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옆집에 김철수가 산다 공모(감상)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악기바리 (작가: 임가비, 작품정보)
리뷰어: 도련, 20년 6월, 조회 122

먼저 작품을 읽고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16년의 한 신문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가장 많은 성씨는 ‘김이박’이라고 합니다. 특히 김씨는 정말 흔해빠지게 많아서 다섯 명 중 한 명은 ‘김씨’라지요. 게다가 철수는 얼마나 낯익은 이름입니까? 좀 낡은 감은 있지만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철수와 영희는 교과서와 시험 문제에 단골로 나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요즘 아이를 낳지 않는 추세이니 총 인구는 조금 줄어들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가는 법. 김씨는 여전히 많이 보이는 성씨일 것입니다. 즉 ‘김철수’란 어떻게 보면 정말 보편적인 남성의 이름이라는 뜻이지요. 그리고 아무래도 이 이름은 “아 등장인물 이름 붙이기 귀찮다… 대충 지어야지!”하고 아무거나 가져다 쓴 게 아닌 것 같습니다. 후술하겠지만, 작가는 분명한 의도를 지니고 주인공에게 ‘김철수’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잘한다, 꼬시다, 사이다다 뭐 이런 감정을 하나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이 소설을 읽으며 정말 아… 쓰레기다…. 이런 감정을 느낀 것도 아닙니다. 다만, 저는 분명히 존재하는 커뮤니티를 떠올렸습니다. 인터넷 말입니다.

외국 한 번 나가보면 바로 느끼게 되지만 우리나라는 인터넷 속도가 정말 빠르죠. 나이를 드러내게 되겠지만 제가 꼬꼬마 시절에 PC통신이 나왔고 조금 더 크고 나서는 인터넷이 나왔습니다. 초창기에는 480p 정도의 화상도 간혹 끊기던 유튜브는 눈부시게 성장해 4K 8K를 지원합니다. 시간을 돌려 사람들에게 미래에는 넷플릭스나 왓챠 플레이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가 나올 것이라고 이야기한다면 다들 믿지 못할 것입니다. 한낱 이미지조차 조금만 용량이 크면 위에서부터 천천히 제 모습을 드러내던 시절도 있었으니까요.

여기에서 어두운 이야기를 몇 자 해 볼까요.

요즘 사람들이 일베를 욕하고 트위터 조리돌림을 경멸하지만 저는 굳이 따지자면 ‘인간이 다 그렇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적어도 ‘노란 국물’을 기억하고 ‘O양 비디오’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일베나 트위터 조리돌림을 두고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나 즐기는 이상한 문화’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토한 것을 다시 먹는 영상이 붐을 일으켜 마침내 ‘엽기’라는 용어로 한 시대를 풍미하고 여성이 섹스하는 비디오를 너도 나도 인터넷으로 돌려 보다가 급기야 그 영상의 주인공이 기자회견을 여는 (여기서 그녀가 입었던 빨간색 떡볶이 코트가 선풍적인 유행을 탔던 것까지 덧붙인다면 정말로 암담해집니다.) 세상이 일베나 트위터의 세상과 얼마나 다르답니까? 뭐 그래도 트위터 사람들은 옳은 것을 위해서 PC한 것을 위해서 그러지 않냐고요? 제 기억에 저 엽기 열풍을 주도했던 곳 중 하나는 좌파와 진보를 표방한 인터넷 언론이었는데, 그 사람들은 정말로 나쁜 것을 위해 그런 짓을 했을까요? 그 시대에는 그저 그런 것들에 아무런 이상을 못 느꼈어요. 메이저한 감성이었다고요. 게다가 그렇게 따지자면 하다못해 일베 애들도 자기가 옳다고 생각할 거예요.

우리는 겨우 이 정도인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재미있게도 속칭 ‘사이다썰’을 읽어보면 그 구조나 행동양식이 이 이야기의 김철수와 조금 비슷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주인공은 김철수와 달라야 하지요. 그래야 사람들이 감정이입을 하기 쉬우니까요. 김철수 같은 밑바닥에 쓰레기 인간도 사람들이 주인공이랍시고 작가가 조금만 공을 들이니 감정이입을 하고 동조를 하는데, 심지어 주인공이 무결한 피해자 포지션으로 출발한다면 이 얼마나 안성맞춤이겠습니까? 조금 더 빨리 감정이입하기를 마치고 남은 시간은 난도질과 조리돌림에 투자할 수 있겠네요.

(저렇게 썼지만 김철수에게 동조하시는 분들은 내가 인간 쓰레기에게 동조했다는 말이냐고 격분하지는 마시길. 일단 김철수가 밑바닥 쓰레기 인간이라는 이야기는 어쩔 수 없는 참트루팩트이고……. 꼼꼼히 읽어보신 분들은 다들 눈치채셨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이 「악기바리」는 무의식중에 김철수를 옹호하도록 치밀하게 설계한 부분이 있습니다. 우현이 더 쓰레기로 나오는 것도 그렇고 김철수가 극단적인 상황에 몰리는 것도 그렇고. 은연중에 “김철수가 나쁜 놈인 건 사실이지만 최우현이 더 나쁜 놈인데다가 김철수도 충분히 보복을 할 만 하잖아?”라고 생각하게 만들도록 하는 장면이 이곳저곳 있지요.)

이 이야기를 읽고 쾌감을 느꼈다고 해서 내 도덕성에 흠집이 가고 윤리의식에 구멍이 나는 것은 아닙니다.

재미있게 잘 쓴 이야기를 읽으며 쾌감을 느끼는 게 이상한 일입니까?

다만 이 이야기를 읽으며 씁쓸해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작품의 질이나 메시지가 악을 옹호한다 이런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에서 담고 있는 현실의 편린이 정말로 세게 제 마음을 치고 가 버리니까요. 위에서 ‘우리는 겨우 이 정도인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저는 요즘 이 질문에 점점 확실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어요.

아무리 봐도 우리 사회 도덕-윤리 교육은 실패한 것 같습니다. 트랜스젠더가 여성인권을 후퇴시킨다며 우리는 소수자 인권을 챙기지 않고 여성 인권만을 챙길 것이라고 말하는 페미니스트가 생겨났을 때 1차로 절망을 했는데, 생각해보니 이런 건 유구한 역사와 전통의 흐름 속에서 탄생한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수능 잘 봐서 명문대까지 온 인간들이 현수막과 대자보를 붙여놓는 것 외에는 정말 별일도 안 하는 퀴어 동아리를 공공연히 모욕하고, “그런데 우리가 왜 동성애자 인권을 보호해줘야 하는 거예요? 그 사람들은 자기 인권을 스스로 보호하지 않잖아요.”라고 말하던 게 약 15년~10년 전이거든요. 일베와 무엇이 다릅니까? ‘노란 국물’을 일부러 찾아보며 엽기 열풍을 일으키고 잘못 클릭하면 포르노 팝업이 우다다다 떠오르며 ‘O양 비디오’나 돌려보던 사람들과 무엇이 다릅니까?

그러니 인간에게 무엇을 바랍니까? 심지어 제가 자주 듣는 오디오클립에 따르면 상대방의 표정에서 ‘고통’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만약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한 사회적 고립이 심화된다면 우리는 어쩌면 정말 새로운 세대를 맞이하게 되겠죠. 공교육이 담당하는 역할 중에는 사회화가 있다고 저는 생각하는데, 이런 과정을 거치지 못한 세대가 탄생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겨우 이 정도인 사람들, 겨우 이 정도인 세상.

이 앞에서 절망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도 참 신기한 일일 터입니다.

아직 풀리지 않았던 이야기 하나를 마저 결론내리겠습니다.

‘김철수’는 이 시대의 보편적인 인간상을 상정하기 위해서 일부러 붙인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넷 시대를 살아가는 보편적인 인간상의 표본이지요. 당신이 바로 김철수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당신은 유튜브에서, 커뮤니티에서, 아프리카 방송에서, 트위터에서, 인스타그램에서, 트위치에서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겠지만. 그리고 어쩌면 「악기바리」에 나오는 것마냥 노골적이지는 않아도 꽤나 가학적인 컨텐츠에 열광할 수 있겠지만. 반드시 컨텐츠를 수동적으로 소비하지 않더라도 김철수처럼 적극적으로 키보드를 놀리며 커뮤니티에 글을 적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사이버불링을 조장하는 트윗에 리트윗 버튼 한 번쯤은 멋모르고 누른 적이 있겠지만. 당신은 인터넷에 접속한 이상 결코 무결할 수 없지만.

어쩌겠어요? 사람은 자기 추한 부분을 찌르면 격분하는 법입니다. 그러니 작가님도 일부러 더 극단적이고 더 가혹한 상황을 적어놓은 것이겠지요. 적어도 이건 하이퍼 리얼리즘이 아니라 환상이 적당히 섞인 허구예요 ㅇㅅ<) 당신들은 안심해도 좋답니다! 저건 당신들의 이야기가 아니고, 비록 계속 계정을 파 가면서 가학적인 방송을 하는 사람들이 널렸고 심지어 조직적으로 가짜 뉴스도 퍼트리는 세상이 되어버렸지만 이 상황 또한 현실이 아니라 먼 미래에나 있을 이야기이며, 뭐… 어쨌거나 이것은 소설이니까요. 그러니 이야기에서 오는 쾌감만 소비하고 지나치면 되는 것이죠. 비록 “왕따가해자 경찰 ‘최우현’ 지금 ‘지하 TV’에서 방송중. 화력지원 바람.”이라는 마지막 한 줄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아도 뭔 대수랍니까. 어차피 소설인데요.

그러면 저도 이만 글을 마치고 사이버 공간에 다이브하겠습니다.

인터넷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하더라도 어떤 학자들은 낙관론을 폈습니다.

나이, 인종, 성별,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정한 평등과 진정한 민주주의가 올 것이라고요.

아이고, 지랄 마십쇼. 인공지능조차 차별을 학습하는 마당에 인간이 만들어서 인간이 꾸려가는 사이버 스페이스가 뭘 그리 대단하겠습니까? 인터넷이 생겨도 조지 플루이드가 죽었듯 인터넷이 생겨도 사람들은 너는 내가 원하는 만큼 PC하지 못하다면서 여성 이야기를 쓰는 여성 작가를 실컷 조리돌림하고 놀며, 한 지역을 통채로 비하하는 컨텐츠를 적극적으로 생산 및 소비하며 놀며, 페미를 죽이겠다 한남을 죽이겠다 트젠을 죽이겠다 서로서로 혐오하며 놀 것입니다.

자극적으로 글을 적는 능력과 시류에 발빠르게 탑승하는 능력이 점점 더 중요해지겠죠.

틀린 내용이라도 백 번 천 번 말하면 누군가는 그걸 믿을 것이고 그러다보면 그게 곧 사실이 될 텐데 뭐 어떻습니까?

겨우 이 정도인 세상에서 ‘올바르게’ 살아가는 방법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잘’ 살아가는 방법은 저것인 듯 합니다.

여러분! 성공을 위해 어그로를 끄는 능력과 사기를 치는 능력을 함양합시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