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리뷰는 <유폐>의 일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저와 동년배, 혹은 비슷한 연배일 사람들에게 ‘어린 시절 가장 재밌게 봤던 애니메이션이 뭐냐’고 묻는다면 다양한 답이 나오겠지만 그 다양한 답 중 하나에 꼭 껴있을 애니메이션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학교괴담’입니다. 간단하게 줄거리를 설명해보자면 주인공이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신 후 가족들과 함께 부모님이 어린 시절 자랐던 동네로 돌아오는데, 알고보니 어머니는 집안의 대를 이어 요괴를 퇴마하던 사람이었고 때마침 구(舊)교사 뒷산이 재개발로 밀리면서 요괴들이 풀려나 주인공이 어머니의 일기장을 바탕으로 요괴 퇴마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시점으로 봐도 꽤 으스스한 부분이 많고 일본 작품이지만 한국에서도 유명한 괴담들이 나오는 회차가 꽤 있어 당시에 저를 비롯한 많은 친구들에게 인기였던 기억이 납니다.
‘유폐’는 ‘학교괴담’과 ‘전설의 고향’을 섞어놓은 것 같은 이야기입니다. 조금 더 개인적인 견해를 담아보자면 ‘학교 괴담’의 절망편, 혹은 성인편에 가까운 스토리입니다. ‘학교 괴담’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애니입니다. 주인공과 그의 친구들은 단 한번도 요괴를 퇴치해본 적이 없지만 귀신에 홀릴지언정 죽지는 않는, 그리고 결국 해피엔딩을 맞이합니다. 반대로 ‘유폐’는 끝없는 절망편입니다. 한 순간의 실수로, 판단 착오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은 되돌릴 수 없는 파국을 맞이했으며 그 누구도 손을 쓸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가상과 현실의 차이점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습니다. 만약 이 글이 어느 애니메이션이었다면 운 좋게 구원의 손길(할머니가 방법을 찾아내신다거나 다른 능력자가 나타난다거나)을 받아 동생을 만나는 해피엔딩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렇게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서 현실에 조금 더 가깝지만 가상의 선을 완전히 넘지 않은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가상임을 알면서도 그것이 완전한 가짜가 아닌 누군가가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아 몰입하기 좋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인 감상평을 적어보자면 읽기 전, 저는 ‘유폐’라는 제목이 이해가지 않았습니다. ‘아주 깊숙히 가두어 둔다’는 의미가 과연 무슨 뜻일지 쉬이 짐작가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읽고난 후, 이것만큼 더 어울리는 제목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정말로 이 세상 어딘가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을 것 같은 사실감의 글은 마치 어린 시절 늦은 밤에 티비를 켜고 ‘학교괴담’이나 공포 프로그램을 보는 것과 같은 생생함이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수정이는 무슨 일을 겪게 될지, 한순간에 동생을, 그리고 자식을 잃게 된 주인공과 주인공의 엄마는 어떤 심정으로 살게 된 것인지 사이에 있는 이야기들이 궁금해지는 것 역시 이 글의 묘미라 생각합니다. 짧은 글임에도 탄탄한 세계관을 구축할 수 있다는 점은 큰 장점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세계관의 글을 많이 써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