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을 끌기엔 매우 성공한 제목이긴 합니다만 내용을 읽어보시면 ‘아아,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에 무릎을 탁 치실 이 작품은 일단 사회적 풍자소설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손수정 작가님의 작품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단편의 조건을 두루두루 다 가지고 나오신 손수정 작가님의 이 작품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단편의 교과서이신 김 영하 작가님의 작품처럼 첫 문장부터 눈길을 쭈욱 잡아끄시더라구요. 뭘하는지도 모르는 기업에 들어가게 된 주인공은 회식에서 안주를 떠먹어줘야되는 사장의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듣고 바퀴벌레가 되었는지 모르는 대학교수를 찾아나섭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바퀴벌레는 이유도 없이 피하게 되는 존재입니다. 사실 아주 더러운 환경에서 살지 않는 이상 직접 보기는 힘든 벌레인데, 이 작품에서는 특히나 말도 안되는 이유로 바퀴벌레가 되었는지 알 수가 없는 한 사람을 찾아나서게 됩니다.
외국에서 오랜 시간 지냈다던 박 정숙 교수는 외모도 훌륭하고 성격도 좋았답니다. 그런데 사회성이 약~간 떨어졌다는군요.
이쯤에서 궁금해집니다. 대체 사회성이라는 건 뭘까요?
사회 구성원으로서 성장해갈 수 있는 어떤 능력? 아니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얻는 경험?
어렵습니다. 박 정숙 교수는 분명 현재 학계에 있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던 거지요.
이 작품에서 우리(평범하고 비범해질 수 없는 우리)가 비범한 누군가를 만났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되는지 돋보기로 내보이는 것처럼 제 민낯을 보이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했습니다만, 그 많은 평범한 우리의 칼질에 지친 누군가는 지쳐 쓰러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많은 평범한 우리에 비해 능력있고 노력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소수인 박정숙 교수는 아름답고 행복하며 모두가 우러러보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주변의 조금의 시샘과 약간의 질투는 있었지만요..;;;
그런 그녀가 바퀴벌레가 되겠다는 유서를 남겼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아니, 우리가 모르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녀를 보며 부러움과 질투를 느끼던 사람들에게 말이죠.
이 작품에서 주인공에게 박 정숙 교수의 실종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보였습니다. 그저 혜성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진 그녀의(정말 그녀인지?) 행적에서 추측할 수 있을 뿐인데, 그것이 왜 하필 바퀴벌레인지 바퀴벌레를 보는 작가님의 시각이 어떤지에 대한 느낌은 이 작품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아 궁금증이 남는게 솔직한 마음입니다.
풍자라는 건 어느 정도 피식 웃게 되는 시점이 있어야 할 겁니다. 이 작품에서는 그런 부분이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안주를 먹여줘야 하는 사장이나 이해가 되지않는 면접장면에선 피식 웃음을 짓게 되기도 합니다. 자기전에 한번 더 떠올리면서 미소를 지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작가님은 충분히 유머러스하시고 글을 읽는 내내 즐거웠으니까요.
수많은 장르의 작품이 쏟아져 나오는 시기에 이런 훌륭한 작품을 볼수있다는 건 브릿G에 오신 독자분들만의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손수정 작가님이 얼마나 더 많은 단편을 내실 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제 그만 할게요.’하는 그때까지 독자분들과 저는 즐기면 될 것 같습니다.
작가님은 이 작품을 풍자를 섞은 단편소설이라고 표현해주셨습니다만, 제게는 볼거리가 풍성한 종합선물셋트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멋진 작품을 볼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요.
저에게도, 독자분들께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