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는 늘 그런 법이다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소설가 황성진 (작가: , 작품정보)
리뷰어: 도련, 20년 4월, 조회 203

* 작품의 스포일러가 있어서 임베딩한다. 가급적 작품을 먼저 읽어주었으면 한다.

귀찮아서 반말을 썼다. 편하네…….

 

 

1.

손을 들어 나보다 약한 누군가를 내리칠 때의 감각은 짜릿한 법일까?

 

2.

소설의 시작부에서, 이 작품의 화자는 ‘새윤’과 참으로 막역한 사이인 것처럼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소설에서 화자와 새윤의 관계에 대해 작가가 우리에게 주는 정보는 다음과 같다.

 

ㄱ. 한새윤은 화자와 친한 사이였으며, 화자는 자신의 덕에 문창과에 가고 등단했다고 말한다.

ㄴ. 화자는 한새윤이 자살했을 때 빈소의 주소를 받았으나 막연한 불편함과 허전함으로 가지 않았다.

ㄷ. 화자는 한새윤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린다.

 

우리는 소설을 읽을 때 철저히 화자의 시점에서 이 세상을 바라본다. 여기까지 읽은 사람이라면 화자에게 깜빡 속아넘어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점의 함정에서 벗어나면 화자가 과연 어떤 인간인지 알 수 있다. 어차피 어느 정도 글을 읽은 사람이라면 1인칭 화자가 나왔을 때 이 사람의 진실함(용어가 이상한데, 모든 사람을 의심하라는 닥터 하우스의 명언을 떠올려주면 감사하겠다)을 의심하게 마련이다. 이야기가 점점 발전함에 따라 화자는 다음과 같은 면모를 드러낸다.

 

ㄱ. 화자는 윤리감각에 확실히 문제가 있다.

ㄴ. 새윤을 괴롭히는 누군가가 있었다.

ㄷ. 수상하게도, 화자는 새윤이 ‘지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되었으니 ‘좀 참을 줄도 알고 무르게 넘어가는 면도’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결정적으로, 새윤은 화자에게 이야기할 때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다.

이런 수많은 것들이 겹쳐져서 반전과 결말로 나아간다. 나에게는 예측 가능한 반전이기는 했지만 (위에서도 지나가듯 말했지만, 1인칭으로 전개되는 소설 중 화자 혹은 주인공의 심리 상태가 불안한 물건을 몇 번 읽으면 조금 낌새만 보여도 자동적으로 뇌에 회초리질을 하며 이 새끼가 숨기는 진실을 파악하라고 고함을 질러대는 인간이 되어버리는 법이다) 만약 이런 복선이 없었다면 당연하게도 글은 맥락도 개연성도 없는 물건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여기서 쓰인 화법과 시점을 두고 어설펐다느니 뻔했다느니 야유할 생각이 전혀 없다. 오히려 매우 좋았다.

아쉬운 점은 반전 이후였다. 그런데 이것은 이 작품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내가 그동안 아그책 작가님 작품을 틈틈이 읽었기 때문에 나온 결과라고 본다.

아그책 작가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문제의 원인은 현실에 있으면서도 결말은 묘하게 환상으로 넘어가고는 한다. 이유는 대충 알 것 같다. 현실에서는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대다수이기에 환상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되도록이면 둘 사이의 이음새가 조금 더 매끄러웠으면 좋겠다.

물론 이는 내가 이야기에 있어서 재미와 환상과 욕망을 철저히 긍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받은 인상으로는, 아그책 작가님의 등장인물은 대부분 현실의 문제를 안고 환상으로 도피하나 결국 현실의 문제로 인해 무너져내리는 사람들과도 같았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차가운 현실을 피해 무작정 도망치지만 결국 현실로 돌아오고야 마는. 그 너머가 파멸로 예정된 사람들이다.

이러한 인물조형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그런 작품을 많이 읽다보면 대충 이렇게 되겠구나, 하고 짐작하게 될 뿐이다.

물론 이 작품은 등장인물이 환상으로 도피한다고 말하기에는 약간 어폐가 있지만……. 이게 처음 읽는 작품이었다면 더 호의적으로 글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3.

이 작품의 키워드는 아마도 중간에 나오는 ‘눈물’이 아닐까 한다.

가해자와 가해자가 될 수 없는 자를 가르는 가장 큰 차이는 연민이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손을 들어 나보다 약한 누군가를 내리칠 때의 감각은 짜릿한 법일까?

가해의 속성은 그렇다. 다른 존재도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에서 눈을 돌리면, 폭력에서 남는 것은 사실 순수한 쾌감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과 다른 존재에게서 인간을 발견하기에 비로소 자격을 획득하는 동물이 아니던가.

가해의 쾌감은 다양하다. 어떤 가해자는 다른 사람을 때리면서 타인에게 상해를 입힌 제 주먹이 너무나 아프다고 오히려 비명을 지르기도 한다. 어떤 가해자는 과거에는 피해자였다. 어떤 가해자는 ‘역차별’ 같은 이야기를 운운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가해자는 늘 그런 법이다.

‘미안하다고 했으면 끝’이고, ‘죽을 죄’라도 지었냐고 말하며, 뻔뻔하게 구는 법이다.

바로 이것이 가해자의 속성이다.

 

+

안 읽어도 되는 여담.

 

그동안 아그책 작가님은 퀴어를 소재로 한 작품을 주로 쓴다는 인상을 받았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한동안 브릿지 플랫폼 자체를 떠나 있었고, 오늘 들렀을 때에도 딱히 글을 쓸 생각은 없었다. 원래는 이 작가님의 다른 글을 읽었는데 그 글 대신 이 글에 리뷰를 남기기를 선택했을 뿐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이 작품이 굉장히 반갑다. 어쨌거나 내가 모르는 사이 아그책 작가님이 다양한 시도를 해 보았고, 다양한 소재를 다루고자 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떤 작가는 하나의 주제를 평생에 걸쳐 풀어나가지만 우리네 인생은 길고 사람은 다양한 경험을 할수록 좋으니, 이곳저곳 탐험을 해 보셨으면 좋겠다.

 

나는 이게 악평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어찌되었든 지금 안 좋은 평을 남기가가 정말 조심스럽기도 하다.

이 글을 읽을 아그책 작가님을 위해 몇 마디를 남기자면.

 

나는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의 의견을 대표하는 독자가 아니다. 그저 시간을 내어 글을 쓸 여유가 있었던 사람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니 안 좋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해서 낙담하거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안 좋은 이야기 몇 개가 장점과 가능성을 가리지는 않으니까.

많이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는 길을 향해 쭉 직진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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