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소설에서 목격할 수 있는 테마들이 있습니다. 이 글에 들어있던 것은 퇴폐적인 느낌의 이미지들과, 평범한 우울과 후회의 내러티브. 여러모로 못 쓴 글은 아니지만, 비범한 글도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의 노력이 보이지만 감질나게 아쉬운 점들이 보였습니다. 장면들이 있지만 문장은 없는 글이라고 할까요. 단어와 문장들을 조금만 더 다듬으면 훨씬 세련된 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글이 길지 않으니 자세히 뜯어보면서, 읽으면서 훌륭했던 것들과 약간 어색하다고 느꼈던 것들을 짚어볼까 합니다. 어디까지나 저의 독단이니 괘념치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첫 문단 + 소단원 6개 (사소하지만 2가 밀렸습니다) + 마지막 문단
이 구성은 단편으로 쓰기에 적절해 보입니다. 장편에서 보여줄 수 있는 완성도를 포기하지 않으며서, 짧게 끊어가는 이미지들로 서사의 볼륨이 과하지 않게 이어졌습니다.
첫 장면은 동적인 느낌으로 쓰여졌습니다. 새로울 것은 없으나 현장감을 전달하는 역할에는 충분했습니다. 잡다한 무기들로 좀비들과 싸우는 상황과, 밝아지는 날에 대비되는 지친 인물들의 모습. 폐허로 변한 도시. 저는 다만 ‘미명’ 을 억지로 끼워 넣은 것 같은 인상을 받았고, “나는 헬멧을 벗고 얼굴에 묻은 피를 젖은 수건으로 닦아내었다.” 에서는 어색함을 느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방금 전까지 헬멧을 쓰고 싸웟는데 닦아야 할 만큼의 피가 얼굴에 묻어있다는 건 이상합니다. 바로 뒤에 “찐득한 머리” 가 등장하니 앞에서 땀을 닦는다고 하면 그건 그것대로 이상할 테고… 어떤 문장이 필요했다면 무기에 묻은 피를 털어내거나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소단원부터 본격적인 서사가 시작됩니다. 군대를 언급하면서 1인칭의 주인공이 아마도 남자라는 점을 알려줍니다. 명사형으로 종결시키는 문체들은 모양이 좋으나, 그것들의 내용은 썩 달갑지 않습니다. ‘담배’ ‘사연있는 시니컬한 노인’ ‘이것저것 때려 죽이는 여고생’
여름과 태풍에 대한 언급은 훌륭했습니다. 아포칼립스와 태풍의 종말적인 느낌이 잘 어울리네요. 하지만 ‘고급스러운 노랫가락’ 이라니. 정체를 알 수 없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가 등장하는 문단은 글 전체에서도 가장 현학적인 부분입니다. 차라리 전체적으로 그런 문어적이고 형용사를 들이붓는 문체를 채택하고 있다면 모르겠지만, 대화체를 비롯한 다른 문장들에서는 간결함과 현실성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듯 보여서 더 튀는 것 같네요.
어쩌면 그걸 ‘미명’ 이라는 이미지 아래에 나열하려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장면 자체를 볼 때도, 어두운 구멍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실제로 사람이 있는건지 주인공이 환청을 듣는건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목소리가 말하는 내용도 두서가 없고 주인공도 놀라지 않는 걸 보면 헛것이 맞는 것 같은데, 와중에 예지가 목소리 비슷한 걸 들었다니까… 아님 환청으로 상징되는 생존자의 우울을 예지도 공유하고 있다는 그런 뜻일까… 고민하며 읽었습니다.
다음은 감염자를 처리하는 장면과, ‘인간적인 행동을 하는 좀비‘ + ‘그런 좀비를 처리하는 인간‘ 입니다. 대화가 많아서 글의 양이 많아보이지만, 담고 있는 주제들에 비해서는 짧다는 느낌입니다. ’죽어가는 감염자의 모습‘ 이나 ’건조해보이지만 사실은 힘든 여고생‘, ’그렇게 괴물같지만은 않은 좀비‘ 중에 하나를 택하거나 각각의 볼륨을 키운다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합니다.
네 번째 단원에서는 다시 구멍 속의 목소리로 돌아옵니다. 통조림을 주는 걸 보니 환영은 아니었나 보네요. 목소리의 주인은 그냥 운명이라며 죽을 생각인 것 같습니다. 다른 생존자들이 걱정됐는지 불도 피우지 않고요. 마지막 문단에서 담배를 태우는 묘사가 겉멋스기럽는 하지만, 이 글에서 가장 정체성이 확실한 단원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섯 번째 단원은 잠시 짤막한 과거이야기가 나옵니다. 좀비 소설이라면 으레 있는 ‘생존자들 사이의 갈등’ 을 포함하고 있으며, 주인공을 비롯한 최예지나 김도현도 언급됩니다. 그러고 나서 ‘사람은 모두 죽어!’… 실제로 분량이 짧기도 하지만, 전개가 매우 급한 단원이었습니다. 하지만 현학적인 다른 단원들과 다르게, 가장 담백하고 깔끔하기도 했습니다.
여섯 번째 단원에서는 도현을 죽여 묻어주고, 그것이 늘 있는 일이라는 걸 보여줍니다. 이야기가 끝나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고 짜임새가 좋았습니다. 아쉬운 점을 굳이 말하자면 평범한 장면이라는 것 정도일 겁니다.
마지막 문단에서 주인공은 목소리가 들려오던 곳에서, 지금은 죽었을 사람의 편지를 가져옵니다. 기분은 더 착잡했고 날은 저물었죠. 그러고는 다시 미명으로 끝이 납니다.
사진을 여러장 찍어서 묶어놓은 것 같은 글이었습니다. 하지만 ‘데카당스함’ 필터가 조금 과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유려하지만 누구든 쓸 수 있을 법한 글. 작가만의 문체가 자리한다면 더 원숙한 텍스트가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