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극복하는 환상의 힘을 깨달아야 합니다. 의뢰(단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안경 토끼와 밤의 비밀 여행 (작가: 조제, 작품정보)
리뷰어: 이채윤, 20년 5월, 조회 50

저의 이전 리뷰는 그저 단상이었는데, 오늘 작가님은 조언이 필요하신 것 같았습니다. 저야말로 그런 판타지를 써내는 능력이 없으니… 구체적인 창작이나 작문의 조언을 드릴 수는 없겠지만, 꼭 축구팀 감독이 축구를 잘 해야하는 것만은 아니려니 하는 마음으로 머리를 굴려 봅니다.

현실적으로는 융의 ‘적극적 명상’ 법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냥 누워서 편하게 공상하면 돼요. 또는 이 작품을 ‘나랑 똑같은 상처를 받은 여섯살 짜리 아이’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쓴다고 마음 먹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이 원고가 막힌 이유는, ‘사랑의 상실’이란 상처를 작가님이 마무리 짓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랑이란 정말 어려운 문제죠.

말씀드렸다시피, ‘환상주의’는 ‘연상’, 즉 떠오르는 이미지와 장면의 자연스러운 연상입니다. 다듬고 계산해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감정에 사로잡혀있을 때 자연스럽게 나오죠. (맞나요? 전 드라이해서 그런 느낌 잘 몰라요^^;) 작가님이 어떤 감정 때문에 힘들고 고민하고 그러다 스스로 극복한 경험 자체가 통짜로 연상이 되어 흘러나올 때, 눈의 여왕 같은 작품이 나올 겁니다.

다시 말하면 이 원고가 막힌 이유는, 작가님이 사랑의 상실을 꼭 해결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꼭 적당한 사랑을 발견하거나 그 사람을 되찾아야, 내 마음도 낫고 얘기도 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사랑이란게 그렇게 정답이 있는게 아닙니다. 살다보면 아프기만한 상처로 끝나는 경우도 많아요. 너무 아픈 상처를 얻었지만 담담히 받아들이겠다는 연상으로도 동화는 끝이 마무리 지어질 수 있습니다. ‘아동 치유’, ‘인성 동화’ 등 태그의 동화들을 보면, 갈등(상처)의 해결이 그 클라이막스에서 의외로 쉽게 다뤄집니다.

예를 들어 보죠.
동생이 너무 미워서 동생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싶었던 형을 주제로 한 동화가 있다고 치면,
맨날 귀찮게 하고 자기 물건 망가뜨리는 동생이 밉더라.
어느날 동생이 진짜 사라져서 동화책 속에 갇혔더라.
그래서 나도 동화책 속에 들어가서 동생을 찾았다.
그런데 동화책 속의 마녀가 내 동생을 놔주지 않더라.
그래서 내가 너무 속이 상해서 펑펑 울었더라.
내 눈물이 불어서 바다가 되서 마녀는 떠내려가버렸다더라.
그래서 동생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런 식으로 간단하게 해결합니다.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플롯이죠? 뭔 헛소리냐고 욕먹겠죠?^^ 성인들은 어쩌다 서로 척지거나 싸우면, ‘제대로’ 이해가 되는 사과를 받아야 용서가 되고 막 그럽니다. 그거 사과하기 싫어서 막 절교하고 그러죠. 하지만 아이들은 싸웠다가도 같이 만나서 놀다보면 두루뭉수리하게 다시 웃고 잘 지냅니다. 그게 바로 환상의 힘이죠. 성인들은 갈등을 해결하는데 꼭 합리적이고 확실한 방법이 있어야 한다고 고집하지만, 사실 그런 건 중요한게 아니에요. 그냥 두루뭉수리하게 잘 지내면 안되나요? 두루뭉수리하게 용서하고 두루뭉수리하게 잊어버리면 안될까요?

성인들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그래?’라고 하지만, 아이들은 환상 속에서 ‘그냥’ 그렇게 합니다. 다시 결론을 말하면, 이 작품의 끄트머리에서 ‘사랑의 상실’이라는 어려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야겠다는 압박이 작가님의 상상을 방해한 것으로 보입니다. 혹은 아픈 상처를 안고 ‘그냥’ 살아갈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이렇게 괴로운데 어떻게 그냥 그래?’라고 물으신다면, 그때야말로 작가님의 환상이 빛을 발휘할 때입니다. 나 자신을 사랑하시고, 나 자신을 드러내는걸 창피하다고 여기지 마세요. 남에게 완벽하게 보이려고 애쓸 수록, 공허한 디테일만 늘어납니다. 자유롭게 상상하세요. 봉인 해제!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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