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가 유행하던 중세, 시골로 피난을 간 열 명의 젊은 남녀가 열흘 밤 동안 각각 하나의 이야기를 한다. 도합 100개의 이야기가 수록된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이다. 여기에 영향을 받은 영국의 제프리 초서는 <캔터베리 이야기>를 저술한다. 캔터베리로 성지 순례를 떠나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여관에서 한 가지씩 이야기를 하는 내용이다. <데카메론>은 이야기를 하는 열 명의 남녀의 캐릭터가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 반면, <캔터베리 이야기>는 각양각색의 계층을 상징하는 화자의 캐릭터를 반영한 이야기라는 점이 지적된다. <캔터베리 이야기>는 가장 재밌었던 이야기를 선정하는 경연의 요소가 들어간다는 점 또한 <데카메론>과 구별되는 점이다.
이야기들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브릿G에 올라온 <무서운 이야기가 끝나면>을 흥미롭게 읽었다. 아마도 이러한 액자소설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1001개의 이야기를 담은 <아라비안 나이트>가 아닐까 싶지만, 이야기꾼이 세헤라자드 한 명이라는 점에서 <데카메론>이나 <캔터베리 이야기>와 다르다.
장르적 측면에서 <무서운 이야기가 끝나면>이 보다 직접적으로 관련된 이야기는 일본에서 담력을 시험하기 위해 괴담100이야기일 것이다. 괴담 100이야기는 100개의 촛불을 켜 놓고 괴담을 하나씩 이야기 할 때마다 촛불을 끈다. 100개의 이야기가 다 끝나면 진짜 유령이 나타난다. 하나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촛불을 하나씩 끄고, 모든 이야기가 끝났을 때 진정한 공포가 출현한다는 점에서 <무서운 이야기가 끝나면>과 유사한 부분이다.
<무서운 이야기가 끝나면>은 13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13이라는 숫자는 불길한 숫자로 가지는 상징성이 있다. 100개나 1001개의 이야기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무한에 가까운 상징성이 있는 반면에 13개의 이야기는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은 유한과 닿아있다.
<무서운 이야기가 끝나면>은 영화 동아리에서 심심풀이로 시작한 괴담 경연은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성식이라는 인물을 찾는 목소리가 들리고, 하나둘 잠에 빠져든다. 사실 이 부분이 현실성이 부족하다고 느꼈는데, 마지막으로 갈 수록 잠에 빠져드는 주변 사람들이 늘어가는데도 불구하고 꿋꿋이 무서운 이야기를 마지막까지 하는 용수나 민정이 이해가 안 갔다. 나 같으면 무서운 이야기 포기하고 탈출했을 텐데.
어쩌면 그것은 사람들을 붙잡아두는 이야기가 가진 마력이 아닐까 싶다. 인간은 이야기 없이는 살 수 없는 동물이다. 그 중에서도 인류가 가장 처음에 만들어낸 이야기는 사랑이야기도, 모험담도, 웃긴 이야기도 아닌 무서운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소설이나 문학의 원형으로서의 무서운 이야기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100개의 이야기를 마치면 진짜 유령이 나타난다는 괴담 100이야기는 이야기가 만들어낸 괴물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야기를 이야기한다는 행위가 가진 마력은 그 자체가 가진 힘이 틀림없다.
어쨌든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무서운 이야기가 끝나면>은 끝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에 가장 큰 물음표가 쳐져 있다. 12개의 이야기는, 각각의 독립적인 이야기가 충분히 완성도가 높지만, 마지막 이야기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이라 할 수 있겠다. 13번째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적인 이야기임과 동시에 모든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액자와 같은 이야기다.
그런데 앞선 12개의 이야기가 궁금증을 자극했던 마지막 이야기가 허무감을 느끼게 한다. 앞선 이야기들은 대체로 인간의 합리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반면에 마지막 이야기는 철저하게 합리성에 기반한 인위적 이야기다. 앞선 이야기들의 비합리적 공포가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틀 안으로 회수되고 만 느낌이다. 물론 완전히 일상적 질서로 환원되지 않는 찝찝함을 독자에게 남긴다는 점에서는 결말도 훌륭하지만, 키가 되는 성식이라는 인물이 인간의 합리성을 벗어나지 않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기대와 달랐다.
어쨌든 <무서운 이야기가 끝나면>은 역설적으로 이야기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인류가 존재하는 이상, 인간은 이야기를 그만둘 수 없는 숙명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