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제가 이 소설의 리뷰를 써도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눈물을 마시는 새’라는 작품을 읽어보지 않아서 어떤 내용인지, 또 그 세계관이 어떤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 나오는 여러 용어들이나 기술 등이 어떤 건지 감을 잡는 게 어려웠습니다. 지금도 완전히 이해했다고 말하기 힘들지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소설을 너무나 즐겁게 읽었습니다. 아무래도 물리학 전공을 하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은데, 그렉 이건의 <쿼런틴>을 읽은 이후로 이런 느낌을 받아보는 건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원래 ‘눈물을 마시는 새’도 이런 이과적인 감성이 들어간 판타지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소설을 쓰신 작가분의 수려한 말솜씨와 현란한 이론 설명 능력에 감탄하고 또 즐거웠습니다. 보통 자신이 잘 모르는 작품의 팬픽이라면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읽다가 그만둘 법도 하지만, 이 소설은 계속 읽히더라고요. 그도 그럴 것이, 작가의 말에서도 드러나듯 ‘눈물을 마시는 새’의 팬픽일뿐만 아니라 H.P.러브크래프트의 ‘허버트 웨스트-리애니메이터’의 오마쥬가 담겨있기 때문에, H.P.러브크래프트의 팬으로서도 즐길만한 내용 전개와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아무튼 ‘눈물을 마시는 새’에 대해서 잘 모르는 주제에 장점과 단점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이 주제 넘은 짓일지 모르니, 미리 죄송하다는 사과의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선 장점은 치밀한 이론적 구성에 있습니다. 읽으면서 물리학적인 이론 설명이 나올 때마다 몇 번을 웃음을 터뜨렸는지 모르겠습니다. 판타지적인 설정을 현대물리의 개념으로 파고들면 어떻게 되는지, 그런 기묘한 로망(?)을 잘 실현해주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로망이라고 하니 좀 웃기게 들릴 수도 있는데, 저는 물리학 공부하게 되면서 고질병처럼 그런 걸 자꾸만 따지게 된 것 같습니다. (모든 물리학과 학생이 그렇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일반화는 위험하죠) 유령이 벽을 통과해서 가는 걸 보면 ‘에이, 말도 안 돼’하고 넘기는 게 아니라 ‘만약에 유령이 벽을 통과할 수 있다면, 지각과 맨틀도 통과할 수 있을 테니 유령을 이용해서 지구 내부구조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지금까지 지진파 등을 이용해 간접적으로밖에 관측할 수 없어서 수수께끼였던 지구의 내부 구조를 완벽하게 밝혀낼 수 있을 것 아닐까?’하는 약간 나사 빠진 생각을 하는 것이죠. 이래서 물리학과랑 영화 보러 가면 안 된다고 친구가 말했던 게 떠오르는군요 아무튼, 핵심은 ‘유령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 없음’이 아니라 ‘유령이 있다고 가정하자’에서 시작하는 온갖 논리적인 전개와 거기서 도출되는 결론입니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치의 환상 구현이라는 정확한 원리는 모르겠는 어떤 개념이 ‘일단 가능하다고 가정하자’에서 시작해, 그게 현실적인 물리 법칙 속에서 어떤 결과를 도출해내는지를 꼼꼼하게 파고듭니다.
특히나 광자의 인식과 상호작용, 힘을 매개하는 가상입자(게이지 보존)로서의 역할을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의 복선으로서, 그리고 그 근거로서 이용하는 부분에서는 전율이 일었습니다. 역학적 에너지 보존법칙을 근거로 환상이 단순히 환상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물리적 실체와 상호작용할 수 있다(즉, 대상의 물리적 특성:퍼텐셜 에너지의 크기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드러내는 부분 또한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열역학은 말할 것도 없고요. 마치 파인만의 강의록을 읽듯이 그걸 하나 하나 읽으며 ‘정말 그렇게 되나? 이게 그런 식으로 적용되나?’하고 따져보는 것도 즐거움이었습니다. 저도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저렇게 술술 쏟아내 SF를 쓰고 싶은데, 아는 거랑 저렇게 물흐르듯이 적용하는 건 별개인 모양입니다. 답안지나 설명문을 쓰는 건 괜찮은데, 소설이라는 건 정답을 말하는 게 중심이 아니라 재미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소설은 그런 이론을 재미있게 이용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장점은, 이건 제 개인적인 상황에 국한되는 것입니다만, ‘눈물을 마시는 새’를 몰라도 소설을 읽는데 너무 어렵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진입장벽을 낮추었다고 할까요, 작품 내에서 설명이 적절하게 첨가되니 저도 읽으면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마치 양자역학의 원리마냥, 몇 가지 묘사와 설명을 보고 ‘아, 여긴 그런 세계구나’라고 받아들이면 소설이 읽기 쉬워집니다. 그런 한편, ‘눈물을 마시는 새’가 궁금해지게 만들더군요. ‘팬이어야 읽오 재밌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니라 ‘팬이 아니라도 재밌게 읽고 원작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 만한 소설’이라는 장점이 있지 않나… 저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소설 세계관의 낯섦을 해소한 대신, 물리학적인 진입장벽이 낮다고는 보기 힘들어서, 전체적으로 진입장벽이 정말로 낮은가는 조금 의문입니다. 이는 바로 아래에서 말하겠습니다.
단점은, 물리학적 설명이 많아서 해당 개념에 익숙치 않으신 분들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근데 이걸 또 일방적으로 ‘단점’이라고 해서 고쳐야할 것이라고 볼 순 없는 게, 제 입장에서는 이러한 자세하고 치밀한 물리학적 담론이 이 소설의 정체성이자 매력입니다. 어쩌면 하드 SF가 모두 가질 수밖에 없는 본질적인 진입장벽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여기서 더 친절하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보태자니, 이미 소설에 설명하는 분량이 무척 많습니다. 잘못하면 과잉이 되고, 할리데이의 일반물리학을 읽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 될 수 있으니 말이죠.
또 하나는, 아무래도 두 사람이 주고받는 담화이고, 그 대화가 설명, 논박, 증명으로 이루어진 토론에 가깝다보니, 그 논리를 따라가며 ‘그럴듯 함’에 감탄할 수 있는 재미를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판타지나 SF에서 기대할 만한 스펙타클함은 존재하지 않아서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는 것입니다. 영화 <맨 프롬 어스> 같다고 할까요, 변하지 않는 한정된 배경 속에서 오로지 대사만으로 관객이나 독자를 휘어잡고 끌고 나가야 합니다. 여기서 몰입시키는 작가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또 독자가 얼마나 인내를 가지고 꼼꼼이 대사를 소화해 읽는가도 걸려있는 형식입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지만, 소설이나 영화를 볼 때 그날 컨디션에 따라 추구하는 바가 달라지죠. 오늘은 별로 머리 안 쓰는 거 보고 싶다거나, 오늘은 좀 우울하고 난해한 게 보고싶다거나, 오늘은 그냥 화끈하게 구경할 수 있는 액션이 보고 싶다거나. 다만, 이것도 이 소설의 반드시 고쳐야할 단점이라고 칭하기엔 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소설의 스타일이니까요. 하지만 역시나 접근성이 좀 낮아지지 않나 하는 생각에 안타깝다는 생각은 조금 듭니다.
환상 구현을 물리학 법칙으로 파고들어가 관찰하고, 이해하고, 이윽고 이용하는 방법을 그려낸 이 소설은 이과감성을 좋아하신다면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눈물을 마시는 새’를 잘 몰라도 말이죠. 이미 ‘양자역학’에서 개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걸 해봤으니 별로 어렵진 않으실 겁니다 ㅋㅋㅋ
H.P.러브크래프트가 호러에 물리학적인 내용 섞기를 시도했던 것과 달리, 이렇게 판타지에 물리학적인 내용 섞는 것도 꽤 매력 있네요.
앞으로도 건필하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