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이 스포일러 투성이이기 때문에 저는 모든 내용을 스포일러란 안에 삽입할 생각입니다. 왜냐면, 이전의 리뷰에서도 말했듯 저는 작품의 핵심 주제를 스포일러 없이 집어내는 재주가 별로 없어요.
음…일단 저는 혜진이가 좋습니다. 그녀는 뭐랄까 제가 생각하는 가장 선량한 인간에 가까워요. 부당함에 맞설 줄 알고, 설령 자신의 일이 아니더라도 나설 줄 압니다. 저는 요즈음 한껏 논제가 되는 사회 문제와 이걸 어느정도 결부시켜 읽은 것 같아요.
엘라이. 우리는 그들을 엘라이라고 부릅니다. 원래는 당사자성이 있는 이들끼리 뭉치던 연대를 이르던 말이었다고 해요.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점차 당사자성이 없는 사람들이 연대를 약속할 때도 엘라이 선언이 통용되고 있지요.
여학생들이 바지를 입을 수 있어야 하지만, 정작 주인공인 혜진은 바지를 입고 싶어하는 학생은 아니에요. 자신의 예쁜 다리를 좋아하고, 치마가 더 잘 어울린다는 것을 알고 있지요. 혜진은 바지를 입고 싶어서 싸운 게 아니라, 바지를 입을 권리를 위해 싸운 거에요.
요 근래 저는 굉장히 몰지각하고(개인적인 판단입니다), 굉장히 혐오적 표현이 가득한(이것도 개인적인 판단이에요) 일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모든 일에 진정성을 확인받으려 하고, 까탈스러운 잣대를 들이밀어서 구성원임을 검증해야만 한다는 그런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일들이 많았어요. 전혀 과학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은 논지만이 사방팔방에 휘날렸었지요.
이 글을 읽으면서 저는 우리 모두가 최소한… 최소한 선도부장 선배나, 수정이 같은 사람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대부분의 1학년 같은 사람도 지양해야겠지요. 우리는 옳음의 가치를 조금 더 존중하고, 높이 평가할 필요가 있어요. 작중의 선생님들은 줄곧 ‘그래왔으니까’, ‘바꾸면 힘드니까’, ‘새로 사는 아이들이 돈을 써야 하니까’라는 이유를 댑니다. 하지만 그래왔으니까 앞으로도 그래야 할 이유는 전혀 없고, 바꾼다고 힘든 것도 사실 아무것도 없어요. 치마와 바지 중에 선택하는건데, 굳이 바지를 새로 사는 비용이 모두에게 부과될거라는 추론은 더더욱 말도 되지 않지요.
가장 재미있는 것은 우리 모두가 이걸 알아요! 작중의 선생님들마저도! 교장 말곤 다 알지요. 교감마저도 이 ‘촌극’에 대해 알고 있어요. 하지만 모두가 교장선생님께 이 건의를 올릴까 말까에서 쉬쉬하길 선택하지요. 교감마저도.
바지를 입을 권리가 당연하게 보장된다고 해서 치마를 입는 아이들이 손해볼 것은 아무것도 없듯이, 우리 사회가 또다른 형태의 소수자와 약자를 보듬어준다고 해서 그 이외의 약자나 소수자들의 권리가 침해되진 않아요. 인권은 제로섬게임이 아니니까요.
그래왔으니까? 17세기의 의료계는 먼지가 모공을 틀어막아 체외의 병균을 막아주므로 살고 싶다면 씻지 말라고 권했죠. 바꾸면 힘드니까? 그런 악습이 근절된 건 그저 ‘잘 씻고 향기로운 신사’라는 이미지가 생기자마자 바로였어요. 새로 사는 아이들이 돈을 써야 하니까? 아무도 새로 사라고 하지 않았어요.
저는 12월 이달의 우수 리뷰어로 선정되었었고, 거기서 부서진 대지 시리즈와 시녀 이야기 그래픽 노블을 골랐어요. 종이책에는 늘 맨 앞에 작가들의 한 문장이 써 있는데, 부서진 대지 시리즈의 그 ‘한 문장’은 저에게 많은 감명을 주었어요. 그리고 이 작품에도,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에도, 제가 쓸 이 리뷰에도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For all those who have to fight for the respect that everyone else is given without question.
다른 이들과 마땅히 동등한 존중을 받기 위해 투쟁하는 이들에게 바친다.