테러에 가까운 순수한 살의밖에 없죠. 설득도 안 되고 막을 수도 없고 손을 쓸 수 없다는 절망만한 공포가 있을까요?

아, 물론 이런 점을 들어 이 소설은 일본풍 호러다, 일본식 귀신이다~라고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우리나라에도 원(怨)의 귀신이 있고, 일본에도 한풀이(일명 성불成仏)가 있습니다. 굳이 일본과 한국으로 갈라서 얘기한 건, 어떤 이미지인지 쉽게 분류해 설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귀신은 대체로 단독주택에서 많이 나타났습니다. 여전히 단독주택이 많은 일본의 특징이 반영된 것이죠. 하지만 이 소설은 우리에게 친숙한 아파트가 배경이고, 거기에 ‘층간소음’이라는 요소를 집어넣어서, 이런 귀신의 공포를 이중으로 배가시켰습니다. 직접 당하는 주인공과,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어서 그 원한과 저주의 소리(쿵쿵쿵)를 듣고 있을 수밖에 없는 아랫집 사람으로 말이죠. 짜증과 불만을 일으키는 소리를 이렇게 공포의 소리로 바꾼 것이 무척 인상깊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티븐 킹은 귀신들린 집 이야기가 호러가 되는 이유 중 하나는 경제적인 공포 때문이라고 <죽음의 무도>라는 책에서 얘기한 적 있습니다. 집에서 귀신이 나타나고 이상한 일이 마구 벌어지는데, 사실은 그것 자체가 무서운 게 아니라, 그런 일이 벌어지는데도 마음대로 도망가지 못 하는 현실이 무서운 것이라고요. 이 집을 놔두고 다른 집을 바로 구할 만큼의 경제적 여유가 없으니, 이 집을 얼른 팔아야 하는데, 소문이 이러니 팔리지도 않아 발이 묶이게 되는… 경제적인 문제가 이 공포의 늪에서 사람이 빠져나오지 못 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소설에서도 이런 점이 마지막에 잘 드러나있습니다. 무시무시한 윗집을 두고도 아랫집 사람이 떠나지 못 하는 이유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죠. 결국 그런 공포를 안고도 사람들은 ‘지박령’마냥 자신의 집에 붙어있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런 걸 보면 그 귀신이나 사람이나 뭐가 다를까 하는 씁쓸함이 밀려오네요.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엄청 자극적이고 괴랄한 표현도 없이 어쩌면 고전적이고 수수하다고 할 수도 있는 이미지들과 묘사만으로 이런 분위기를 이끌어냈다는 게 인상 깊었습니다.

앞으로도 건필하시길 바랍니다! :gr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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