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게 읽으면서도 댓글 한 번 달지 않았더니 부채감이 생겼습니다. 마침 마지막 글까지 올라온 김에, 금요일 저녁을 기회삼아 짧은 리뷰나마 끄적대며 작가의 수고에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흥미로운 글의 세 가지 측면 즉, 주제 면, 서사 면 그리고 인물 면을 중심으로 한번 써 내려가 보겠습니다.
먼저 주제. 이야기의 주제는 사실 다양한 방향에서 여러 방법으로 변주되어 온 내용입니다. 환경과 인간의 관계, 특히 인간의 부정적 영향력에 대한 비관적 예측과 이에 대한 각성의 필요를 이 글의 주제라 한다면(물론 이 글의 주제를 환경문제에 한정지을 수 없지만, 가장 눈에 두드러지는 주제를 두고 이야기한다면), 이 테마에는 환경을 대립하여 극복할 대상이 아닌 지키고 보호할 대상으로 다시금 인식하게 된 이후로 이미 각양각색의 주장과 관심이 기울어져 왔으니까요. 그렇게 ‘새롭지 않은 주제’라서 문제가 있냐고요? 그럴 리 없죠. 저는 주제에 있어서는 ‘신선함’보다 ‘무게’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자연에 대한 인간의 책임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다양한 제안에 비해 문학으로부터 소외받고 있지 않나요? 그러니 오히려 이런 흥미로우면서도 유의미한 주제를 다시 한 번 조명하는 일은 소중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부분은 이 글이 그 주제를 잘 강조하고 있는지, 하는 질문이 대두되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전 서사와 인물이 이에 대답하기 위해 대답해야 할 핵심적 사항이라고 봅니다.
서사 이야기를 해 볼까요? 우선 서사는 주제를 선명히 할 뿐 아니라 독자가 즐거운 경험을 하도록 하는 핵심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글은 특히 이 서사의 영역에서 특별히 성공적이지 않았나, 조심스레 평가해 봅니다. 글을 지루하지 않게 하는 완급조절은 즐거운 독서경험을 위해 매우 중요하죠. <천연기념물 제조가>는 흐름과 호흡에 맞는 긴장감, 갈등, 충돌을 잘 배치했다고 느꼈습니다. 물론 중간 중간에 긴장을 조금 길게 끌지 않는가, 하는 부분도 존재하죠. 예를 들어 관우가 천연기념물 제조가를 처음 만나고 알아가는 과정에서의 긴장, 특히 가치관의 충돌에서 발생하는 갈등에서는 호흡이 조금 많이 길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긴장이 심화되고 상승되는 모습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이러한 호흡조절, 서사의 완급조절은 아무렇게나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죠.
이에 더해, 서사의 점증적 구조도 매력적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처음에는 스스로도 탐탁찮은 공모전 기획으로 시작해 지구적 이슈에 대한 관심으로 서사를 확장해 갑니다. 자신의 생활에서 인류와 지구의 미래로 서사를 상승시켜 가는 동시에 배경도 서울에서 중국, 이윽고 전세계적 규모의 조직으로 그 범위가 확장되죠. 물론 서사가 늘 확장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또 확장되더라도 지구적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겠지요. 하지만 주제에 따라서는 이러한 점증적 진행이 효과적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천연기념물 제조가>에서는 이 구조가 이야기를 더 두드러지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몇 가지 장치가 충분히 기능하지 못한 부분은 조금 아쉽습니다. 예로 관우가 제조가와 한 내기는 중간에, 그것도 너무 일찍 흐지부지됩니다. 그리고 관우가 제조가를 만나게 된 결정적 계기, 제조가의 개인적인 천연기념물 제조활동은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드러나는 제조가의 인성이나 갈등에 비추어 보았을 때에 오히려 인물과 충돌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그는 그 깊은 심적 고통과 갈등을 경험하면서도 왜 그렇게 충실히 제조활동을 진행한 걸까요? 그러지 않아도 될 위치일 텐데요. 물론 인물을 다르게 이해함으로써 돌파할 수 있는 부분이겠지만, 특히 천연기념물 제조활동이 이야기의 발단과 전개에 있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그리고 제조가는 결국 주제를 구체화하는 데에 중심역할을 하는 만큼, 조금 더 명쾌해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가당찮은 아쉬움을 감히 가져 봅니다.
마지막으로 인물 이야기를 간단히 해보려 합니다.
각 인물은 스테레오 타입과 필요한 만큼의 입체성을 가진, 효과적인 인물이라 생각합니다. 단순히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배치된 도구적 인물이기보다는 구체적인 갈등선과 고민을 가지고 상호작용을 하고, 그러면서도 핵심 주제를 향해 줄기차게 나아갑니다. 이 두 마리 토끼는 사실 잡기 어렵다고 전 생각하는데(혹은 경험하는데) <천연기념물 제조가>의 인물들은 설득력을 가질 만큼 성공적으로 구축되었다 생각합니다.
두 주요 인물 중 제조가는 특히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한편, 스테레오 타입을 드러내면서도 특유의 모순을 내적으로 품음으로써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고 느꼈습니다. 스테레온 타입은 나쁜 것이 아니죠. 이 글에서처럼 적절하게 사용하면 이해를 돕는 것은 물론 인물의 생동감이 오히려 강화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런 생동감에 비해 관우는, 다른 많은 ‘화자’들이 숙명처럼 겪는 일이지만, 입체감이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왜 사진작가여야 했을까요? 사건을 겪기 전의 그의 경험은 사건 속의 경험과 극단적으로 분리됩니다. 물론 이는 다양한 서사에서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이 때문에, 최소한 이 이야기 안에서 관우는 ‘과거가 없는, 무역사적인’ 인간이 됩니다. 입체성 측면만 보았을 때는 약점을 갖고 시작하는 셈입니다.
이에 더해 관우의 감정선은 제겐 따라잡기 힘들었습니다. 그는 무엇을 보고 진벽회의 논리에 설득된 것이고, 왜 그 논리를 다시 거부하게 된 것일까요? 물론 계기가 제시됩니다. 그러나 그 계기에 대해 ‘과연 그 정도로?’하는 생각이 조금은 들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부턴 디테일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후반부 서사 구도에 문제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진벽회, 그 오래되고 무시무시한 비밀조직을 존재 가능케 하는 매우 설득력있는 진리를, 어쩌면 너무 쉽게 떨쳐내는 관우. 그래서 조금 더 공감을 일으키는 계기가 있었다면, 하는 느낌을 문득 받게 합니다.
그러고 보면 제조가가 굳이 관우를 선택한 이유에도 확 와 닿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수동적으로 의심 속에 갈등만 하던 제조가가 관우를 계기로 한 발 내딛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결국 관우에게 한 번 더 책임을 떠맡기다니 괘씸하기까지 합니다. 벌써부터 환경에 목숨걸고 싸우는 사람들, 진벽회와 사투를 벌일 준비가 된 사람들은 잘 찾으면 어딘가에는 있었을 텐데요.
제가 괜한 생트집을 잡은 지점들에도 불구하고, <천연기념물 제조가>는 재미있는 글입니다. 인물들은 역동적으로 갈등하고 부딪힙니다. 그리고 이 충돌은 독자들이 끊임없이 글의 주제를 향해 스스로를 반성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어떤 쓴 소설처럼 잰 체하며 나서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으면서도 선명히 주제를 부각시키고, 가치관의 충돌 속에서 독자들이 자신을 되돌아보도록 돕습니다. 좋은 글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천연기념물 제조가>는 좋은 글입니다. 아쉬운 점만 늘어 놓은 것 같지만, 오히려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 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합니다. 다음에 올라오는 글은 또 어떻게 전개될 지 궁금해 기다리기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고통은 또 겪고 싶은 생각이 가득하군요.
조대호 작가님의 새로운 작품을 기다려야겠네요. 결국 브릿G의 제일 큰 매력은 기다려지는 작가를 만나는 일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