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같은 판타지 리얼리즘 공모(감상) 브릿G추천 이달의리뷰 공모채택

대상작품: 우리 엄마는 눈의 여왕 (작가: 조제, 작품정보)
리뷰어: 이채윤, 20년 5월, 조회 214

이런 판타지리얼리즘의 유전자를 자연스럽게 타고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더 나이를 먹더라도 작가가 이런 자신의 스타일에 대한 확신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스타일의 창작은 잘 쓰려고 할 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믿는다면 자연스럽게 흘러 나오는 것이니까. 그래서 읽는 중간중간, 좌절과 자조하는 문장이 보일 때마다 속이 상한다. 빨간 펜으로 그어서 지워주고 싶다. 이 작품은 완벽한 아동 치유 동화의 플롯을 구현하고 있다. 치유 동화는 아직 국내에 드문 장르다.

판타지리얼리즘은 한국인들에게 유독 배척당하는 장르다. 모두들 삶이 워낙 각박한지라, 현실도피 욕구가 크기 때문에, 환상적 세계에 리얼한 디테일을 가득 설정하는 리얼 판타지가 대세다. 무거운 현실 세계를 배경으로, 중간중간 환상을 과감하게 섞는 판타지 리얼리즘은 인기가 없다못해 욕까지 먹곤 한다.  교과서에나 나오는 카프카와 보르헤스, 서점의 스테디 셀러 코너에 마르케스 백년동안의 고독, 사라마구 수도원의 비망록이 쌓여있지만 과연 읽는 사람들이 있을까. 이런 판타지 리얼리즘은 잘 팔리지 않는 순수예술의 영역이다.

그 대립을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자들의 도시는, 전 세계인이 단기간 맹인이 된다는 가정을 기반으로 현실적이고 치열한 전개를 하지만 결국 본질은 판타지다. 요즘 유행하는 좀비나 역병 포스트아포칼립스, SF 판타지, 타임리프가 모두 그렇다. 어떤 종류의 좀비는 소리는 듣지만 냄새를 못 맡는다, 정확히 20시간이 지날 때마다 400일 전으로 돌아간다, 그 종족은 직사광선에 약하고, 저 종족은 물이 닿으면 안된다는 등 세세한 디테일을 더해서 아무리 과학적인 척 해도 결국 판타지다.

반면에, 노벨문학상을 탄 사라마구 수도원의 비망록은, 발타자르와 블리문다가 수시로 경험하는 환각을 나열한 우화 같지만, 그 화려하고 장엄한 마프라 대수도원을 짓겠답시고 인부 수백명을 죽인 것이 사실이다. 본질이 사실인 것이다.

우리는 허구를 둘러싼 팩트를 숭배하고, 어두운 사실을 둘러싼 환상을 혐오한다. 현실도피문학에 의지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사실주의를 증오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우리는 현실을 벗어나서 살아갈 수는 없으니까. 판타지 리얼리즘은 우리들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읽을 때는 야릇했지만, 하늘로 날아오른 발타자르의 비행기, 나비가 되어 날아간 황금열쇠 따위는 내 평생 기억에 남을 것이다. 유럽의 장엄한 대성당 같은거 볼때마다, ‘저거 짓느라 수백명의 사람들이 강제부역하다가 죽었겠구나’ 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심장이 쫄깃쫄깃하여 2~3일 만에 읽어내려간 SF 소설이나 좀비 포스트아포칼립스 소설은 1주만 지나도 아무런 기억도 남지 않는다.

엄마의 말 때문에 아프지만 어떻게든 버텨보겠다는 것은 현실이다. 환상은 현실을 더 강렬하게 드러내고, 엄마의 말이 내 심장에 얼음 조각으로 박혔다는 표현 역시 영원히 내 기억에 남을 것이다. 읽으면서 작가가 심리학 전공자일까, 동화 치료를 구상한걸까 생각을 한다. 그게 아니고 순수하게, 자기의 상처를 낫우기 위해 자연발생시킨 판타지라고 생각하면 너무 슬프다. 그리고 너무 삶이 힘들더라도 마음을 닫지 않았으면 한다. 마음을 닫은 작가의 판타지는 감정이 소외되고 디테일만 남아서 닭가슴살처럼 퍽퍽하다. 내가 스스로 낫기 위해 만들어낸 도피처이자 판타지가, 나도 모르는 사이 똑같은 다른 상처를 받은 아이들을 만나 그들에게 치유가 되어줄 날이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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