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평하자면, 제법 괜찮은 발상이었지요.”
시라스 시에도는 디아틀을 한 번 돌아보고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하늘로 눈을 돌렸다. 절벽 너머로 보이는 하늘에는 제 동족 중에서는 체구가 작은 편에 속하는 하늘치 한 마리가 고요히 정박해 있었다. 디아틀은 수염볏을 한 번 쓰다듬고는 흥미 없는 눈으로 시라스가 가리키는 하늘치를 바라보았다. 국가과학원의 감찰관인 디아틀이 시라스 시에도의 실험실을 감사하기로 한 것은 그저 승진 심사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자청했을 뿐으로, 사실 그의 관심사는 시라스 시에도의 연구 분야인 생리학과는 동떨어진 곳에 있었다. 젊었을 적에 그가 학위를 받은 연구실만 하더라도 우주의 심오한 생성 원리를 연구하는 곳이었지 쥐나 아르마딜로 따위의 배를 갈라 그 안쪽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짓을 하는 곳은 아니었다. 디아틀의 생각에 진정한 과학이란 오직 자연에 존재하는 기본 입자의 특성과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물리학뿐으로, 생물학 따위는 같은 과학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도 부끄러운 조잡한 학문이었다.
이번 실험만 해도 그랬다. 적어도 그가 물리학을 할 때는 이런 탁 트인 계곡지대에 자기 멋대로 지은 실험실에서 연구하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시라스 시에도는 디아틀의 평가가 자신의 내년 연구 예산 집행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이 뿌듯한 표정으로 하늘치를 가리키며 자랑스러워하는 것이었다. 그가 참관해야 할 ‘너무도 중요하고 비밀스러워서 서신으로는 내용을 설명할 수 없는 실험’이라는 것도 고작해야 그 정도일 것 같았다. 계곡에는 시라스 시에도와 디아틀 외에는 오직 무심하게 부유하는 하늘치 한 마리가 있을 뿐이었다. 시라스는 거위 깃털로 속을 채운 두꺼운 외투를 입고 있었는데 안쪽에 전기로 작동하는 발열 장치가 달린 것이었다. 전지의 수명이 그리 길지 않아 불편하기는 했지만, 나가인 시라스가 귀중한 손님을 밖에서 모셔오려면 도리 없이 그런 옷을 입어야 했다. 시라스는 조심스럽게 전지의 잔량을 확인하며 디아틀의 반응을 살폈다.
솔직한 심정으로 디아틀은 시라스의 하늘치에는 큰 감명을 받지 않았지만,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감탄하는 체했다. 실험실에서 기다리더라도 탓하는 사람은 없었을 터인데도 나가인 시라스가 불편한 발열복까지 입고 마중을 나온 것을 보면 시라스는 이 실험실이 상당히 자랑스러운 모양이었다. 입장 상 우위에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한때나마 저명했던 연구자의 심기를 건드렸다가는 피곤한 꼴을 면치 못할 것이었기에 디아틀은 무례하게 굴고 싶지 않았다. 자기 자존심을 세울 수 있는 한에서라면 디아틀은 시라스의 자부심도 최대한 존중해 줄 생각이었다.
“자, 이제 올라가시죠.”
시라스가 품에서 속도계를 꺼내 디아틀에게 건네며 말했다. 시라스가 내민 속도계는 애들 용돈으로도 살 수 있을 저급품으로 국가사업을 맡을 연구실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연구 기관으로서의 품격을 갖추지 못한 것은 감점 사유였다. 디아틀이 속도계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그 눈빛을 오해한 시라스가 겸연쩍게 웃었다.
“아, 물론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이런 촌구석에서 환상교통법을 지키는 것이 선생님 눈에는 우스꽝스럽게 보이실 수도 있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나라를 위해 일하는 분이시고 자연히 하늘치를 보유한 세계 곳곳의 대도시에도 아주 많이 들러보셨을 테니까요. 그런 곳에서는 규정 속도를 준수하지 않으면 통행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부딪쳐 대단한 참상이 벌어지겠지요. 그렇게 큰 도시들을 많이 다니셨으니 이런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속도를 지키면서 다닌다는 것이 불필요하게 여겨지실 겁니다. 이해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 곳이라고 해서 규정을 준수하지 않는다면 그 규정을 만든 의미가 퇴색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항상 규칙대로 행동하려고 합니다. 그게 제 실험실을 드나드는 것처럼 일상적인 일이라고 해도요.”
디아틀은 ‘그런 나야말로 국가 예산을 타기에 적합한 도덕적인 연구자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은 시라스의 시선을 피하며 속도계를 받아들었다. 시라스는 공범자라도 된 것 같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몸을 돌렸다.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