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도 양반후반이 되나요 공모(감상)

대상작품: 병아리를 줍던 날 (작가: , 작품정보)
리뷰어: 오메르타, 20년 8월, 조회 48

인생 참 어렵죠. 새옹지마니, 마라톤이니, 삶은 달걀이니 하는 갖가지 비유들이 많은 것도 인생을 간단히 정의하기가 어렵기 때문일 거예요. 우리네 인생을 하루의 시간으로 비유한다면, 급식을 먹을 나이인 이 소설의 주인공 아이는 이제 막 동이 틀 무렵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손오공 작가님의 <병아리를 줍던 날>은 자신을 닮은 시간에 집을 나선 아이가 자신을 닮은 존재인 병아리를 만나 해질녘까지 동화적인 경험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예요.

 

아이와 병아리가 다양한 종류의 치킨들과 배송청년, 그리고 배불뚝이 어른을 만나고 대화하는 이야기는 쌩 떽쥐뻬리의 <어린 왕자> 에서 어린 왕자가 여행을 하며 왕, 술꾼, 사업가, 허영꾼, 가로등지기 등을 만나는 이야기를 떠올리게 해요. 다만 <어린 왕자>의 인물들은 각각 잘 짜여진 캐릭터로 세태를 풍자했던 반면, 이 소설의 치킨들과 인물들이 병아리에게 해주는 얘기는 다소 평면적인 느낌이 있어서 아쉬운 마음이 들어요. 그리고 병아리가 하루만에 중닭으로 쑥쑥 자라는 모습을 보이는데, 정신적인 성장을 상징한다기엔 약간 어색한 감이 있어서 궁금하기도 해요. 병아리는 성장을 했다기 보다 주로 좌절을 겪었는데, <아프니까 중닭이다 >는 아니겠죠.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는 육아에 관심없는 아빠들의 헛소리고, 요즘 어린 아이들은 어른들 못지 않게 치열하다고 해요. 연봉이 얼마인지에 따라 사회에서의 위치가 정해지는 어른들처럼, 출신대학이 어디인지에 따라 서류전형의 결과가 달라지는 취준생처럼, 어느 고등학교를 다녔느냐에 따라 학종에서의 당락이 결정되는 입시생처럼, 어린 아이들도 계급화된 사회에 익숙해져 있다지요. 단순히 아빠 차가 뭐냐의 수준을 넘어서 사는 지역과 주거 형태 등에 따라 ‘거지’라고 불리기도 한다네요. 그런 아이들을 나무라고 싶지만 한편으론 한 사람의 출신 배경이 그의 장래를 결정짓는 것이 시스템으로 굳어진 우리 사회의 탓인 걸 애꿎은 애들을 혼낼 염치가 있나 싶어요.

 

브랜드 치킨집에 들어가려면 처음부터 브랜드 양계장에서 태어났어야 해.

 

그런 치킨집에서 쓰이는 닭들은 일류 양계장에서 내놓은 우수 품종의 닭들이야. 너랑은 태생부터가 다른.

 

억울하면 다음 생에는 백봉이나 청계처럼 귀하신 몸으로 태어나든가.

 

윤기가 자르르 도는 적색 슈트를 입은 양념치킨이 되고 싶다던 병아리는 이런 절망적인 말들을 듣게 되는데, 우리 사회의 아이들이 듣게 될 말과 별반 다를 게 없네요.

 

아이와 병아리는 양념치킨과 비슷하다는 닭강정을 방문했는데, 닭강정은 겉보기만 그럴싸할 뿐 눈 앞의 만족을 찾는데 급급한 욜로족들이었어요. 소설 말미에 등장한 배불뚝이 어른은 짜여진 틀에서 벗어나 한계를 뛰어넘은 파닭의 예를 들며 ‘자신만의 치킨’이 되라는 조언을 해요. 병아리도 이에 큰 깨달음을 얻은 것 같고요.

 

“말은 쉽지” 라는 회의적인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스스로의 꿈을 찾아갈 아이들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어요. 다양한 도전과 실패를 겪고도 다시금 다른 꿈을 찾을 수 있는 넉넉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병아리에게 양념이 될 것인지 후라이드가 될 것인지 당장 결정하라고 몰아붙이는 사회가 아니길 바래요. 우선은 양반후반으로 시작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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