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 선연한 – 찔레와 장미가 헤어지는 계절에 의뢰(비평)

대상작품: 찔레와 장미가 헤어지는 계절에 (작가: 번연, 작품정보)
리뷰어: dorothy, 17년 4월, 조회 73

천제가 귀히 여기는 수문장 호랑이 한 마리, 하늘길이 허락되지 않는 죄인 암여우가 한 마리.

다들 두려워하고 경외하고 원망하고 해치우고 싶어하는 호랑이 한 마리, 민들레를 닮은 눈을 한 여우 한 마리.

암컷을 한번도 품어보지 못한 호랑이 한 마리, 옥에 갇힌 지아비를 그리는 여우 한 마리.

 

이 작품에 등장하는 호랑이와 여우의 대비는 이렇듯 극명하다. 그렇기에 작가가 풀어내는 그들의 이야기가 더 애처롭게 느껴진다. 양 극단에 닿은 자들은 닮는다 하던가. 하나부터 열까지 같은 구석 하나 없는 그들이지만 풍기는 분위기는 어쩐지 비슷하다.

잔인하다. 지아비를 찾는 여우에겐 그녀가 알지 못한 진실이 잔인하고, 그녀를 내쫓는 호랑이에겐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는 감정이 그러하다. 알게 된 후에는 어떻게든 상처받을 성질의 것들. 두 주인공은 당사자는 모르는 서로의 비밀을 껴안고는 서로 다른 이유로 애끓어한다.

폐가 터질 듯 들이마셨다가, 숨이 달리도록 내뱉는다. 작품을 읽을수록, 영영 닿을 수 없는-닿으면 안 되는- 호형랑의 손끝에 온 신경이 집중된다. 그는 모르는 비밀을, 독자는 안다. 독자는 호랑이의 옆을 포르르 날아다니며 약을 올리는 새가 되기도 하고, 멀찍이 물러앉아 손을 턱에 괸 관전자가 되기도 하며, 그녀의 지아비에 참수형을 내리는 집행관이 되기도 한다. 호형랑 뿐 아니라, 그 둘을 보는 독자의 심장도 널을 뛴다.

계집을 볼 때마다 뭔가 울컥 치솟아 오르는 걸 느꼈다. 그것은 화병 같기도, 토기 같기도 하여 사내는 불쾌했다.

사내로서는 한 번도 느껴본적이 없는 감정이라 그저 불쾌할 뿐이다. 호랑이는 모르고, 여우는 모르는 척 하고, 독자는 안타까워한다. 어딘지 코끝을 찡하게 하는 아련한 분위기가 작품 내내 흐른다.

로맨스, 라고 말하기엔 그 단어가 경박스러워 차마 쓰지 못한다. 러-브 스토리, 사랑 이야기, 아무래도 좋다는 듯 이름붙일수야 있겠지만, 이 작품엔 어쩐지 어울리질 않아 그만두게 된다. 하지만 의심할 것 없이 주제는 사랑이다. 각자 다른 곳을 보고 있긴 하지만서도.

스러지기 직전, 어쩌다 죄인이 된 지 모를 여우의 말이 애처롭다.

“하지만- 다른 생 어딘가엔 우리가 서로 닿을 수 있겠지요.”

(중략)

“…그 긴 생 어딘가에, 당신을 지아비로 모셔 은혜 갚을 생 하나 없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작품 제목의 이유를 적은 작가 코멘트를 인용한다.

찔레가 먼저 핍니다. 한창일 때 장미가 뒤따르듯 피고, 찔레가 다 지고도 한참이 더 지나야 장미도 지더군요.

찔레가 여우라면, 장미가 호랑이입니다.

 

찔레와 장미가 헤어지는 계절이, 선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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