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지 드레드와 다크나이트 사이에 공모(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정의의 일격 (작가: 노말시티, 작품정보)
리뷰어: 루주아, 20년 8월, 조회 46

잘 봤습니다. 흥미로운 생각할 거리를 몇 가지 던져 줘서 재미있게 읽었어요. 어떤 히어로물의 토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이 작품이 실제로 히어로물이 아니더라도요.

일단 하나 선언하면서 들어가야 할 거 같은데 익명의 사적 제제가 정의가 될 순 없죠.

가끔, 아니 매우 빈번하게 국가의 폭력이 정의롭지 못하게 작동하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넘어 모든 폭력을 국가에 위임하고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원칙에 따라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그 폭력을 휘두를 수 있게 합의했으니까요. 아니 최소한 합의했다고 믿으니까요.

이것은 히어로물의 전재와 근본적으로 모순됩니다. 이게 사실은 가면 쓴 자경단 이야기잖아요? 국가에 폭력을 반납하지 않은 사람들이요. 그런데도 심지어 정의로운 사람이고요. 그렇기에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해 놓는 거 같아요. 이것은 법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야. 라고 인식시키는 장치가 필요해요. 대표적으로는 치안이나 공권력이 더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슈퍼 빌런이 그 예시겠지요.

그렇지만 여기에 나오는 빌런이 그렇게 슈퍼한가요? 약간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물론 이게 히어로물이 아닌데 억지로 같은 잣대를 들이대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요. 여태까지 제가 본 히어로물의 ‘빌런’ 은 공권력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초법적인 힘을 가져서 어쩔 수 없이 법 바깥의 정의로운 자경단인 히어로가 나서야 한다면 이 작품에서 빌런은 달라요. 그들은 너무나 사소하기에 법이 어쩔 수 없는 그런 빌런들입니다.

그러니까 1호선에서 고함을 치는 광인이나 직장에서 자신의 위력을 이용해 폭언하는 상사 같은 그런 사람들이요. 관련된 법이 정말로 없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할 순 없지만, 그 법을 정말 적용할 수 있냐고 물어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사람들이죠.

그렇기에 대단히 아쉽습니다. 세영의 빌런이 가지는 초법성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에요. 작품 내 다른 빌런들이 가지는 초법성은 그들이 너무나도 잔챙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부분이겠지요. 그런데 세영의 빌런은… 일격 사용자들이잖아요! 이건 전통적인 ‘슈퍼 빌런’이잖아요. 그들을 법적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까닭은 어떤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에요. 이건 전혀 다른 초법성이고 전혀 다른 위계로 느껴집니다.

작금의 현실을 생각해 보면 세영을 위한 변명이 준비되어 있어요. 여기서 n번 방이나 손정우 사건을 읽어낼 수 있으니까요. 그렇기에 세영의 빌런들이 일격 사용자인 게 더 불합리하게 느껴집니다. 일격 때문에 그 사회적 배경이 숨는 게 아닐까요? 그것을 일격으로 에둘러 표현한 거라면 명쾌하거나 많은 분량의 뭔가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저지 드레드였어요. 세영에게 이곳은 무법지대였을 것이고, 이제 저지가 돼서 심판하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저지 드레드가 되기에는 근본적으로 세영은 시스템이 아닙니다. 저는 이게 조직이 언급만 되지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처럼 느껴져요. 대체 조직은 어떻게 일 처리를 하고 있나요? 일격을 써서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에 대해선 침묵하고 일격 사용자가 일격 사용자를 잡는 것만 감시하는 것처럼 보여요. 조직도 어떤식으로든 이런 악을 심판하고 있고, 이 심판관으로 세영을 임명하는 스토리가 있다면 정말로 저지 드레드처럼 읽을 수 있겠지만, 그런 이야기는 아니었으니까요.

다 읽고 떠오른 건 다크 나이트였어요. 처음 떠오른 까닭은 단순히 세영의 정의가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도망가기 때문이에요. 그렇기에 마지막 태현의 독백을 쫓기는 배트맨을 보는 고든과 고든 주니어의 대화에 약간 겹쳐 봤어요. 물론 이 이야기는 다크 나이트가 아닙니다. 세영의 정의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가 좀 애매한 거 같아요. 그것이 정말로 이 땅의 법이, 혹은 소설 속에서만이라도 존재하는 그런 최소한의 도덕선이 그런 범죄에 관대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세영이 죄를 짊어져야 하는 건지, 아니면 자신의 정의에 무너진 광인들에 싸움에 태현이 낄 수 없기 때문에 세영이 떠나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게 느껴지네요.

그래서 이 소설이 끝난 것처럼 느껴지지 않고 억지로 뒷부분을 뜯어낸 것처럼 느껴져요. 당연히 이게 억지로 저지 드레드나 다크 나이트가 될 필요는 없겠죠. 모든 것이 밝거나 어두운 두 단계에 있는 것도 아니고 회색지대에 잿빛으로 서 있는 것도 의미는 있겠지만요. 하지만 아쉽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거 같아요.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