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제가 귀히 여기는 수문장 호랑이 한 마리, 하늘길이 허락되지 않는 죄인 암여우가 한 마리.
다들 두려워하고 경외하고 원망하고 해치우고 싶어하는 호랑이 한 마리, 민들레를 닮은 눈을 한 여우 한 마리.
암컷을 한번도 품어보지 못한 호랑이 한 마리, 옥에 갇힌 지아비를 그리는 여우 한 마리.
이 작품에 등장하는 호랑이와 여우의 대비는 이렇듯 극명하다. 그렇기에 작가가 풀어내는 그들의 이야기가 더 애처롭게 느껴진다. 양 극단에 닿은 자들은 닮는다 하던가. 하나부터 열까지 같은 구석 하나 없는 그들이지만 풍기는 분위기는 어쩐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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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하다. 지아비를 찾는 여우에겐 그녀가 알지 못한 진실이 잔인하고, 그녀를 내쫓는 호랑이에겐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는 감정이 그러하다. 알게 된 후에는 어떻게든 상처받을 성질의 것들. 두 주인공은 당사자는 모르는 서로의 비밀을 껴안고는 서로 다른 이유로 애끓어한다.
폐가 터질 듯 들이마셨다가, 숨이 달리도록 내뱉는다. 작품을 읽을수록, 영영 닿을 수 없는-닿으면 안 되는- 호형랑의 손끝에 온 신경이 집중된다. 그는 모르는 비밀을, 독자는 안다. 독자는 호랑이의 옆을 포르르 날아다니며 약을 올리는 새가 되기도 하고, 멀찍이 물러앉아 손을 턱에 괸 관전자가 되기도 하며, 그녀의 지아비에 참수형을 내리는 집행관이 되기도 한다. 호형랑 뿐 아니라, 그 둘을 보는 독자의 심장도 널을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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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집을 볼 때마다 뭔가 울컥 치솟아 오르는 걸 느꼈다. 그것은 화병 같기도, 토기 같기도 하여 사내는 불쾌했다.
사내로서는 한 번도 느껴본적이 없는 감정이라 그저 불쾌할 뿐이다. 호랑이는 모르고, 여우는 모르는 척 하고, 독자는 안타까워한다. 어딘지 코끝을 찡하게 하는 아련한 분위기가 작품 내내 흐른다.
로맨스, 라고 말하기엔 그 단어가 경박스러워 차마 쓰지 못한다. 러-브 스토리, 사랑 이야기, 아무래도 좋다는 듯 이름붙일수야 있겠지만, 이 작품엔 어쩐지 어울리질 않아 그만두게 된다. 하지만 의심할 것 없이 주제는 사랑이다. 각자 다른 곳을 보고 있긴 하지만서도.
스러지기 직전, 어쩌다 죄인이 된 지 모를 여우의 말이 애처롭다.
“하지만- 다른 생 어딘가엔 우리가 서로 닿을 수 있겠지요.”
(중략)
“…그 긴 생 어딘가에, 당신을 지아비로 모셔 은혜 갚을 생 하나 없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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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작품 제목의 이유를 적은 작가 코멘트를 인용한다.
찔레가 먼저 핍니다. 한창일 때 장미가 뒤따르듯 피고, 찔레가 다 지고도 한참이 더 지나야 장미도 지더군요.
찔레가 여우라면, 장미가 호랑이입니다.
찔레와 장미가 헤어지는 계절이, 선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