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라는 걸 처음 써 봅니다. 평소 리뷰 쓸 생각을 안 했는데, 남의 작품을 ‘공식적으로’ 이야기하려면 먼저 나 자신이 ‘어떤 관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스스로 그런 것이 있으리라곤 생각 안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편집자의 선택’에서 본 작품을 보았고, <시녀 이야기>가 떠오른다는 문장 하나로, 곧바로 작품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시녀>의 먹먹한 여운을 여전히 기억하기 때문이죠. 읽은 후에는 당연히 다른 분들께 추천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고, 해서 처음으로 리뷰라는 걸 써 보기로 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선택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 리뷰는 전적으로, <감겨진 눈 아래에>를 아직 읽지 않은 분들, 그중에서도 SF 장르에 생소한…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1.
<감겨진 눈 아래에>는 알려졌듯 SF이며, 디스토피아 한국을 그리고 있다.
SF를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정도로만 알고 디스토피아라는 세부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처음 한 챕터를 읽고는 낯설거나 ‘이게 뭐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SF를 어느 정도 읽은 분들은 <감겨진 눈 아래에>의 작가가 (최대한 쉬운 문장과 대화체를 통해) 얼마나 자연스럽게 SF를 펼쳐가는지 금방 파악했을 것이다.
거창한 설정 따위 없이, 인물들을 중심으로, 독자들을 자연스레 끌어들인다. 패널, 플라코스 같은 (작가 입장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은) 생소한 용어들을 흘려보내고 나면, 이것이 우리 사회를 배경으로 한 근미래의 이야기임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는 작가가 자신이 구축한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고, 글 쓰는 경험과 능력이 받쳐줘야만 가능하다.
<감겨진 눈 아래에>는 SF이며 디스토피아 한국을 그린다. 게다가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를 전면에 내세운다.
사실 <시녀 이야기> 분위기를 기대했지만, 그것과는 많이 달랐다. (지금 생각해보니^^! 편집자에게 낚였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기대와 다르기에, 또는 기대가 컸기에 실망도 있다. 그것을 먼저 말하자면,
우선 이야기를 펼쳐가는 방식이 투박(?)하다. 주인공 세실은 한국의 디스토피아적 현실을 대부분 상대방과의 대화를 통해 전달한다. 자신이 한국에 들어와 여자로서 지옥을 경험하긴 하지만, 그것들은 치밀하게 묘사하지 않는다.
게다가 직설적이다. <시녀 이야기> 같은 소재와 설정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을 처음부터 비판적으로 ‘설명’한다. 나는 그런 전개를 좋아하지 않는다. <시녀 이야기>, <어둠의 왼손> 처럼 서서히 젖어들며 어느새 공감하게 만드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미래의 서구에서 ‘상식적인’ 삶을 살던 세실이 한국에 들어와 겪고 듣는 상황들은 너무나 노골적이고 직설적이다. 처음부터 이 사회의 부조리와 그 사회에서의 기득권, 또는 주도권을 쥐고 있는 ‘남자들’을 까기 위해 썼다는 걸 숨기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이에게는 불편함을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른 글에서는 실제 그런 것 같고.
(그런데 왜, 나는 ‘불편하다’고 표현을 쓰는 걸까? 그것은 내가 소설 속에서처럼 언제든 자의/타의적으로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성별이기 때문이다. 불편하다는 표현은, 내 본능적인 방어기제임을 나는 알고 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작품이라면 계속 읽기를 멈췄겠지만) 쉬지 않고 읽어내려간 것은… 작가가 말하려는 ‘분명함’ 때문이다.
<감겨진 눈 아래에>라는 SF 작품이 그리는 한국의 근미래는, 전적으로 한국 사회의 ‘현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지금 우리 주변에 펼쳐쳐 있는 (당신이 한번쯤 겪었거나, 외면했거나, 지나쳤을) 부조리한 상황들을 가지고 상상된 후에 구축된 것들이다. 소설 속 상황들이 현실적으로 여겨지고 지옥처럼 느껴지는 이유이다.
작가는 “인적자원이 필요하니 여자는 아이를 낳아야 한다.” 라는 극단적 상황 설정을 통해서, 현재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국가주의, 남성우선주의, 가부장제 등 모든 총체적인 부조리를 투박하지만 직설적으로, 노골적으로 비판한다.
우리가 현재의 그릇되고 잘못된 그것들을 수정하지 못한다면(또는 수정하지 않는다면), 소설 속의 상황은 현실로 다가올 거라고.
그것이 이 작품의 미덕이다. 내가 취향에 맞지 않음에도 계속 이 작품을 읽어내려간 이유다.
다른 문학가와 예술가들은 과거와 현재의 사건을 가지고 ‘현재’를 비판하지만, SF를 쓰는 작가들은 현재를 가지고 미래를 경고한다. 그것도 펄프픽션의 방식으로, 재미를 담보하면서… 그것이 SF의 본연의 가치 중 하나이고, <감겨진 눈 아래에>는 그 가치를 충실히 표현한 것 같아 반갑다. 봐봐, 우리 SF에도 이런 작품이 있잖아.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의 어지러운 현실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정치와 기득권과 그밖의 많은 것들을 비판한다. 더 많은 사람들은 네트에서 댓글들로 분노를 표출한다.
그러나 어떤 젊은 작가는, 그 어지럽고 부조리한 현실을 조용히 직시하고 사색하고 상상한다. 그러한 현실의 종착점이 어디일까 하고… 그리고 그것을 그려낸다. <감겨진 눈 아래에>는 그 직시와 사색과 상상의 결과물이다.
그것이 이 작품의 또 다른 미덕이다. 작가의 패기와 용기.
3.
그래서, 이 작품이 당신에게 재미 있을까?
그것은 당신의 평소 관심사에 달렸다. 당신이 이 사회의 현실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졌다면, 충분히 재미있을 것이다. 소설 속 한국의 미래 세계가 흥미로울 것이고, 어쩌면 지금의 당신을 ‘조금’ 움직이게 만들지도 모른다. 그러기를 바란다.
당신이 현실에 별 관심 없다면(물론 그래도 된다), 굳이 읽어보시라고 권하지는 않겠다. 관심 밖의 이야기는 당신의 흥미를 반감시킬 것이고, 낯선 공상으로만 여겨질 테니까… 그러나 그런 당신이라도, 이 작품을 한번 읽어볼 만한 이유는 있다.
<감겨진 눈 아래에>는, 현재 한국의 SF의 현재를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점이다.
최근 우리 SF계에는 재기 넘치는 젊은 작가들이 꾸준히 자신의 SF 세계관을 구축하며 펼쳐내고 있다. 브릿G에도 그분들 중 몇몇 분들이 계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들은 꾸준한 작품들을 내놓으며 조금씩 평가를 받고 있고, 독자들에게도 호응을 얻어가는 중이다.
<감겨진 눈 아래에>는 그런 한국 SF의 젊은 작가군에 포함되고, 우리 SF의 현주소를 확인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당신이 그것을 확인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응원해 주었으면 한다. 아무리 재기 있는 젊은 작가라도, 호응이 없다면 금새 그 싹이 죽어버리고 말 테니까. 물론, 응원을 할지 그 반대일지는 당신의 판단이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먼저 읽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당신이 이 마지막 문장을 읽고 있다면, 곧장 작품으로 달려가리라는 걸 알고 있다. 즐감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