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이야기와 인물이 없는 소설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개중 최악의 부류는 작가의 개똥철학을 전파하기 위한 프로파간다 도구로 인물의 입과 생각을 써먹는 류의 소설들인데 어떤 의미로든 순수주의자에 가까운 내게는 불순하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기본적으로 작가란 이야기와 인물들의 관찰자에 가까운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부류의 창작자들은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와 사고의 흐름을 독자와 공유하는 데 주력하며 이야기와 인물을 쌓아 올리기도 한다는 걸 근래에는 조금씩 깨닫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작가의 페르소나가 주동 인물이 되고 서사는 작가의 의식의 흐름을 쫓아 이야기를 완성하는 류의 소설이라고나 할까…
‘심해어’의 각별함은 그런 의식의 흐름을 쫓아 침잠해 가는 과정을 묘사하는 전개 방식과 문장의 엄정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인물들의 의식의 흐름을 묘사하려 애쓰다 주정뱅이나 광인의 헛소리 따위에나 비견할 만한 수준의 애매모호한 문장과 문단의 늪에 빠져 버렸단 말인가?
글의 중간중간에 삽입된 개별 에피소드의 선정 역시 훌륭하다.
침몰한 잠수함과 심해 생물들에 대한 에피소드들은 이야기를 환기하는 효과뿐만이 아니라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커다란 키워드에도 매우 적절한 이식성을 보이고 있지 않은가?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제목의 선정 역시 절묘하다 할 수 있겠다)
전반적인 이야기의 정조와 태도에서 어디선가 들었던 인도 요기의 명상 방식이 떠오르기도 했다.
사기꾼일 수도 있고 깨달음을 얻은 자일수도 있고 그 모두다 일수도 있는 인도의 한 요기는 어두운 방 안에 관을 가져다 두고 그 안에 들어가 관뚜껑을 닫고 스스로의 내면을 돌아보는 방식의 명상을 선호했다 한다.
작가가 글을 쓰면서, 이런 사유의 밑바닥으로 침잠해 내려가는 과정을 집요하게 관찰하고 정확히 묘사하며 건져낸 통찰이야말로 이 소설의 가장 뛰어난 부분일것이다.
나는 ‘휘두른 칼에 다친 사람은 없지만,칼을 휘두른 사람은 남는다.’ 문장이 주는 여운이 참으로 서늘하고 좋았다.
어쩌면 브릿g에서 읽었던 많은 글 중 내 마음속에 가장 깊게 각인된 문장일 거란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