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 최신 중단편 란에 <리셋 프로토콜>이라는 제목으로 연달아 작품 3편이 올라왔던 것을 기억합니다. 시간의 분기점을 없애버려 시간선을 리셋하는 흥미로운 소재로 시작하지만 본질은 기억과 존재에 대한 사유의 글이고, 철학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꽤나 강렬한 감상을 선사했지만, 선뜻 댓글이나 리뷰를 쓰기에는 멈칫했습니다.
‘내가 과연 작가의 의도대로 읽은 것이 맞나. 의도를 잘못 파악하고 오독한 감상을 쓰게 되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본작 ‘샴발라의 질문’도 (아마도 의도적으로) 드라마보다 사유를 택한 소설이지만, 앞선 작품보다는 친절합니다.
소설은 히말라야 고원의 고대 유적을 탐사하는 연구팀의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과학자 엘리너와 그의 연구팀은 그곳에서 인류 문명보다 훨씬 앞선 외계 문명의 흔적을 찾아내고 인류의 유전적, 신화적 기원과 연결되는 메시지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발견한 충격적인 존재는 그들, 나아가 인류 전체를 혼란에 빠뜨립니다. 그들이 발견한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스포일러를 배제하고 작품을 분석하자면, 플롯은 점진적으로 상승하다가 연구팀이 발견한 존재가 정체를 드러내면서 이야기는 절정에 다릅니다. 그런데 플롯 자체에서 주는 드라마틱한 반전이 아니라, 독자의 인식 구조를 뒤집는 반전입니다. ‘만약 이렇다면 어떤가?’- 라는 식의 질문을 통해 철학적 전환점을 핵심적인 반전요소로 삼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감정적인 충격을 선사한다기보다는 일종의 철학적 무중력 상태를 만든다는 느낌을 줍니다.
소설은 사건보다는 ‘그 사건이 인간에게 남긴 질문’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을 명확히 내지는 않지만, 본작에서만큼은 비교적 진짜 작가님이 의도한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 암시를 강하게 합니다.
후반으로 갈수록 등장인물들의 대화와 서사는 철학적 선언과 질문 중심으로 전환되고, 독자의 입장에서는 줄거리를 따라가기보다는 사유를 요구받는 느낌을 받습니다. 철학적 서사의 밀도가 높다 보니 이야기의 긴장감과 줄거리를 따라 가다보면 정서적 폭발을 통한 감정적 카타르시스가 있을 것이라 기대한 독자한테는 다소 밋밋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위험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다 읽고 나면 줄거리보다 질문이 먼저 전면에 서게 됩니다. 여기에 열린 결말의 형태는 깊은 여운을 납깁니다. 다만 그와 동시에, 독자가 ‘뭔가 일이 터지겠지’ 하는 사건 중심의 기대감으로만 따라왔다면 ‘정확히 뭘 말하고 싶은지 모르겠다’고 느낄 위험성도 배가시키고 있습니다. 만약 이미 다 읽었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면, 소설 속에서 던진 질문을 생각하고 다시 읽으면서 나름의 답을 찾아보는 것도 괜찮은 감상법이지 싶습니다.
고대 유적 → 외계 문명 설정이라는 전형적인 설정으로 과연 무엇이 나올까 궁금증을 유발하며 친숙하게 다가가지만, 본작의 진가는 후반부에 터져나오는 질문과 메시지에 대한 사유에 있습니다.
편하게 보되, 쉽게 볼 것은 아닌 작품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