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어디서 만든 부대찌개인가요? 공모(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Detention (작가: 에이켄, 작품정보)
리뷰어: 도련, 20년 5월, 조회 170

이미 훌륭한 리뷰가 있지만 호러여서 읽었습니다.

읽고 나면 이런저런 감상이 떠오르는 게 사람의 숙명인지라 저도 짤막하게 글을 남깁니다.

 

 

장르문학을 좋아하는 까닭은 사실 별것 없습니다. 장르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무엇을 해도 괜찮기 때문이에요. 심지어 장르의 가장 기본적인 공식이라고 여기는 것에 의문을 던져도 됩니다. 당연하죠. 이 세상의 모든 새로움은 그렇게 시작하는 법이니까요. 규칙이 정해져 있지만 사실은 규칙 따위 없는, 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고 풍요로운 놀이가 여기에 있는데 앞다투어 안 달려드는 쪽이 더 이상하지 않을까 저는 혼자서 생각하고는 합니다.

처음에 저는 이 소설을 아무런 감흥 없이 읽었습니다.

까놓고 말해 원데이 투데이 읽었습니까. 첫번째 문단 마지막에서 이미 우리는 도미니크가 브리엘의 눈에 수상한 새끼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무슨 서술트릭이 숨어있는 것 같지도 않고 주인공의 정신 또한 말짱해 보이니 두번째 문단으로 오면 문제의 그놈 도미니크가 일을 치겠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죠. 어쩐지 새로운 세상을 펼치는 어떤 종교집단이 생각나는 도미니크네 일당은 예상했던 대로 주인공인 브리엘과 불쌍한 케이릭의 통수를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세게 갈기고……. 당연한 일이지만 브리엘은 정신을 잃습니다.

계속 이대로였다면 리뷰를 써야겠다는 생각은 아마도 안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다음 전개부터 소설이 재미있더라고요.

 

요리로 치자면 잘 끓인 부대찌개 먹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 부대찌개라기보다 이런 표현이 더 적절하겠네요.

호러라는 냄비에 돌멩이 하나 넣고 이것저것 요즘 잘나가는 재료를 우다다다 쏟아부었는데, “이거 먹어보라고요? 아, 네. 뭐 안 먹을 이유 없으니까 먹죠…. 호러라면 나라를 팔아먹어도 먹는다 호러 다이스키~!”라고 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먹었더니 의외로 맛이 있어서 한 그릇 뚝딱 먹어치운 느낌입니다.

 

다른 리뷰에서도 말씀하셨지만, 나폴리탄 괴담이나 방탈출 게임처럼 요즘 대세인 것들과 인체실험이나 사악한 이단 종교집단(어쩌면 이 시국에는 이것도 요즘 대세일 수 있겠네요.)처럼 뿌리깊고 굳건한 수요와 전통이 있는 재료들이 팍팍 쏟아지는데 야…….

 

생각보다 이 재료들은 잘 어울렸습니다. 제가 나폴리탄 괴담을 정말 싫어하며 직접 체험하지 않는 방탈출 게임의 매력 또한 알지 못하는 사람임을 생각하면 더욱 그랬어요. 실은 이 이야기에 들어간 소재 중 하나가 나폴리탄 괴담이라고 나오는 순간이 이 소설을 읽는 경험 중에서 저에게 제일 큰 난관이었거든요.

그 이유를 조금 더 상세하게 쓰자면.

저에게 나폴리탄 괴담은 서사를 갖춘 하나의 문학이라기보다 사람들이 어떤 형식을 가지고 재미삼아 하는 놀이에 더 가깝습니다. 제가 장르문학에 끌리는 이유는 ‘놀이’이기 때문이라고 위에서 말쓰드렸지만, 제가 너무 당연해서 안 적은 전제가 하나 있으니. 장르문학은 ‘놀이’이기 전에 서사를 갖춘 문학의 한 갈래라고 봅니다. 저는 놀이라면 다 좋아하는 게 아닙니다. 문학을 가지고 놀이를 하는 게 좋은 거예요. 그런데 제가 지금까지 접한 나폴리탄 괴담은 결국 큰 서사가 필요하지 않다는 느낌이었거든요. 읽어나가는 과정에서 상상력이 작동하고 서로 다른 것들 사이에 모순이 생기니 순간적으로 오싹하기는 하지만, 그거야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의 슬픈 습성 때문이고. 사실 분위기에서 빠져나오고 나면 제가 좋아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과정이 없습니다. 허구를 쌓아올리고, 욕망을 밑바닥에 깔고, 환상을 정교하게 조직하는 과정.

지금까지 제가 읽은 나폴리탄 괴담은 서로 모순되는 규칙을 나열해서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다였거든요.

짧은 식견으로 모든 것을 말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본 백조가 모두 새하얗다면 백조는 모두 새하얗겠거니 여기는 것도 인간의 슬픈 습성.

좋아하는 부분을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두고, 저는 이게 진심으로 좋다고 말하면 그거야말로 기만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왜 나폴리탄 괴담이 들어가 있어도 재미있게 느껴졌을까요?

자문자답을 해보자면, 우선 이 소설에서 나폴리탄 괴담은 의외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거기 써 있는 규칙을 다 이해하거나 외우지 않아도 됩니다.

굳이 스크롤을 위로 올렸다 밑으로 내렸다 하지 않아도, 서로 상반되어 보이는 두 메시지에서 데이비드 프랭크라는 인물을 공통적으로 믿을 수 없는 놈이라고 암시하는 것만 감지해도 이 소설을 즐기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예요. 첫번째 규칙대로라면 데이비드 프랭크라는 인물은 우리를 지켜줄 것 같지만, 옷을 더럽히고 침구를 손상시킨다고 사람을 찾아가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모두가 두려워하는 인물을 그렇게 신뢰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이상한 일이고…… 두번째 규칙에서는 아예 데이비드 프랭크를 조심하라고 대놓고 적고 있죠.

나폴리탄 괴담은 이 소설에서 재료이자 서사의 일부분입니다. 그 본질은 데이비드 프랭크라는 인물을 믿을 것인가, 믿지 않을 것인가, 여기에서 나오는 절정부의 스릴을 위해 배치되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 사실 나폴리탄 괴담을 다 외울 필요는 없는 거죠. 아무튼 우리는 여기에서 탈출해야 하고, 그러려면 환풍구를 뜯어서라도 나가야 하며, 666호실이야말로 진정한 탈출구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쯤이야 이야기가 진행되면 알 수 있으니.

그래서 나폴리탄 괴담이 나오면 내 시간을 무가치하게 버린다고 가정하고 보는 저로서도 재미있었어요.

재료가 무슨 죄입니까. 시원한 조개 육수가 필요한 요리에 고소하지만 비린내는 나는 멸치육수를 섞어서 내거나 후추만 조금 뿌려줘도 고기에서 나는 어쩔 수 없는 누린내가 잡히는데도 안 뿌리는 요리사가 잘못입니다.

사실 전체적인 이야기 구성을 따지고 보면 그렇게 새로울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에 속편을 암시하는 것까지 전형적으로 안정적인 구조였어요. 그러나 이렇게 따져서 “너! 너는 안정적인 구조를 시도했고 그런 구조로 썼으니 별을 두 개나 세 개밖에 못 줘!”라고 말하기 시작하면 이 얼마나 야박한 인심이겠습니까. 그렇게 말하자면 살아남을 예술작품 없습니다. 게다가 오히려 이렇게 썼기 때문에 익숙하면서도 신선한 단편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맛있었습니다. 여기 부대찌개 잘하네요.

계란프라이에 소금 후추가 아니라 요리사 손에 잡히는 온갖 양념을 섞어서 뿌려줘도 맛있는 요리가 나올 것 같은 맛집입니다.

 

조금 더 첨언하자면.

저는 사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더 이상 늘어나지 않기를 바랐어요.

이건 그저 제 생각이지만, 미스테리는 본질적으로 의문을 풀면서 전개되는 장르이지만 호러는 본질적으로 의문을 풀지 않아도 되는 장르라고 생각하거든요. 어떻게든 독자에게 확실하고 분명한 해답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무언가 숨겨놓거나 상상하도록 남겨놓아야 더 재미있는 경우가 많죠. 설정이 정교하고 디테일해지면 팬들이야 신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매력을 잃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합니다.

혹시 『드래곤헤드』라는 만화 좋아하시나요.

저는 좋아하는데요.

사실 그 만화에서 가장 무서운 부분은 마지막이 아닙니다. 1권이에요. 오래된 책이라 안 보셨을 수도 있으니 스포일러를 하지 않고 쓰자면,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은 점점 더 심각해지는데 진상이 밝혀짐에 따라 공포심은 점점 더 줄어들어요. 『기생수』 또한 어느 정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뒤로 갈수록 기생생물의 매커니즘이 점점 더 자세히 밝혀지지만, 기생생물을 더 잘 알게 된다고 해서 오른쪽이를 더 무서워하게 되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반대이지 않나요?

저는 이 소설을 그 어떤 것보다 다른 장르의 요소가 섞인 호러로서 읽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만족했어요.

분량이 늘어나면 필연적으로 이 종교집단의 정체나 데이비드 프랭크의 정체 같은 것이 밝혀질 텐데, 저는 그것을 알고 싶지 않고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향하는 바가 굳이 호러가 아니라면, 꼭 단편으로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원하시는 바를 목표로 꿋꿋하게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다음 소설도 맛집이기를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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